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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죽였는가 .
송혜근
카키색 작업복을 입고 때에 절은 가죽 모자를 눌러 쓴 중년 남자가 뒷주머니에 위스키 병을 꽂은 채 휘파람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쳤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가죽옷의 금발 여자와 머리 반쪽만 밀어버린 흑발 여자가 “샌프란시스코에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온다면 정말 멋질 거야”라고 말하며 스쳐갔다. 그들 뒤를 이어 머리에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청년과 흰 스카프를 두른 청년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려 스쳐갔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축축한 바람이 일고 있는 거리에서 그녀는 수첩에 적힌 주소와 그녀 앞에 위압적으로 솟아 있는 빌딩의 주소를 대조해 보았다. 그리곤 잠시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후 오던 길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막 그녀를 스쳐 갔던 청년 둘이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걸음을 빨리 해 앞서 걷던 금발과 흑발의 여자에게로 다가가 “기가 막힌 몸매야”라면서 추근거렸다. 조금 더 걷자 비둘기 똥으로 얼룩진 광장이 나타났다. 배가 불거진 깜둥이 하나가 지나치는 그녀를 보고 “헤이 뷰티! 약 밀요해?”하고 물었다. 추레한 개를 데리고 있는 거렁뱅이 여자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시들어 버린 꽃 한송이를 주워 엉켜붙은 머리에 꽂았다.
광장 벤치는 대부분 그 여자같이 배낭을 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고,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는 개를 데리고 마침 비어 있는 벤치로 가 앉았다. 그녀도 벤치로 가서 앉았다.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는 그녀 머리처럼 엉켜붙은 털을 가진 개를 그러안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처음 줄리를 봤을 때, 꼭 그 개처럼 털이 더러웠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줄리는 찬거리를 사갖고 집으로 향하던 그녀를 어슬렁거리며 뒤따라온 개였다. 별로 동물을 좋아하니 않는 그녀는 차 문을 열자 먼저 타려고 덤벼드는 개가 무서웠었다. 겨우 개를 밀어내고 차 문을 닫은 후에도 앞바퀴에 짝 달라붙어 있는 개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혹시 근처에 개 주인이 있을까 찾았으나, 짐작대로 개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할 수 없이 개를 집으로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동물보호소에 데려다주리라 마음억었으나 목욕을 시킨 후에 살아나는 하얀 털이 보드러워 우물주쭐하게 됐고, 개벼룩이 번져 일주일 가량 고생하면서 매일 갖다 버릴 생각을 했다가 막상 벼룩이 없어졌을 때쯤은 줄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줄리와 한 이년쯤 살았을까? 그녀는 줄리가 죽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정들면 참 귀찮아 정말......”이라고 중얼거렸다.
“징글벨 징글벨 징글 얼 더 웨이......”
갑자기 광장에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벤치에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몰려갔다. 캐럴을 부르는 사람들이 몰고 온 밴의 뒷문을 열고, 은박지에 싼 음식들을 꺼내 늘어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늘어선 줄이 채 반밖에 줄어들지 않았을 때 두 명의 경찰이 나타났다. 음식을 나누어주던 사람들이 재빨리 밴을 몰고 달아났다. 그들을 쫓던 경찰들이 늘어선 걸인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소란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 머리에 꽂은 꽃이 땅으로 떨어지자 거렁뱅이 여자가 그것을 주우면서 “팍큐!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 나눠주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은 이곳밖에 없을 거다. 지옥에나 가라지”라고 소리질렀다. 거렁뱅이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개를 끌고 벤치로 돌아갔다. 음식을 받은 사람들은 시꺼멓게 때가 낀 손으로 은박지를 벗겨내고 안에 든 햄버거를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순간의 소동이 인 후 거짓말같이 평정을 되찾은 광장을 질러 나오다가 그녀는 땅에 떨어진 책을 보고 주워 들었다. 표지에서 ‘베르톨트 브레이트’라는 이름을 본 그녀는 조금 놀랐다. 그때 남루한 옷차림의 동양 소년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다가왔다.
“그 책 제 것인데요.”
“베르톨트 브레이트 말이니?”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소년을 살펴보면서 책을 건네주었다. 그 책과 소년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고마워요,”
소년이 굉장히 중요한 귀중품을 다루듯 옷 소매로 책 표지를 문질렀다. 그녀는 한두 발짝 걷다 말고 뒤돌아섰다.
“네가ㅣ 브레히트를 아니?”
“아줌마도 그를 아세요?”
소년의 눈이 반짝 비ㅊ났다.
그녀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고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빠져나왔다. 좀전의 그 빌딩 앞으로 오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육중한 유리문을 밀었다. 고급스런 카펫과 비단 벽지로 장식된 레스토랑은 아직 저녁 손님을 받기엔 일러서인지 서너 테이블만 제외하곤 텅 비어 있었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동료들과 잡담을 하던 금발의 웨이스트리스가 다가와 일행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가슴이 깊숙이 파이고,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옆선을 튼 유니폼을 입은 육감적인 여자 앞에서 그녀는 순간 그만 돌아갈까 하고 망설였다.
