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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대구 서부 정류소에서 첫버스를 타고 경남 거창으로 와서 다시 함양 안의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함양 안의에서 산청 원지까지 53km가야하는 고단한 길이 이어질테고 가는길에 삼국시대의 변방이였던
마안산성이나,고근산성도 찾아 봐야 하는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안의-원지 53km
17년 1월 2일
아침 공기가 무척 차갑고
남강 물줄기도 아직까지는 깨끗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멀리 마안산성이 있는 (성매산:지역 주민들은 성이 있다고 해서 성매산이라 부름)
보이는 다리를 건너야한다.
금호교에서 본 지나온 율림숲
멀리 황석산이 지척이다.
그리고 앞은 상백마을의 금호들녁
금호 들녁의 딸기 비닐하우스 단지 가운데 농로길로
좌측은 함양군 수동면 새암산. 우측은 함양군 지곡면의 마안산성이 있는 마안산이다.
마침 딸기 수확해서 팔러 가시는 농부님을 만나 한바구니 팔라고 하니
농협과 계약 재배한것이라 팔것은 없고 한두개 맛보라고 하신다.
3개들고 맛보니 ...맛있다 좀 팔면 좋을텐데
지난번 낙동강길에 밀양 임고문님 집 딸기
오늘 밭에서 딴 싱싱한 딸기 맛을 보고나면 시장에서 파는 딸기는 신선도가 떨어져 사먹기가
불편하다.
비닐 하우스 안의 딸기
90m 비닐하우스 한동 농사 지으면 대략 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신다고
비닐 하우스 농사 지으시는분들과 몇마디 나누고 다시 지름길인 논뚝길로 간다.
좌측 멀리 희미한산은 기백산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찾아서
멀리 마암산
남강물은 아주 맑아서 보기도 좋고
지곡면으로 가는 창평교에서 본 괘관산1252m (대봉산 장군봉)
대봉산 넘어로는 백두대간길의 백운산이지만 지금은 괘관산에 가려서 백운산은 안보임
앞의 능선은 괘관산에서 이어지는 백암산 능선
지나는길에 동네 마을 점방이 들러 라면 하나 시키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대구에서 왔다고 하나 대뜸 박근혜 이야기다.
하이고 할매요 ...저는 그사람 안찍었는데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는다는 이야기
아들네미가 대구에 산다는 이야기
농사 이야기...
할매 이야기 듣다가 보니 라면이 코로 들어 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결국은 빈그릇만 남는다.
남계서원으로 간다고 하고는 다시 점방에서 나와 남계서원으로 향한다.
청계서원과 붉은 홍살문
청계서원은 청계정사가 있던터에 세워진 것으로 탁영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春秋)로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김일손은 성종때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써 靑要職(청요직)을 고루 지냈으나 연산군 무오사화에 희생 당하였다.
그가 이곳 청계정사에서 한 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어 지역 유림들이 그터에 서원을 세운 것이다.
읽어보시죠
이땅의 역사의 준엄성...
김일손은 무오사화대 연류되어 참형을 당하심
史禍(사화) 조선시대에 조정 중신과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禍)를입은 사건을 말한다.
연산군 시대에 유자광을 중심으로 훈구파와 김종직을 중심으로한 사림파
사림파는 세조의 정난을 도아주지 않은 대학자 출신 김종직을 필두로 그 제자인 김여창, 김일손등이 있었고 도덕과 의리를
중요시 틈만 나면 요직으로 들어갈 기회만 살핀다.
훈구파는 세조의 정난을 도와 높은 벼슬을 지낸 집안과 신하들 주측으로 많은 토지를 소유한 일파로써
정인지.신죽주.이극돈 등이 있다.
임금으로 볼때는 훈구파는 이쁘고 사림파는 영 아니올씨다.
