2015년도 어느덧 겨울과 봄을 지나 한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등 무더위가 심술부릴 준비를 단단히 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무더위가 기승할수록 가장 수혜를 보는 주종은 바로 맥주. 실질적으로 더운 여름은 시원한 이미지의 맥주가 가장 잘 팔리는 시기로, 땀 흘린 후 마시는 짜릿한 생맥주 한 잔의 느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성인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런 여름에 어울리는 주종은 오직 맥주 하나뿐일까? 전 세계적으로 여름에 마시는 주종은 맥주가 대세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만큼은 아직 살아있는 주종이 있다. 여전히 한여름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생막걸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다양한 외국 주종과 매칭되는 우리 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맥주와 막걸리를 중심으로 각각의 주종을 체크해 보자.
짧은 발효를 통해 시원하고 생으로 즐기는 맥주와 막걸리
맥주와 막걸리가 가장 비슷한 부분은 무엇보다 음용 시장. 모두 시원하게 마시는 것을 주로 하는 시장이다. 막걸리나 맥주는 일반적으로 숙성기간이 1달 전후로 짧고, 탄산이 주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맥주의 경우엔 용기 자체가 차가운 캔맥주 시장에 먼저 진출해서 여름 시장의 가장 강자 중 하나지만, 최근에 RTD시장이 커지면서 국순당의 아이싱이나 ㈜우리술의 미쓰리(me3)등의 캔막걸리 시장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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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싱과 me3
맥주와 막걸리의 큰 차이는 맥아냐 쌀 등이냐의 원료 본연의 차이도 있겠지만, 한국시장에서는 효모의 유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생이라 해도 마이크로 필터를 통해 효모를 걸러내지만, 막걸리는 간단한 여과만 진행하기에 발효를 하는 효모가 그대로 살아있다. 그래서 맥주는 생이라도 보존기간이 비교적 긴 반면, 생막걸리는 맛이 김치처럼 매일 바뀌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이제 막 출하된 것은 부드럽고 단맛이 강한데, 시일이 지나면 김치처럼 신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도 높아진다.
이러한 부분은 판매하고 보관하는 부분에서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면 하나의 문화로써 즐기는 맛도 있다. 실례로 변하는 막걸리 맛을 느끼기 위해 막걸리 전문가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출하된 지 며칠째인지 알아맞히기도 하고, 배상면주가 직영 전통 술펍인 ‘느린마을’에서는 날짜에 따라 달라지는 막걸리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이름으로 메뉴에 넣어 소비자에게 날짜에 따라 골 라마실 수 있는 막걸리 상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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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상면주가 운영 느린마을 막걸리.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각각 숙성기간에 따라 다른 맛을 나타내고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다
참고로 맥주는 맥아를 끓여 즙으로 만든 후 효모를 투입하여 그 즙 속의 당분을 알코올로 만드는 ‘단행복발효’라 불리는 방식이며, 막걸리 등은 고두밥에 물을 넣고 누룩을 넣어 즙으로 만드는 과정과 효모가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여 ‘병행복발효’란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막걸리는 끓이지 않은 생물을 그대로 쓰는 데 반해 맥주는 한번 끓이는 과정을 거친다. 굳이 막걸리 편을 든다면 발효를 하는 효모가 살아있고 끓이지 않은 진짜 생(生)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곡물로 숙성기간을 거쳐 만든 일본의 사케와 한국의 약주
최근 일식이 상당히 보편화 되면서 일본 사케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사케(일본식 청주)는 원료도 쌀, 누룩도 쌀, 부재료를 거의 안 쓰는 단순의 미학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주로 오곡(쌀, 보리, 콩, 차조, 기장 등)을 이용하고 밀을 누룩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약이나 꽃, 과실을 넣기도 한다.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원래 탁주분류를 가지고 있으며(일본어로 니고리슈 또는 도부로크)발효가 짧은 막걸리 등에 비해 사케와 약주는 100일 이상의 숙성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알코올 도수도 13~15도가 주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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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케를 거르는 모습. 빛에 반사되었지만 옅은 황갈색을 띄고 있다. 출처 아마부키슈죠
탁한 농도 보다는 맑은 농도를 중시하며, 숙성이 주는 향에 다양한 과실 향을 품고 있다. 투명도에서는 일본의 사케가 훨씬 맑아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여과의 차이이다. 우리 약주도 여과만 더 거치면 물같이 투명해질 수 있고, 사케 역시 여과를 덜 거치면 옅은 황갈색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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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방식으로 숙성시킨 약주를 거르는 모습. 용수란 긴 소쿠리를 넣고 맑은 술을 채집한다.출처 전통주 갤러리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사케와 비슷한 청주란 주종이 있지만, 전통주 분야로 취급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기존 주세법상의 청주란 주종는 전통누룩을 많이 쓰면 청주로 분류가 안 되기 때문이다.