“인터뷰 때문에 네 시에 약속이있어요.”
웨이스트리스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 버렸다.
“주방 일이라면 그 체구로는 힘드실 거예요.”
“주방 일이 아니라...... .”
“아무튼 잠시 기다리세요. 매니저를 불러 드릴께요.”
금발의 아가씨가 매혹적으로 몸을 흔들며 사라진 후에 곧 매니저가 나오T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지원서를 건네주며 우선 작성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지원서를 메꿔나갔다. 잠시 학력란에 도서관 사서 일을 했음을 적을 때는 씁쓸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십여 년 간 일해오던 시립도서관 분관이 행정부의 사회복지 예산 삭감으로 문을 닫게 되는 바람에 그녀는 직장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동료인 클리프는, “다음 달부터는 아파트 렌트비도 없어. 남은 돈 싹싹 긁어서 슬리핑 백이나 하나 사 갖고 떠돌아다녀야 할까봐.”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에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일을 한 적이 있는 대학 도서관을 찾아갔었다.
“우리 도서관은 대학도서관 최초로 모든 자료를 전산화했어요. 정보화시대에 부응하는 용기 있는 결단이지요. 이미 컴퓨터는 우리의 예상을 초월해서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됐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모든 정보의 전산화는필수적입니다. 정보화시대를 이끌 우리 도서관 사서가 되려면 컴퓨터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해요.”
컴퓨터를 예찬하는 젊고 자신만만한 도서관장을 보면서, 그녀는 문득 자신이 시대의 뒷켠으로 밀려나 있음을 깨달았다.
지원서를 다 쓴 후에도 매니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나가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몇 차례의 유혹을 물리쳤을 때 매니저가 나타나서 늦었음을 사과했다. 매니저는 서류를 자세히 훑어보며 “석사학위를 가지셨군요, 흠, 도서관 사서로도 일 하셨군요.”하면서 우스꽝스럽게 신중성을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한참 흠흠거리며 그녀를 살피던 매니저가 언뜻 종아리에 주었던 시선을 거두며, “이곳에서 일하시기에는 자질이 높으시군요.” 라고 말했다.
“사무직은 적성에 안 맞아서요. 그리고 전 집에서도 손님들 치르는 걸 무척좋아해요. 좋은 웨이스트리스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변명조로 얘기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어서 슬퍼졌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거의 울상을 짓던 매니저가 일어서더니 아무튼 곧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핸드백을 열고 테이블에 덩그마니 놓인 볼펜을 주워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데 늦은 점심을 먹는 한 쌍의 남녀가 나른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문을 열던 그녀 눈에 조금 전의 육감적인 웨이스트리스와 매니저가 수군거리며 킥킥 웃다가 그녀를 보고 웃음을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건물 밖에 서서 조금 전보다 분주해진 거리 모습을 짜증스럽게 바라봤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자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팔에 걸치고 있던 바바리 코트를 껴 입고 벨트를 여미다가 종아리 부근에 동전 크기만큼 스타킹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다.
“연락 오긴 틀렸어.”
그녀는 스타킹의 구멍이 별로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젠 늙은 걸까? 라고 자문해 보았다. 그녀는 백에서 다시 수첩을 꺼내 X표가 댓 개 그어진 주소 아래 다시 X를 그었다. 이미 날이 저물었고 그리고 사람들을 보는 게 겁이 났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새삼 그녀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하이!”라고 인사하지 않게 된 것이, 슈퍼마켓 종업원들이 “오늘 날씨가 좋군요”라고 인사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쯤인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머리 속에서 샤워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때부터인 것 같았다.
텅 빈 복도를 지나 텅 빈 아파트로 들어서서 옷을 벗고, 습관적으로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틀면 이상한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긴박하게 따르릉거리고, 누군가 옆방에서 비명을 지르고, 폭포수가 마구 쏟아져 내리는 소음 속에 줄리가 캥캥거리며 바둥대는 소리도 섞여 쏟아졌다. 그러면 그녀는 물을 잠그고 방 안의 정적 소리, 복도의 정적 소리를 확인하곤 했다. 그 샤워 소리가 가끔 그녀의 머리 속에서 쏟아져 내렸다.
광장을 지나치는데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가 개를 그러안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줄리에게 새 주인이 나타났을 리 없어.’
그녀는 쓰디 쓴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지금 사는 빈민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개를 못 키우는 규정 때문에 줄리를 동물 보호소에 갖다 맡길 때도 담담했던 그녀였다. 그리로 그후 으슥한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 때 무심히 줄 리가 반길 것으로 예상했다가 실망한 후에도 “먹일 것 챙기지 않아서 편하지, 목욕시킬 일 없지, 개털에 신경 안 써도 되지”하며 애써 허전함을 꾹꾹 눌러 온 그녀였다.