허구헌날 사림파와 훈구파는 대립을 한다.이놈의 정치란건 언제나 서로간의 파벌싸움이니 한놈이 디져야 끝나는 정치다
그럼 그당시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을 보며
훈구파와 사림파 1차전 싸움
서로 맞붙어 사림파 아작나고 선비는 죽고 이게 바로 무오년에 일어나 무오사화(1498년)이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2차 사화
6년뒤 1504년에 사화가 또 발생 하는데 이것을 갑자사화라고 부르고 후대의 기묘사화.을사사화를 합쳐서
우리는 4대사화라 부른다.
청계서원 팔작 지붕에 아담한 모습이 편하게 다가온다.
청계사 (淸溪寺)
김일손 선생 위패를 모셔둔곳
문이 닫혀 있어 뚫어진 문사이로 구멍이 나있어 눈만 간신히 들이밀어 빼꼼히 구경한다.
무오사화 1차전을 살펴 보면
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의 수장 훈구파의 이극돈(훈구판)은 사관들이 비밀리에 신록을 편찬하는 기초 자료를 살피던중
자신에 대한 민망한 기록(불경을 달달 외운 덕분에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는)기록을 발견하고 이를 작성한 사관인 김일손(사림파)에게 수정 해줄것을 요구한다
이극돈:어이 이거 좀 지아도
김일손 :머라카노 사초는 지우거나 수정하는게 아니다. 택도 없는 소리하지마라
이에 앙심을 품은 이극돈은 김일손이 쓴 다른 실록을 찾아 보다가 김종서 황보인등은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는 등 세조
집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내용과 세조가 의경세자의 후궁 권씨에게 관심을 갖고 며누리를 탐했다는 등 실록에 세조를
비하하는 경천동지할 기록을 발견한다.
이극돈은 학문과 노는데 일등인 서자 출신의 사회불만이 가득한 유자광에게 찾아가고서 코를 바른다.
유자강은 이극돈으로 부터 위와 같은 사실을 듣자 사안의 심각성을 알아보고 즉시 훈구파 중신들을 찾아가
"같은 하늘아래 임마들 하고는 숨도 같이 못쉬고 더 이상은 못산다! 몽땅 직이 뿌자"고 상의하고
이사실을 연산군에게 알리자 연산군은 꼭지가 돌대로 돌아 버린다.
안그래도 언놈이던 한놈 걸리기만 하면 직이뿔라고 기다렸는데
담장 넘어 옆집은 남계서원
탁영 김선생 유허비
아무리 임금이라도 사초를 볼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연산군은 사초 일부를 직접본 후 머리가 완전 돌아 버린다
연산군은 사림파의 김일손을 잡아들여 사초에 대한 시실에 입각하여 엄한 문초를 가한다, 불로 지지고 비틀고 매질하고
반쯤 죽이 놓으니 김일손은 고문에 못 이겨 김종서에 관한 이야기와 세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출처를 밝혀
사림파는 죽거나 귀향길로 가고 훈구파도 아작난다.
어지간하면 이극돈 하고 김일손하고 사초내용 서로 좀 고쳐 주고 살지 서로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김일손은 사약을 받고
김일손의 무오사화 이야기는 뒤로 하고 바로 옆집에 자리하는 남계서원으로 향한다.
남계서원 붉은 홍살문 옆에 하마비(下馬碑)
니가 누구라도 이곳에서는 무조건 말에서 내려라는 하마비가 겁날 지경이다.
차끄실고 문앞까지 간사람도 있구만
뼈대높은 양반가에서 어느 누구라도 이곳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며 세운 하마비
출입문
풍영루(風永樓)
이중보와 부연 석가래 그리고 기둥이에 주심포와 기둥사이의 둥근 다포형식에 화려한 단청을 칠함으로서
평민이나 노비들은 감히 쳐다보지 못할정도의 위용이다.
풍영루 처마는 팔작 지붕이고 기둥위에 주심포
그리고 이중보와 석가래 단청
가운데 대들보에는 청룡 한마리가 구불구불 헤엄치는듯하고
대단한 서원이다.