원료의 풍미가 살아있는 증류주, 싱글몰트 위스키와 전통 소주
증류주란 이른바 막걸리, 맥주, 와인, 약주 등 자연 속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발효주란 주종을 가지고 증류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알코올을 뽑아 낸 것을 말한다. 술이란 물과 알코올이 함께 있는 것인데 이것 들은 서로 끓는점이 다르다. 물은 100도이고 알코올은 이것보다 더 낮은 78도 정도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알코올이 먼저 끓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이용해 먼저 끓는 알코올을 기체로 먼저 받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알코올만 많이 뽑아내는 것이 주류의 증류라고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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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끓여서 맥즙을 만들고 이후에 알코올 발효를 시킨다. 산토리 위스키
증류기술은 9세기 전후 연금술을 시도한 이슬람화 학자들이 가장 먼저 시도를 했으며, 이것이 스코틀랜드에 전파되어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 프랑스에는 와인을 증류한 꼬냑이 되었다. 중국에 가서 마오타이와 같은 술이 되고 일본에 가서 사케를 증류한 쇼츄(焼酎) 등이 되었다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몽골을 통해 막걸리나 약주를 증류한 전통 소주가 시작되었다.
이 술의 특징은 모두 원료의 풍미가 살아 있고, 단식증류기를 이용한다는 것. 단식증류기란 증류했을 때 가지고 있던 다양한 향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원료의 풍미가 살아있는 증류주가 나온다. 그리고 단식증류기로 만드는 대표적인 주종, 오직 몰트로만 한 증류소에서만 만드는 것이 바로 싱글몰트 위스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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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리 위스키의 다양한 위스키 증류기
이와 비슷한 우리 술은 바로 전통 소주라고 할 수 있다. 전통소주 역시 단식증류기를 사용하여 원료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러한 소주들은 원료의 풍미가 살아 있기에 쌀 소주, 보리 소주 라고 원료이름을 붙일 수 있다. 물론 숙성기간이나 증류방식(압력을 낮춰 끓는점을 내린 감압방식, 그 외 상압 방식)등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원료의 풍미가 살아있는 증류주란 것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몽골군이 주둔했다는 평양, 개성, 안동, 제주도에서 전통 소주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러한 것을 토대로 평양의 좁쌀과 수수로 만든 문배주와 두 번 증류하여 꿀과 한약재가 들어간 감홍로, 쌀 본연의 맛의 안동소주, 제주도의 좁쌀 술로 증류한 고소리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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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양조장의 전남 담양 추성고을의 전통증류기. 모양은 다르지만 원리는 위스키와 같다
싱글몰트위스키는 단식증류기로 두 번을 증류하는데 이유는 이른바 맥주(기존의 맥주와 다른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맥주로 홉 등이 안 들어가는 원액)의 경우 도수가 높지 않아 증류해도 스카치 위스키의 기준인 알코올 함유량이 40%가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한번 증류를 통해 나온 원액으로 한번 더 증류하면 물고 더욱 분리되어 보다 도수 높은 원액이 나오고, 이를 오크통에서 숙성을 진행하게 된다.
참고로 일반적인 보드카나 진, 소주는 영어표기로는 스피릿이라 불리는데 연속식증류기란 것을 통해 순수한 알코올만 뽑아내고 무색무취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영어로는 스피릿, 스피릿은 몸이 아닌 술의 영혼만 있는 알코올 중심의 주류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주종을 마신다는 것은 원료의 풍미를 느끼기보다는 순수한 물과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 된다. 주의할 점은 화학 소주, 공업용 알코올이란 부분은 본질과 다르다는 것. 순수한 알코올과 물이 중심이라 외국에서는 다양한 칵테일에 많이 사용되는 주종이다.
외국 주류로 우리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우리 술로 외국주류가 설명되어야
앞서 외국 술을 중심으로 우리 술을 소개했지만 실은 반대가 되어야 한다. 막걸리를 중심으로 맥주를 설명해야 하고 약주를 중심으로 일본 사케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 주류시장의 90% 가까이는 이러한 맥주, 소주, 수입주류이며, 우리 전통주는 막걸리와 전통소주, 약주를 다 포함해도 10%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결국 소비자의 주류에 대한 이해도는 우리 전통주가 아닌 다른 주류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심지어 수출하는 우리의 약주는 표기를 ‘코리안 사케’로 해서 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시장점유율에서는 막걸리가 고군분투는 하고 있지만, 그것도 5% 정도이며 게다가 대기업이 중심이다. 이렇다 보니 문화가 깃든 전통주는 늘 명절에나 선물하는 주류로 자리 잡히고 한복이라도 입어야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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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인 전통소주 감홍로와 중요무형문화재인 문배주 명작.출처 전통주 갤러리
하지만 최근에 젊은 3대, 4대를 이어가는 양조장 후세들의 노력과 뜻있는 전통주 유통 및 판매점의 도움으로 계속 전통주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스테이크와 막걸리를 같이 즐길 수도 있고, 강남과 홍대의 이자까야(일본식 선술집)에서 전통소주를 취급하는 곳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앞으로 전통주가 더욱 생활 속에 들어와 외국 주류나 대기업 주류만 즐기는 것이 아닌 전국에 2,000종류가 넘는 우리 술로도 충분히 선택권이 있음을 소비자가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문화가 깃든 전통주의 브랜드화는 갓 시작한 철저한 블루오션이기 때문에 당장은 아닐 수 있으나 시장은 커지리라 본다. 언젠가는 이러한 전통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져 맥주를 서양의 막걸리, 사케를 일본의 약주, 위스키를 유럽의 전통 소주로 소개할 날을 기대해 본다. 물론 우리뿐만이 아닌 외국인이 자국의 술을 설명할 때도 말이다.
첫댓글 설명이 너무 좋네요.
잘봤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