그러나 동물보호소에 맡긴 개, 고양이, 토끼 같은 동물들이 일정기간 안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킨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줄리에 대한 감정이 그리움이나 허전함 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줄리를 보호소에 보냈을 때 그곳 직원은 “이놈 착하게 생겨서 금방 새 주인을 만날 거예요”라고 했는데 생각할수록 눈에 눈곱이 끼기 시작하여 추잡하게 늙은 티를 내는 줄리에게 새 주인이 나타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직원의 말은 그의 희망사항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마 죽었을 거야......”
그녀는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언제부터인지 누군가가 그녀와 보조를 맞추며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뒤를 돌아본 그녀는 광장에서 책을 주워 준 소년을 보고 놀랐다. 그녀를 보고 친근하게 웃는 걸로 보아 계속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성가신 생각이 들어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계속 길을 걸어갔다. 소년도 같은 보조로 뒤따랐다.
그녀는 도중에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살펴보는 척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장난감 코너는 사람들로 붐볐다. 닌텐도 전자오락 게임기 코너에는 사내녀석들이 잔뜩 몰려 있었고, 계집애들은 인형 파는 쪽에 더 많이 몰려 있었다.
한 손에 목이 부러진 바비인형을 든 소녀가 훌쩍거리면서 똑같은 것을 사내라고 조르고 있었다. 소녀의 엄마가 같은 인형을 골라 건네 줄 때마다 소녀는 “싫어, 그건 이것과 머리색이 틀려”라던가 “그건 눈이 예쁘지 않아”라면서 트집을 잡았다.
어린 시절 그녀에겐 제니라는 금발 인형이 있었다. 그녀가 밥 먹을 땐 제니에게도 조그만 소꿉용 식기에 밥을 덜어 먹였고, 철 따라 옷도 바꿔 입히면서 몇 년을 끼고 살았다. 집에서 키우던 바둑이가 제니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을 때 그녀는 자기 몸이 찢긴 것처럼 아파했었다. 부모님도 언니도 그녀가 슬퍼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 갑자기 그녀는 그것은 몇 뼘의 헝겊 조각과 한 줌의 솜과 몇 개의 플라스틱 장식에 불과하다고 말해주지 않은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졌다. 소녀의 칭얼거림이 심해졌을 때 그녀는 ‘그건 플라스틱에 불과하다’고 버럭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상점을 나왔다.
소년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자 소년도 움직였다. 다시 소년이 뒤를 쫓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뒤돌아서서 화난 음성으로 “왜 자꾸 따라오지” 라고 물었다.
“아줌마 한국 사람이지요?”
소년의 말에 그녀는 실소하면서 그가 곧 차비 얘기를 꺼낼 거라고 추측했다.
“이 넓은 바닥에서 이젠 한국 사람이 더 이상 희귀종은 아니잖니?”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쏘아 붙였다.
“그건 그래요.”
소년이 수긍했다.
그녀는 다시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여전히 뒤따랐다. 그녀가 다시 휙 돌아섰다. 깜짝 놀란 소년이 멈춰 서서 “그러나 전 한국 사람은 한 사람밖에 몰라요”라고 더듬거렸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네가 날 따라오는 거니? 난 중국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다라오지마!”
그녀는 미국에서 영어를 쓰고 살면서 고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는 감상적인 부류들이 생각나 불쾌했다. 그러나 소년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따라오면서 소년은 “제가 아줌마를 따라 다니는 건 아줌마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알기 때문이에요. 내가 사람들에게 책을 보여주며 그를 아냐고 하면 모두들 고개를 저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소년을 돌아보았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니?”
“저에겐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소년의 눈에 나타난 단호함은 그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느끼게 했다.
다 식어빠진 소시지 두 쪽과 말라빠진 삶은 감자를 먹다 포기하고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감자는 너무 굳어서 포크로 속을 파먹기가 힘이 들 지경이었고, 소시지도 너무 구워서 두껍게 타 있었다.
그녀는 빵조각으로 접시에 남은 소스 국물을 싹싹 문질러 먹는 소년을 쳐다보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맛을 한탄했다. 주머니 속의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혹시 입맛이 동하는 음식이 없을까 하고 입구 쪽의 유리 케이스를 살펴보았다. 진열장에는 기름이 엉겨 붙은 칠면조나 닭들이 거무튀튀한 다리를 들어올린 채 누워, 조명이 바뀔 때마다 핏빛과 멍빛으로 물들면서 식욕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진열대 위의 천장에서는 ‘Merry Christmas’ 라는 글씨를 따라 박힌 조그만 전등들이 색깔을 바꾸어가며 명멸하면서 고기 뿐만이 아니라 홀 안에 듬성듬성 앉아 음식믈을 삼키는 노인들을 음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먹는 것을 포기하고 동전 두 개를 들고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한 잔 샀다. 돌아오는 길에 손님이 버리고 간 신문을 숩관적으로 집어들고 오는데 조명 때문에 그로데스크하게 보이는 백인 노인이 옷자락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커피를 반쯤 엎지르고 말았다.