남계서원 강당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 기관이며 선현들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곳이다.
남계서원은 조선초기 성리학자이며 동방 5현으로 불리는 일두(一蠹)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1552년
지방 유생들이 건립하였다.
대구 현풍에 이노정이란 곳에도 정여창 선생과 김굉필 선생이 무오사화때 화를 당하시고
그곳에서 후학들 가르치던 곳이 있어 생각난다.여하튼 정여창을 모신 사당은 전국적으로 9곳이나된다.
이서원은 풍기의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서원이며 1566년 명종임금에게서 하사받은 사액서원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으나 1612년에 현재 자리에 다시 세웠으며 흥선대원군때 서원 철폐령때 헐리지 않고 존속한 서원중
하나이다.
오늘 문중에서 모이는 날인가 몇몇분들이 보이고
묘정비
남계서원에 정여창.강익,정온 세분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고 있음에도 이를 찬양하는 숭덕비가 없어 200년 지난뒤에 1779년에 묘정비를 세우면서 글을 세겼다.
비문은 온통 한문이라 돌팔이로써는 이해 불가
우측 보인재(補仁濟)는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서재
보인재는 논어에 나오는 "군자는 글로서 벗을 사귀고 인을 돕는다"는 글귀에서 다온 말이다.
강당위로 올라와서 敬(경)과 論(논)을 연구하고 학술하는 명성당
다른 서원에 없던 탱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탱화는 궁(宮)이나 전(殿)에서만 사용하는것인데 이곳의 탱화는 눈에 담기에 어지러울뿐
서원은 학동들이 하늘천, 따지 하던곳이 아니다. 모든 서원은 사당 중심의 신전이고 학생들은 제나장이나 신관급의
권력을 지녔을터이다. 이곳의 동제나 서재에 극소수의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고 생활 하였을것으로 짐작된다.
서원 정치란게 붕당정치 중심으로 이어졌으니 입구에 하마비,홍살문을봐도 양반님네들의 그 오만함의 엿보이고
지금 이곳의 단청을 보면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가 될까 싶을 정도로 오색 찬란하고 어느 산아래 오래묵은 무당집처럼
정신마져 흐려지게 되니 안동의 고풍스런 서원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서원...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유지하려는 수단과 세력을 확대 형성하려는 의도가 앞서 서원제도는 폐단을 낳기 시작하고
학연으로 맺어진 붕당(정치 집단)은 각자의 서원 중심으로 분활되어, 여론을 형성 하면서 중앙에 진출한 자기세력 관료를
통하여 반영 시켰다.
개인의 명예를 세우는데 급급 하였으며 타당을 배척하고 헐뜯는데 열중하다 보니 선열들의 가르침은 뒷전이고
당쟁만 일삼아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는다.
서원이란 이름은 처음과 다르게 교육에서 붕당의 거점으로 변질 하였고
서원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양반,유생들은 대부분 하는일 없이 서원의 재산을 독식 하거나
백성들은 자진해서 서원의 노비가 되므로써 나라의 구역을 피하거나
어딜가나 있기 마련인 상태 안좋은 팔자걸음의 양반들이 고을을 휩쓸고 다니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은 세금이 없다보니 특권을 남용 하거나 국고를 축내고
유생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붕당에 가담하여 향교의 쇠퇴를 유발하였다.
그래도 돌팔이 눈에는 이쁘게만 보이니 제사보다 젯밥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 그런것 같다.
여기를 관리하는 후손이신데 탱화에 대하여 몇가지 물어 보니
자세히는 모르시는것 같아 돌팔이가 보는 이곳서원과 정자의 부연 석가래와 탱화에 대한 이야기 몇마디 하니
아주 대단한 사람이 온듯 방으로 들어와 커피라도 한잔 하라며 하신다.
ㅎㅎ 저는 돌팔이라 아는것도 없고 갈길이 멀어 고근산성으로 갑니다 하고 나온다.
