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국문학공모전 운문부문 심사평
짧은 분량으로도 사유의 궤적이 드러나
제23회 의정부 전국문학공모전의 응모작은 일반부 128명 310편, 고등부 4명 98편, 중등부 37명 81편 총 489편입니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응모량이 감소한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최근 경향을 반영하듯 산문 투의 내용을 시 형식을 빌려하는 시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분량으로도 글쓴이의 사고의 궤적이 잘 드러나며,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의 즐거움 속에서 운문이 생겨나고, 말을 넘어서는 침묵의 여백까지 음미를 위해 존재합니다. 무난함보다는 용기, 도전, 실험이 더 높은 점수를 얻는 비결일 것입니다.
<일반부>
많은 응모작 중 심사위원들은 이지성의 「빈집」, 이성은의 「서점에서」, 이은영의 「테트리스」, 강신명의 「동행」, 노경호의 「관음송의 눈물」, 김원호의 「슬리퍼는 슬피 울어」, 김혜나의 「결혼기념일에는 우동을 먹자」등 총 7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이은영의 「테트리스」는 이미지를 동반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산만한 전개로 주제가 흐려졌다는 점이 아쉬웠고, 강신명의 「동행」은 계절의 사유라는 측면에서 가을, 겨울, 봄을 자신만의 언어로 창작하기를 당부하고, 노경호의 「관음송의 눈물」은 현실을 긴장하게 하는 매력으로 보아 시조를 짓는 습작 시간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조라는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관념화로 치닫는 언어는 살피길 권한다. 한편 김원호의 「슬리퍼는 슬피 울어」는 사실적 묘사를 통한 가벼운 서사적 징검다리가 흥미로웠지만 반대로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의 감정」이 혹평을 받은 이유를 대조해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김혜나의 「결혼기념일에는 우동을 먹자」는 우선 참신한 제목에 눈길이 쏠렸으나 스토리텔링 같은 어조가 시의 맛을 반감 시켰다. 시 형식을 취한다고 긴장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압축하는 것도 실력이라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한다.
이상의 응모작들의 단점을 극복한 이성은의 「서점에서」는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아주 발랄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자신만의 언어로 밀고 가는 힘과 개성으로 섬세하게 밀도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낯설게 너무 멀리 나가다보면 흐트러지기 쉬워 단단한 형상력을 방해한다. 이런 점에서 이지성의 「빈집」은 숙련된 솜씨를 선보였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현실의 소묘, 「문고리」에서 설화(說話)를 듣는 깊은 울림, 빈집과 외할아버지의 병치된 언어가 공간을 사유하게 한다. 그러나 “낙엽으로 떨어져 구른다”라는 상투적 표현, 6연의 “외가의 빈 집”의 군더더기는 읽는 이의 몰입이 방해된다.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은영의 「테트리스」, 강신명의 「동행」, 노경호의 「관음송의 눈물」, 김원호의 「슬리퍼는 슬피 울어」, 김혜나의 「결혼기념일에는 우동을 먹자」를 장려상으로 이성은의 「서점에서」,는 우수상, 이지성의 「빈집」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고등부>
우선 임성빈의「조개」, 최서영의「장마」, 홍성준의「엄마의 갑옷」, 김다은의 「녹지 못한 계절에게」 4편을 장려상으로 선정한다. 임성빈「조개」는 참신한 표현으로 서둘지 않고 시를 즐기는 언술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웠지만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 즉 시는 기교 외에 다른 무엇을 찾는 일이다. 최서영의 「장마」는 우산과 손의 실랑이가 흥미로우나, 하고 싶은 말을 감추고 찾게 하는 술래잡기 같은 것이 더욱 흥미를 돋운다는 점을 고려해보기를 바라고, 홍성준의「엄마의 갑옷」은 익숙한 시장 풍물의 순대국밥을 낯섦으로 형상화했다는 부문에 주목도가 높았으나 소재 포착에 비해 엄마의 삶으로 더 들어가 보기를 주문한다. 김다은의 「녹지 못한 계절에게」는 언어를 풀어가며 이미지를 드러내는 구성은 돋보였지만 그 언어의 지시적 의미에 이르지 못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남은 응모작 이은채의 「거울」, 김연호의 「마른 가지의 바람처럼」, 안선용의 「만두꽃」 세편을 두고 심사위원들의 격론이 벌어졌다. 김연호의 「마른 가지의 바람처럼」은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죽음을 풀어내는 고통의 상징이 시 안에 있으면서 ‘축구공, 고무호스’ 같은 소품들이 음율적으로 활용되어 있었다. 이은채의 「거울」역시 빌딩 닦는 아빠의 뒤꿈치에 투영되는 구절들이 맥락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은유된다. 예를 들면 “로프를 젖은 뒤꿈치에 감아두고”, “아빠의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빨랫줄에 걸면/ 투명한 하늘 아래 투영되는 우리 가족”은 카타르시스에서 사색되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빼어난 구절로, 아빠의 삶이 문학적으로 재현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다만 마지막 연은 사족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고민해보길 권한다. 또한 안선용의 「만두꽃」에서는 살아서 움직이는 시어들이 꿈틀대는 생명력을 얻는다. 따라서 의미 없이 설득하려 않으며, 까닭 없이 무겁지 않으며, 필요 없이 언어가 낭비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감정적 환기를 경험시킨 뒤, 그 어떤 안도감과 평온함을 선사해 준다.