“나 당신 몇 번 이곳서 봤지. 동양 사람들은 이런 곳을 잘 오지 않아서 난 당신을 기억해. 젠장 이런 싸구려 음식점은 이젠 백인들 전용이 됐거든. 정부는 동쪽에서 몰려드는 난민들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느라 우리에게 돌려줘야 할 돈을 마구 쓰고 있어.”
“잘못 봤어요. 난 이곳이 처음이에요.“
“거짓말! 너희 동양인들은 골칫덩어리 거짓말쟁이들이야.”
그녀는 노인의 편협한 얼굴에 박힌 증오에 찬 눈을 들여다보면서 가난은 그들에게서도 너그러움을 앗아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젊었을 땐 미국이 이렇지 않았어. 이젠 도처에 노랑둥이들이 득시글거려. 그놈들이 백인들의 것을 다 뺏아가고 있다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노인이 터져나오려는 기침을 막으려고 옷을 움켜잡은 손을 놓았을 때 그녀는 총총히 자리로 돌아왔다.
“미친 영감쟁이!”
미친 사람들은 그녀 주변에 너무도 흔했다. 그런데도 그날은 그런 사람들과 맞부닥치는 것이 너무 지겨웠다. 말 상대를 잃어버린 노인은 다시 휑한 눈빛으로 느리고 무표정하게 음식물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홀 안엔 가끔씩 포크와 접시가 부딪는 소리만 들릴 뿐 바닷속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녀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습관적으로 신문의 구직란을 펼쳤다.
세크리터리 모집, 워드 프로세서 가능한 자.
커피숍 웨이트리스 급구,
인터넷 전문가 구함.
컴퓨터 오퍼레이팅.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신문을 접었다. 소년은 싹싹 먹어치운 접시 앞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고 그녀와 그녀의 접시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접시를 소년 쪽으로 밀었다. 별망설임 없이 접시를 받아 다 먹어치운 소년이 “아줌마는 중국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중국 사람들은 여간해선 음식을 남기지 않아요. 아줌마는 한국 사람의 광대뼈를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소년의 말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맞죠?”
소년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떠올랐다.
“난 한국 사람이에요. 그러나 난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모이는지 궁금해요. 그런데도 겁이 나서 그들이 모인 곳에 못 가겠어요. 왜냐하면 한국말을 모르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한국말을 모르면 상대하려고 하지 않아요. 사실 그전에 난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관심을 갖게 된건 그후일 거예요.”
소년이 무심결에 내뱉는 그전이라든지 그후라는 단어가 주는 추리 작용에 말려드는 걸 조심하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소년의 그전이나 그후가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베르톨트 브레이트는 무슨......’
그녀는 한 끼 식사로 됐다고 판단하고 그만 일어서려고 했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그녀의 모습에서 낌새를 차린 소년이 애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속 속에서 연상되는 쉽게 부서지는 유약한 어떤 것이 그녀를 주춤하게 했다. 그녀는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연상의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찬찬히 소년을 살폈다.
“작년에 굉장히 멋있는 한국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난 일이 있어요. 마침 겨울이라 나같이 집 없는 사람들은 추운 뉴욕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할 무렵이었어요. 고속도로 입구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다, 그 일이 점점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아세요? 그 할아버지 차를 타게 됐고,우리는 열흘 동안 달려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왔어요.”
소년은 그녀을 붙잡기 위함인 듯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소년이 말하는 동안 계속 얼굴을 살펴보던 그녀는, 그의 약간 바랜 얼굴색과 귀에 뚫린 귀고리 자국에서 연상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행복한 얼굴을 한 사람들은 대낮에도 발걸음을 꺼려하는 그녀의 빈민 아파트촌에는, 행복을 위해서는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두컴컴한 복도에 나와 앉아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히죽거리곤 했다.
그 복도에서 그녀는 가끔 옆방의 청년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그 청년은 부서질 것 같은 희미한 미소를 짓곤 했다. 아직 소년의 티가 채 벗어지지 않은 청년은 가끔 남자들을 방으로 끌어 들였는데, 방음 장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파트 구조 때문에 그방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청년의 바랜 듯한 얼굴색과, 한쪽 귀에만 찰랑거리며 매달려 있는 귀고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 청년은 자살하기 얼마 전에 아파트 키를 돌리던 그녀의 팔을 잡고는 “이것 보세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미 끝장이에요. 팔리지 않는다구요.”라고 말하면서 턱 밑에 삐죽삐죽 비어져 나온 턱수염을 가리켜서 놀래킨 일이 있었다. 그녀는 아직은 매끈한 소년의 턱을 살펴보곤 까닭 없이 안심했다.
“ 그 할아버지는 갑갑증이 나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라면 서너 상자 싣고 캐나다나 알래스카까지 올라가서, 문명의 흔적이 없는 후미진 마을을 찾아 들어가 라면이 떨어질 때까지 살다 오곤 한대요. 이번에는 캐나다 북쪽의 조그만 마을에서 두 달 살다 내려오는 길이래요. 그곳의 과부 집에서 머물었는데. 말린 노루 고기와 라면만 먹다가 라면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돌아가는 길이었대요. 그 할아버지는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많은 얘기를 해주었어요.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압록강을 건넌 얘기. 상해 독립군 시절 얘기, 중국 혁명에 가담했던 얘기..... 난 그 얘기들을 들으면서 황홀하고 신났어요. 그리고 나도 그 할아버지처럼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시절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여기선 정말 신나는 일이 없거든요.”