서재와 강당 우측의 동재
그리고 서재와 동재 아래로는 연못이 각각 하나씩 있다.
연못은 각각 네모지게 만들어 그분들의 세계관이 올바른 직선 아니면 죽음 아니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분들의 고집스런 마음이 엿보이는 연못 두개
도로따라 한참 나와서 연화산을 찾아간다.
일두 정여창 선생을 한번 더 생각 하면서 연화산 고근산성터로 찾아보기로 하고
짜잘한 산으로 오른다.
사근산성 추모관
사근산성 순국선열 추모비
읽어 보시고
함양 사근산성
함양군 수동면 연화산에 있는 옛산성이다.
성벽 길이는 1,218m ,높이 4미터 성벽은 보시는것과 같이 네모나게 가공한 납작한 돌과 자연석을 단단하게 쌓아 올렷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연못과 봉수대가 기록 되어있는데 봉수대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신라시대에 백제에 대비해 쌓았다고 하며 인근의 마안산성과 황석산성 방지산성가 연계되어 있으며
1380년에 왜구의 침입에 죽음으로 항전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성터 한바퀴돌아 보기로 하고 일단 뛴다.
저기 가운데 우물터 하나 있음
서,남쪽에 자리하는 봉수대 모습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물터는 두곳
남쪽 산정에 하나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정 급하면 저물도 감사하게 마셔야 할판이다.
앞은 수동면과 화장산
좌측 멀리 산청의 왕산과 필봉산
우측 멀리 삼봉산 자락
성터 다시 복원해둔곳이다.
한국의 야생화 중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구절초
아직도 생생하다.
겨울이 와야 겨울이지 언제나 가을이라고 외치는듯
좌측부터 웅석봉- 필봉산과 왕산 화장산
성터에서 인증 담고
짜잘한 연화산에 올라
좌측부터
백두대간능선 가장 높은곳은 백운산 그앞으로 괘관산
지곡면 들판
우측으로 멀리 황석산이 구름에 쌓여 보일듯 말듯
멀리 긴능선은 백두대간 남덕유에서 갈라지는 남강기맥길의 거창 남상면의 덕갈산이다.
좌측은 죽산
가운데 멀리 합천의 황매산이고
우측 멀리 정수지맥길의 정수산과 가제산
좌측 멀리 정수산과 둔철산
가운데 웅석봉
뽀족한곳 필봉산-왕산
그뒤로 밤머리재에서 오르는 도토리봉도 보인다.
앞으로 보이는 곳은 함양의 천령봉
삼국시대 신라 변방을 지키던 산성들
서로 연될 되어 있으며 황석산성만 아주 높은곳이 자리하며 나머지는 모두 조망이 좋은 산들이다.
사근산성에서 내려와 사근교에서본 함양 소동 공단
앞은 사근산성
가운데 뽀족한곳은 마안산성이 있는 마안산
앞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함양 유림면 대궁리
대규모 축사단지에서 나오는 축사 똥물이 남강으로 여과없이 흘러드는 모습이다.
지난번 섬진강 지날때 전남 곡성군에서는 섬진강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이곳 함양에서는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르게 한다.
냄새도 심하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 그저 죽어라 뛰어야 하는구간
남강이 거울처럼 깨끗하다고 자랑했더니 이곳에서 부터는 영 아니다.
재궁마을 김생원집 머슴 호랑이를 잡다.
조선영조때 재궁마을 김생원집에 머슴이 살고 있었는데
밤에 남강에서 흘러가는 냇가에 놓은 살에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이상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호랑이 한마리가 물고기를 주워 먹기위해 다가왔다. 힘이 센 머슴이었으나
호랑이가 무서워 풀섭에 몸을 숨겼는데 하필이면 물뱀이 다리를 감고 있어 너무 놀라 호랑이의 존재도 잊고
"엄마야"하고 몸을 솟구쳤다.