격론 끝에 기존에 있던 시와 유사한 이미지가 몇 군데 발견되는 김연호의 「마른 가지의 바람처럼」을 장려상으로 안선용의 「만두꽃」을 우수상으로 이은채의 「거울」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한다. 이마져도 심사위원들의 취향으로 갈린 듯 보인다. 그만큼 우수상과 최우수상의 구별은 무의미할 정도로, 적어도 시평에 있어서는 동률이다. 서둘러 문인으로 진입되기를 기대해본다.
<중등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조한민의 「코로나19」, 유예준의 「그림자」, 안우진의 「감기」, 김연주의 「마음이 단긴 편지」, 김비안의 「언젠가는」 총 5편의 응모작을 장려상으로 선정했다. 김비안의 「언젠가는」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희망의 노래 한곡을 듣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사전달이 주목적인 대중가요와 이미지 제시에 기반을 두는 시와의 차이를 구별하기를 바란다. 김나연의 「마음이 담긴 편지」는 화해를 통한 공동체적 질서를 위하여 손 편지를 쓰는 마음을 그리고 있지만 그 마음을 손 그림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점을, 「감기」를 쓴 안우진에게는 시는 교훈이 아니라 설득이라는 사실을,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쓰지 않는 나만의 언어를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유예준의 「그림자」는 하고 싶은 말을 은유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등부라고 믿기 어려운 수작이 민다연의 「숲속 별 이야기」와 염나연의 「방」두 편이다. 동심을 시로 승화시킨「숲속 별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시사지만 그것이 숲 이야기로 전개되며 “농부의 굵은 땀방울”로 인식되는 점에서 매력이 보인다. “한 편의 동화책으로” 역어내는 완성도가 높다. 반면에 염나연의 「방」은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따라 시선이 이동하면서 “하늘이 벌건 눈물을 토해”낸다는 참신한 표현으로 방이 곧 할아버지의 삶으로 치환되는 상징적인 정경을 그리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아름다운 두 편 중, 어른의 시사를 현실에서 찾아낸 염나연의 「방」에 더 높은 가능성을 두었다. 민다연의 「숲속 별 이야기」를 우수상으로 염나연의 「방」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한다.
중등부에도 예외 없이 엄격한 잣대로 심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완성을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한 쓴 소리로 받아 주기를 바란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장르가 시고, 그러면서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면 시인이다, 라는 말처럼 놋그릇을 오래 갈고 닦아 빛을 내는 마음으로 장기전으로 승부하기를 바란다.
수상자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그 밖의 제23회 의정부문학공모전에 응모해주신 참가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를 짓는 것은 지난한 일입니다. 시에 있어 완성은 없고 다만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언어를 남길 뿐입니다.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를 보면 위대한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읽고 평가해주는 숨은 조력자가 곁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를 짓는 수고 못지않게 문우를 갖는 일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기 어려울 때는 밖에서 알을 깨주는 데미안 같은 사람을 찾으라고, 그 사람과 함께 글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주문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사 : 의정부문인협회 운문분과 심사위원
심사평 : 김기수(한국문인협회 의정부지부 운문분과장, 문학평론가)
첫댓글 김기수선생님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올해는 역시 [빈 집]이었습니다
김기수선생님 심사평 작성하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