소년의 얼굴에 갑자기 오랜 권태의 응어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넌 왜 크리스마스 때도 가족을 찾아가지 않니?”
그녀가 물었다.
“난 크리스마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할 일이 많거든요. 장작을 패야 하고. 정원 손질도 해야 하고, 집 안 카펫 샴푸도 하고, 식기도 끄집어내서 한 번씩 씻어 놔야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하는 것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12월 24일 저녁에 손님들이 초대되어 오고, 나도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그들 앞에 선보일 때쯤해서는 피곤하고 모든 게 시큰둥해졌지요. 나는 하품을 참으면서 손님들이 양부모에게 입양아에게 잘 한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걸 듣곤 했어요.”
그녀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던 노인이 식당을 나가려다 말고,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면서 뒤돌아서더니 그들 쪽을 가리키면서 “빵”소리를 낸 후 급히 문을 열고 사라졌다.
“팍큐!”
소년이 노인이 나간 문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새삼 미안한 듯 계면쩍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양부모도 미쳤어요. 결국 난 지지리도 재수 없게 태어난 놈이죠. 나를 버린 부모를 둔 것도 그렇고, 양부모도 잘못 만나고, 그들에겐 나보다 한 살 위인 친아들이 있었어요. 그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게 양부모의 자랑거리였는데, 내가 그 애보다 더 잘했기 때문에 양엄마는 늘 속상해 했어요.난 학교 신문의 편집장이었고, 나중에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거든요. 난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면서 일을 해야 했고, 늘 허기에 시달렸는데......그럴 때마다 왜 그들이 사랑하지도 않을 거면서 나를 입양했는지 의아했어요. 나중에 세상물정을 알고 보니 양부모는 미개국에서 애 데려와 정부에서 자식 양육비를 받고, 궂은 일 시키고, 꿩 먹고 알 먹고 한 셈이죠. 그들은 나에게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곳에서 날 데리고 와서 키워주는 은인임을 강조했기에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가족과 지내는 편이 나을텐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비교적 나에게 무심했던 양아버지가 어느 날부터인가 친절하게 대해주기 시작했어요. 데리고 나가서 저녁도 사주고, 극장에도 데리고 가고, 그런 것들이 양엄마를 화나게 만들었지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난 어느 사이에 양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숭배하게 됐어요. 그를 위해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그가 차츰 이상하게 굴기 시작했어요. 양엄마가 안 계시는 동안 나를 곁에 앉혀놓고 포르노 비디오를 봤는데, 그게 전부 게이들이 섹스하는 거 였어요, 그러면서 나보고 다리가 아프니 주물러 달라거나, 뭐 그런 이상한 주문을 했어요. 난 그 작자의 사랑을 잃게 될까 두려워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리고는 결국 그는 알......“
소년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고,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한참 침묵하던 소년이 무거운 분위기를 떨치려는 듯이 생기있는 음성으로 “아줌마도 가족이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머리를 가로젓고 소년의 시선을 피해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에는 갈 곳이 분명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지나쳐 가고 있었다. 선물꾸러미를 안은 여인이 남자에 감싸인 채 스쳐가는 걸 보면서, 이제는 잊어버린 포근한 잠과 탄력있는 웃음 그리고 따스한 감정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했다.
그 기억의 끝에 이혼한 남편과, 아버지와 아버지의 새여자를 택해 떠나간 아들이 있었지만, 이미 그들에 대한 감정은 그들과 그녀의 머리 색깔이 다른 만큼이나 낯선 것이 돼버렸다.
“미안해요.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이런 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견디기 쉬울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는 소년이 입에 담은 사랑이란 말을 새삼스레 음미해보았다.
미군부대 기술고문관으로 왔다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로 부모 형제 다 뿌리치고 먼 이국까지 따라오게 만든 남편은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떠나갔다.
남편의 사랑타령은 그녀의 삶의 형태와 생존방식을 바꿔버렸다. 그후 그녀는 서로 증오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 온 부모님 사이의 정 같은 것, 그녀가 자라면서 철저히 부정해 온 그런 종류의 관계도 어쩌면 사랑의 한 형태일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딸랑 문 소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이 섞인 거리의 소음과 으스스한 한기가 실내에 밀려들어왔다. 그녀는 갑자기 소년과 마주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그만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거동에 민감해진 소녕이 카운터로 가서 커피 두 잔을 사갖고 왔다.
“날이 추워지려나 봐요. 따뜻한 게 마시고 싶어지는 걸 보니, 꼭 눈이 올 것 같은 날씨에요. 여기서 네 시간만 달리면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는 곳이 있대요. 눈이 많이 와서 집들이 생크림을 얹은 케이크처럼 늘어서 있대요. 높은 산 속에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가 있는데 스키를 실은 차들이 오늘 그쪽으로 많이 올라가더라구요.”