난데 없이 솟아 오르는 사물에 놀란 호랑이가 앞발을 지켜들자 머슴은 저도 모르게 호랑이의 허리를 꺼안고 죽을 힘을
다했다.사나운 호랑이 였지만 머리와 날카로운 알발이 머습의 어깨에 걸려 꼼짝도 못하여 알발로 할퀼 수도 없었다.
머슴을 죽는다는 생각으로 호랑이를 껴안고 걸어서 집 마당에 도착하자 다른 머슴들이 놀라서 떨고 있을때 김생원이 머슴들을 시켜서 밧줄로 호랑이들 잡았다.
앞은 재궁 마을
재궁마을에서 본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멀리 왕산 필봉산이 지척이다.
생초면 어서고개의 민간인 학살사건 추정지
잠시 학살사건에 연류되신분들께 묵념하고 막걸리라도 있으면 한잔 부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지난다.
함양과 산청 경계지역인 어서 고개
고개 좌측으로 태봉산이 있으나 짜잘한 산은 별로
오늘 이런 짜잘한 산으로 몇번 가는지 모르겠다.
우측 멀리 화장산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우측 마을은 산청군 생초면
왕산과 필봉의 우람함
돌다리 건너가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중간쯤 건너가다가 물살이 너무 쎄서 포기하고 돌아나온다.
여름이라면 쉽게 건날 곳인데 겨울이라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발가락 떨어져 나가는것 같다.
남강(산청에서는 경호강) 오부 절벽지대
예전에 레프팅 할때 배를 띄우던곳
남강에서 나름대로 운치있는 곳인데 제방둑에 펜션이 너무 많아 별로다.
좌측으로 둔철산 우측으로는 지리 태극종주의 들머리격인 웅석봉이 보인다.
산청 특리 지석묘 고분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 부른다.
특히 규모가 크거나 부장품이 풍부한것은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네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 방을 만들고 그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뒤 그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 된다.
이곳에는 덮개돌 35개가 모여있고
돌 크기로 봐서는 경북 안강의 고인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예전 사람들이 이런 돌이 있으면
앉아서 쉬는 휴식 같은 공간이었을지
농사짓다가 앉아서 막걸리한잔 하기 딱 좋은 자리
그래서 그대론 둔것 같다.
법이 없다면 포크레인으로 퍼다가 버렸을텐데...
웅석봉이 지척이고
좌측으로 지리산 태극종주시에 야간에 지나는 새봉
우측으로 산청의 자랑인 필봉산
경호강 레프팅 업체
페들과 안전모가 잘 정돈되어 보기좋다.
지리산 둘레길인가?
좌측은 정수지맥길의 정수산에서 이어지는 가제산- 우측은 둔철산
다시 짜잘한 언덕으로 오른다.
짜잘한 언덕의 바람재
대나무 숲사이로
남강 강가 바로옆에 산청군 분뇨 처리장을 지나는데 그향기가 지독하다.
정수된물이 이속으로 흘러들겠지 생각을 하니... 아이고!~ 드러라
이런곳에서 한때는 레프팅한다고 첨벙 거리고 돌아다녔으니
예전 지리태극종주시에 가끔 애용하던 성심원 종교 단체
규모가 대단히 크고 잘지어진 곳
이곳은 그리스도 복음 정신과 프란시스꼬 성인의 모범에따라 가족과 사회로 부터 소외받은 한센인을 위한 치료와
헌신으로 인간 존엄성을 되찾아주며 복지증신을 통한 사랑의 공동체이다.
성심원에 계시다는분이신데 산에서 칡뿌리 케서 오는길이라며
"한입만 하고 싶지만..."
웅석봉 과 어천 마을
초창기 지리태극을 하던곳이 바로 웅석봉 아래 어천마을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곳
이탑은 6,25전쟁과 베트남 참전 및 88사건등에 참전한 산청군 출신 국가 유공자 1,297명
청춘과 신명을 다바쳐 용감히 싸워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에 헌신한 공훈을 후손에게 널리 알리고자 설치한것이다.
