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요즘 남녘에 무리 지어 피는 홍자색 꽃…
둥글게 줄기 감싼 잎은 광대 옷 같죠
광대나물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2.03. 00:51
요즘 제주도와 남해안 등 따뜻한 곳에 가면 길쭉한 홍자색(붉은빛과 보랏빛) 꽃이 무리 지어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 지방에서도 양지바른 곳에 이 꽃이 피어 있는데 바로 광대나물입니다.
광대나물은 이른 봄 피는 대표적 야생화 중 하나입니다. 따뜻한 곳에선 빠르면 1~2월에 홍자색 꽃을 볼 수 있는데, 잎겨드랑이에서 튀어나오는 듯 길쭉하게 달려 있어요. 귀여운 작은 뱀이 고개를 들어 입을 쩍 벌린 듯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이제 막 꽃이 올라오기 시작해 홍자색 점만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꽃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 꽃잎 양쪽에 둥근 무늬가 있습니다. 이 무늬는 꽃을 아름답게 하지만 멋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곤충에게 ‘이곳에 오면 꿀이 있다’고 알리는 용도입니다. 꽃잎에 있는 이런 무늬를 ‘허니가이드(honey guide)’라고 합니다.
광대나물은 꿀풀과 식물로 줄기는 자줏빛이 돕니다. 보통은 높이 10~30㎝로 자라지만 늦은 봄까지 훌쩍 크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은 꽃들을 둘러싼 꽃받침과 잎 모양이 광대 옷과 같다고 해서 붙였다고 합니다. 광대나물 아랫부분 잎은 원 모양으로 잎자루가 길지만 윗부분 잎은 잎자루 없이 줄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프릴(frill) 달린 광대 옷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기 턱받이같이 생겼습니다. 일부 지방에선 잎이 코딱지처럼 생겼다고 ‘코딱지나물’이라고도 부릅니다.
광대나물은 숲 가장자리 풀밭이나 마을 빈터 등 양지바른 풀밭이나 길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공터나 빈 밭에서는 엄청나게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꽃이 여기저기 많이 핀 것을 지천으로 피었다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이 딱 맞는 식물입니다. 광대나물꽃이 보이면 대개 주변에 별꽃과 쇠별꽃, 큰개불알풀꽃도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찬바람이 가시기 전에 피는 꽃들입니다.
광대나물이 이렇게 큰 무리를 지어 자랄 수 있는 것은 꽃으로 수정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씨앗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로 폐쇄화(닫힌 꽃)를 만드는 것입니다. 광대나물은 우선 꽃을 이용해 수정하기 위해 꽃에 꿀을 저장하고 곤충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추워 곤충이 오지 않을 경우 등에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꽃잎을 열지 않고 암술과 수술이 자가수정해 씨앗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경우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만나는 타가수정보다는 못하지만 종족을 보존할 수는 있습니다. 제비꽃·고마리·솜나물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폐쇄화를 만드는 식물이 적지 않습니다. 식물이 번식과 생존을 위해 정말 다양하고 파격적인 방법을 쓰는 것을 보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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