소년이 갖다 준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는 음산한 아파트 복도와 고장난 히터가 있는 방을 떠올리곤 가려는 마음을 버렸다.
“네가 아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그게 왜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 거니?”
그녀의 말에 소년은 코트 주머니에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책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이 책은 실은 그 할아버지 걸 훔친 거예요. 할아버지는 여행 중간중간에 이 책을 열심히 보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전에 난 이 책을 훔쳤어요. 그런데 난 한국말을 하나도 읽지못해요. 읽기만 하면 난 할아버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소년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소리내 웃었다. 소년이 안심하는 얼굴로 따라 웃었다.
“그 할아버지가 너에게 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는 널 두고 혼자서 어디로 갔니?”
소년이 잠시 생각하더니 “아마 좋은 세상 만들려고 어디에선가 인권운동 같은 거 하지 않으실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소년이 퍽이나 재미있는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세상이라니?”
그녀가 반문하자 소년이 갑자기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이 세상이 잘못돼 간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가령 예를 들면요, 아까 자선단체에서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려고 할 때도 경찰이 법을 위반하는 거라고 잡아 가려고 했잖아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려면 위생시설을 해놓고 허가를 받으라는 거지요. 한편에선 먹지를 못해 굶주리고 있는데, 고맙게도 그들은 그 사람들 뱃속에 대장균이 들어가 혹시 배탈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간해서는 통과시키지 않는대요. 그건 다 핑계지 뭐예요. 왜인 줄 아세요? 근처의 주민들이나 가게 주인들은 거렁뱅이들이 몰려드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돈을 써서 방해하는 거죠. 정부는 늘 돈 가진 자들 편이거든요. 이 세상은 돈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게 돼 있다고요.
내가 양부모 돈을 훔쳐 갖고 가출한 후 돈이 떨어질 때까지는 미국은 천국 같았어요. 집 울타리 밖에 천국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루 종일 전자 오락실이나 극장에서 지내다가 배고프면 맥도날드나 켄터기후라이드치킨에 가고,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보이는 강가에서 보트도 타고, 그러다 지치면 잔디밭에 누워 청바지 차림의 남녀가 한가로이 지나사는 모습을 보거나, 비둘기 때들을 따라잡거나 했지요. 그러나 천국은 주머니 속에 돈이 있을 때까지만 계속된 거지요. 그리고 그후는..... 난 밤이 무서워요.“
소년이 몸을 흠칫 떨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미국은 그녀에게 유토피아로 비쳤다. 일한 만큼 생활이 보장되는 사회, 대통령에 대한 풍자만화가 실리는 사회, 이혼한 부부끼리 스스럼없이 만나는 사회, 각자가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택해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곳이 이상사회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곳을 이상사회라고 생각하는가?’ 그녀는 자문을 해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부자라고 느꼈을 때 세상은 쾌적했고, 질서 있게 보였고, 어느 때고 방문할 수 있는 집들이 있었고 음식 맛을 선택해 갈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있었고, 항상 친절한 단골 세탁소 주인이 있었고, 어느 때고 달려와 줄 수 있는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빈민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전혀 달랐다. 세상은 그녀에게 문을 닫았고, 심지어는 경찰도 빈민 세계를 감시하며 그들로부터 가진 자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그녀에게 음울한 곳이었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밤마다 어김없이 경찰 차가 주위를 배회하며 내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도 줄리처럼 보호소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너의 그 할아버지는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그러디?”
“깜깜한 밤 사막 같은 광야를 달릴 때였어요. 갑자기 대낮처럼 환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비닐하우스 대열이 나타났어요. 아! 그건 장관이었어요. 그건 닭장의 대열이었어요. 그 속에선 닭들이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달걀 낳는 시간을 자꾸 단축해 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우린 저 아래의 실리콘밸리를 지나치게 됐어요. 밤에도 환하게 불 밝혀놓은 애플사나 아이비엠 빌딩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꼭 닭장같구나”그랬어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닭같이 살고 있대요. 그러면서 사람은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
“그럼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란 말이니? 그런데 대체 자연의 시간이라는 게 무어니?”
“나도 잘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할아버지가 그 말을 했을때, 마치 그 세상에선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언젠가 할아버지가 그 사회가 잘 된 사회인지 아닌지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좋은 마음을 갖고 살면 그 사회는 잘 된 사회이고, 잘못된 사회는 사람들을 망가뜨린대요. 아마 자연의 시간 속에서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나봐요.”
“인간적인 마음이란 어떤 마음이니?”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소년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이 참 아줌마도 다른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겠지요.”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거니?”
“내가 생각해 봤는데요. 미국은 아직 땅이 많잖아요.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집 한 채 없는 평야를 달릴 때도 있어요. 그 땅을 조금 떼서 정부가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 니들 마음대로 살아봐라 하고 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그 땅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극장도 짓고, 야구장도 짓고, 우리 멋대로 사는 거예요. 각자 욕심을 안 부리면 다 잘 살 수 있잖아요.”