호국 영령들의 호국정신을 청사에 기리기 위해서 경건한 마을으로 참배하고 ...
경성대학교 산청 연수원 방향
백마산 286m작아도 그 이용이 대단한 산이다.
산위에 백마산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때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이곳 백마산성에서 의병들이 지키며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다
때는 한여름이라 산위에 마실물은 모두 떨어지고 왜놈들은 이사실을 아는지 그저 항복하기만 지키고만 있을뿐이다.
의병들은 목가른 갈증에 고생하고 있는데 어떤 장수가 말(馬)을 끌고와 쌀을 말등으로 퍼서 던지니 산 아래서 보던 왜놈들이
산위에 물이 많은것으로 착각하고 "야 저위에 물이 많은것 같으니 그만 지키고 돌아가자"고해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수지맥길의 날머리 적벽산
적벽산이란 중국의 유명한 지명을 뜻하는 많큼 원지의 적벽도 절벽과 조망이 아주 좋은곳이다.
가는길에 보면 알 수 없는 한문이 바위 절벽 곳곳에 써있다.
우암 송시열이 쓴 적벽(赤壁)이란 글도 있는데 어느게 어느건지 알길이 없어 그저 머리나쁜 돌팔이란게 마음에 아플뿐
정수지맥 날머리 적벽산
정수지맥은 남강 기맥길 소룡지 지나 분기봉에서 정수-둔철-적벽산으로 이어지는 34km의 산줄기지만
지난 여름에 젊은 미소 대장님과 생고생 한곳이기도 하다.
머리 웅석봉에서 이어지는 석대산 능선이 보인다.
적벽과 남강
멀리 웅석봉이 잘 가라 고개를 내밀고
백마산을 끝으로 오늘 53km 줄기차게 뛰어 왔다.
멀리서 보는 백마산이 삼진강에 자리하던 채계산과 흡사 닮은듯
원지 고수 분지에서 본 양천과 남강 합수점 정수지맥길의 날머리이기도 하다.
멀리 다리 보이는 부분부터 본격적인 진양댐이 자리한다. 이곳까지 그런대로 깨끗하게 흐르던 물이
저곳부터 얼마나 더러워 질지 ...
이제 두구간만 더가면 남강길도 끝난다.
원지 버스 터미널에 가니 진주가는 차는 1분전에 떠나고 무작정 기다린다.
그리고 나이드신 꼬부랑 할머니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버스가 와야할시간보다 20분정도 늦게 오는것 같다
이차를 타야 진주에서 곧바로 대구로 가는데 마침 버스가 들어 온다
운전기사가 줄서있는곳에 안서고 좀더 멀리 서니 젊은 사람들만 우르르... 몰려 가니 나이드신 할머니들은 우짜라고
차에 타자 마자 "아저씨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하셔야지
아저씨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차를 서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니 그러다 다치면 누가 책임지고 줄서는 의미가 없잖아요"하니
-내차 내마음대로 한다는 뜻인지 뭐라 뭐라 궁시렁 거린다.-
"그래서 잘했다는 뜻인가요"한마디 하니
조용하다
한마디만 더하면 이왕 늦은거 대판 판벌일 생각이었는데 ...
버스가 늦게와서 진주에 오니 대구로 가는 버스도 10분전에 떠나고
완전 낙동강 오리알이라...
남강 꼭 가볼곳
1,주논개님 묘 -방지산성
2.황석산 산성- 황암사
3.거연정-함양 광풍루 6km 선비길
4.청계정사-남계정사-사근산성 3km
5.백마-적벽산 2km
첫댓글 ㅋ~~
죄송합니다
이곳은 제가 숨쉬고 살아가는 곳인데 무례가 있었나 봅니다.
^^
귀엽게 봐 주심^^ 고맙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지만 이렇게 유서깊은 곳인지 처음 알게 되네요
늦었지만 복 많이 받어시고 올 한해도 건승을 빕니다^^!^^
원지에 사시나 봅니다.