그녀는 실소했다. 진지함을 보였던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녀의 미소의 의미를 눈치챈 소년이 얼굴을 붉혔다. 소년은 확신이 사라진 목소리로 변명하려 했다.
“난 단지 그게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단지.......”
“네가 말한 멋진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디?”
할아버지를 깍아내리는 일은 조금도 허용치 않으려는 듯 필사적인 태도로 소년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창 밖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따스한 음식, 정다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을 향해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파로 들떠 있었다. 그녀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이상사회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소년을 동정했다.
소년은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책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내 생각에는 이 책이 좋은 세상에 대해서 쓴 것 같아요. 그 할아버지가 내내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말이라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라고 되풀이 말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들고 펼쳐 보았다. 브레히트 드라마론에 대한 책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소년을 실망시킬 것 같아 낭패감을 느꼈다. 소년이 눈을 반짝이며 어떤 책이냐고 재차 물었다.
대학 시절 그녀는 문학을 꿈꿨고 연극을 사랑했었다. 그녀가 속한 연극반 반장은 브레히트의 ‘어머니’라는 작품을 선택해서 반원들을 연습시켰다. 그녀는 자식을 낳은 어머니와 키운 어머니 중에서 키운 어머니 역을 맡았다. 반장은 브레히트를 이해 못하는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안 돼. 너는 작중 인물에 너무 몰입돼 있어. 주인공과 넌 별개의 인물이야. 넌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에 불과해. 그렇기 때문에 난 너희들이 역이 끝나면 무대 뒤로 들어가는 대신 무대 한켠에 앉도록 한거야. 너희들은 거기에 앉아서 하품을 한다거나 사소한 잡담을 할 수도 있어. 그렇게 해서 너희가 배우에 불과하다는 걸 관중들에게 인식시켜야 해.”
그녀와 마찬가지로 다른 단원들도 생소한 연극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반장은 되풀이 설명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관중과 극을 일치시켜 감정을 카타르시스시키는 종래의 연극에서 벗어나, 관중과 극을 서로 소외시키는데 역점을 두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그들에게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걸 보여야 돼. 거리를 두라고 거리! 그래야 관중들이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연극을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고.”
연극은 끝내 무산되었다. 단원들이 브레히트를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유신치하의 서슬 퍼런 정부가 학생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힘을 주는 연극이 상영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장과 단원 서넛이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했다. 그들은 반공이데올로기의 땅에서 공산주의자인 작가의 작품은 영원히 공연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먼 이국 땅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낯선 소년과 초라함 식당에 앉아 브레히트를 뒤적이면서 그녀는 반장의 말을 떠올렸고, 그의 말을 이해했다. 세상이 그녀에겐 브레히트극처럼 보였다. 신앙이 죽었고, 신화가 깨졌고, 정의, 사랑, 휴머니티 같은 고매한 단어들은 부동의 진리가 아니라 가진 자들을 위해 편리하게 쓰여지는 도구라는것도 파악했다.
그녀는 눈 앞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영혼의 빛으로 반짝이는 소년의 눈동자 속에서 우매한 맹목성을 꿰뚫어본 그녀에게 소년은 플라스틱 인형이 되었다. 그녀는 소년에게 부질없는 꿈을 심어 준 할아버지에게 순간 분노가 일었다.
소년의 눈빛이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는 책장을 넘기며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할까 고심했다. 책 갈피 중간중간에 빨간 줄이 그어진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그 문장들을 읽어보았다.
‘현대 유명 극작가 중에서 브레히트가 유일한 낙관주의자이다. 그만이 진보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었고, 사람의 힘으로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실을 직시하는 힘을 키우는 건 그 힘을 갖고 역사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문장들을 살펴보면서 그녀는 소년에게 해줄 말을 급조해냈다. 세상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브레히트 같은 작가를 위시한 예술가들, 철학자들, 정치인들,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과 양심적인 사람들이 서로 연합된 힘을 갖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아마 그 할아버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일지 모르며, 저자는 그 운동이 반드시 좋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소년은 아쉽지만 그런대로 흡족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보면서 취직을 위해 드나들 때마다 그녀 앞에 문을 닫아 버리곤 했던 수많은 빌딩의 문들, 컴퓨터화된 말쑥한 도서실, 선 벨트를 따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입해 들어오는 쇼핑몰과 신주택 단지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세상이 바뀔 수는 없었다.
소년은 기분좋은 듯 종알대기 시작했다.
“난 이제 한국 사람을 둘이나 알게 됐어요. 할아버지하고, 아줌마하고요. 하지만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라요,”
“다르다니?”
“그건 설명하기 힘들어요. 뭐랄까, 그 할아버지에게는 꿈이 있어 보이는데 아줌마에게는 그런 게 안 보여요.”
“꿈?”
그녀는 깜짝 놀랐다. 번적이는 도심 속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모피 코트로 치장한 여인네와 캐시미어 정장의 남자들이 부딪는 샴페인 잔 소리가 경쾌한 음향으로 곳곳에서 반향되고, 그 옆방에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놓인 선물 꾸러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상상하는 아이들이 잠 못 이루어 할 때, 초라하고 오갈데 없는 소년은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한때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기도 했고, 예쁜 집을 갖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직장을 얻는 것 외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녀는 꿈이란 여학교 시절 오버코트를 입고 걷던 을씨년스런 거리, 호롱불빛 아래 즐비하게 걸려 있는 촌스러운 카드 속에나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 카드 속에서는 눈이 풍성하게 내린 마을 공터에서 울긋불긋한 한복을 입은 조무래기들이 썰매를 지칙거나, 제기를 차거나, 연을 날리고 있었고, 기와 담장 안 안방에선 아랫목에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때때 옷을 입은 꼬마들이 세배를 하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줌마처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반드시 세상은 좋아질 거예요.”
소년은 소중한 것이기나 하듯 조심스럽게 책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는 모습을 그녀는 경이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간이 꽤 됐는지 가게 주인이 폐점 사인을 내걸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소년도 따라 일어섰다.
그녀를 사로잡았다. 밖으로 나오자 행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거리에 매서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경쾌하게 울려 왔다. 그들은 침묵한 채 잠시 묵묵히 서 있었다.
침묵을 못 건딘 소년이 먼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세요? 난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귀신이 있어서 해마다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녀석은 쓸데없이 많은 일들을 생각나게 만들어서 기분이 나빠요.”라고 말했다.
소년의 눈빛이 그로서리 마켓에서 그녀를 뒤쫓던 줄리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그녀는 애써 물리첬다. 그녀가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자 머쓱해진 소년이 애써 명랑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 다음 쓸쓸한 거리로 사라져 갔다.
소년이 보이지 않을 때쯤에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쉬고 발길을 돌렸다.
“정들면 정말 귀찮거든 정말.....”
그녀는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 주소를 확인한 후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립스틱을 꺼내 정성스럽게 고쳐 바르고 옷맵시를 다시 살피면서 스타킹에 구멍이 없는지 유심히 살폈다. 짧게 자른 머리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결연한 태도로 그곳을 나왔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증권 브로커인 남자는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고 서류심사에 합격한 걸 축하한다고 말했다.
“영어 작문 실력도 좋고, 타이핑도 잘 치시니 이곳에서 일하시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으시리라고 봅니다. 일한 경력도 좋고, 다 좋은데 학력이 고졸이라 좀 걸리는군요. 우리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거든요.”
순간 그녀는 학력을 속인 걸 무지하게 후회했지만 이제 와서 거짓말을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 일이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 눈 앞에 텅 빈 은행 잔고가 아른거렸다. 그녀는 입술을 한 번 지그시 문 후 용기를 내서 말했다.
“학력은 없지만 대신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녀가 무슨 일이든지에 액센트를 주자 남자도 “무슨 일이든지”하고 따라 말하면서 앞이 깊이 파인 옷을 입을 그녀의 가슴 근처를 눈으로 더듬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덧붙였다.
“혹시 나이가 문제가 되신다면 말인데요. 동양 여자들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젊거든요.”
그녀가 TV 커머셜의 여인처럼 웃자 남자도 음탕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월급이 정해지고, 의료보험이 추가되고, 출근 날짜가 정해졌다.
그녀는 세상 사는 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훨씬 수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빌딩을 나섰다. 아파트 근처에 당도하자 그날 따라 유난히 주위가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도를 걷다가 주사 바늘이 뒹구는 것을 보니 속에서 욕지기가 나왔다. 아파트 안도 평소보다 더욱 지저분해 보이고, 히터를 고쳐주지 않는 주인에 대해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었다. 하루빨리 새 아파트를 구해 이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평소보다 나은 레스토랑을 택해 들어가서 음식과 커피를 홀짝거리며 습관대로 신문을 펼쳐 들었다. 구직란부터 펴든 자신에 대해 여유 있게 웃어 보이고, 임대 아파트를 소개하는 광고란을 펼쳤다. 그녀는 수첩에 댓 개의 아파트 전화번호를 적고 나서 다시 신문을 일면부터 읽어나갔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연말연시 스키객들을 즐겁게 한 레익타호 설경과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사진이 일면에 크게 실렸 있었다. 그 사진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미소가 오랜만에 이해됐다. 대강 큰 글씨의 제목을 훑어보고 신문을 버리려던 그녀 눈에 일단짜리 조그만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 기사는 집 없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파크 내에서 얼어 죽은 동양 소년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죽은 지 여러 날 되는 것 같다고, 금년 크리스마스 연휴가 유난히 추웠다고 신문은 쓰고 있었다.
그리고 신문은 얼어 죽은 소년의 유일한 소지품은 몇 달러의 지폐와 동전 몇 개,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 꽂혀 있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책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 마치 고장난 것처럼 하염없이 샤워물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