본격적인 진양호가 시작되는곳이죠
진즉에 알았으면 연락이라도 해서 좋은 정보 알아보는건데...
적벽과 백마산 사진 좋은것 있으면 한번 부탁드릴까요
방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너무 보기 좋습니다. 굿!
골빙드는 모습 보기 좋죠
빨리 한강으로 가야 범털지부장님 얼굴 볼텐데작년에 이어 올해도 감사 드립니다
어천태극이 시작되는 곳도 지나는군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순수함이 사라지듯이 강물도 깨끗함이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남강은 진양호 때문에 진주부터 그아래쪽은 물이 똥물 수준 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나 섬진강물을 아끼는 전라도민의 걍물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남강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점차 더러워지는 남강"
강물은 흐르면서 맑아지는 것이 본분(?)인데... 강의 본분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경남의 젖줄이라 불리는 남강은 오염의 원인이 적은편입니다만...상, 하류에 따라 수질의 변동이 심한 편이지요.
남강 하류에는 질소와 인에 의한 수질 부영양화 현상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관리의 문제(?)도 한몫을 하겠지요.
이번구간은 남강 구비구비 흐르면서 분지를 형성한 산청, 함양, 안의 지역이군요.
옛 신라의 변방을 지키던 산성이 유독 눈길을 당기는군요.
높은산이라면 이미 그 높이로 넘기 힘든 국경의 역할(?)을 했을터인데...
낮은산 짜잘한(?) 연화산이라 산성이 필요했나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상류는 더 없이 깨끗하더니 사람사는곳으로 내려오니
맑은 강물은 더이상의 맑은 강물이 아닙니다.
산성은 대부분 짜잘한곳에 자리하죠 큰산에 산성이 있어도 별 필요가 없었고...
글 감사드립니다.
풍영루 처마는 팔작 지붕이고 기둥위에 주심포
그리고 이중보와 석가래 단청
가운데 대들보에는 청룡 한마리가 구불구불 헤엄치는듯하고
대단한 건축물입니다
방장님은 건축미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십니다
강행기 잘보고 나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예전에 전통 가옥 연구한다고 어떤 단체에 가입해서 돌아다닌게 지금 도움이 되더군요
뭐든지 배우고 읽히면 그게 뭐든 도움이 되는 세상이니
강줄기 열심히 돌아다니며 자료 찾아 두겠으니 훗날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저번엔 남강이 제일 깨끗하다더니...
인간이 사는곳은 어디나 처음의 모습이 사라지니 이또한 어쩔수 없나 봅니다.
근데 그 많은 산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요?
안다고 해도 그 산이 그 이름이라고 지정하기는 더 어려울듯 한데...
방장님 머리 좋은가벼~
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예전부터 짜잘한 산 참 많이 돌아다닌게 지금에야 필요한 자료가 되니
산이름 기억하는게 문제지 그산이 어느쪽으로 연결되는지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
제가 돌머리인것 아시죠
방장님은 대단 하십니다.
역사학 지리학박사 학위 가지고 계신거 맞지요?
공부 일직 포기하길 잘한걸 세삼 또 느끼게 되내요.
갔다온 산이름도 모르는대 이런저런 부연 설명까지 잼나게 잘읽고 많은정보 얻어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화 이 팅 !!!
아닙니다.
전통 가옥과 불교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해둔게 도움이 되었구요
정자와 서원에 대해서 조금 알면 별로 어려운게 없는 강행입니다.
강줄기 끝나면 다시 대간길로 가서 좀더 체계적인 대간기를 한번 써볼까 합니다.
지켜 봐주시기 바라구요 글 감사합니다.
방장님 강행기를 읽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많은 산과 역사 곳곳의 상세한 설명을 어찌 그리 많이 아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길보다 더 힘든 강길 걷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ㅎㅎㅎ 돌팔이라 아는것도 없구요
예전에 공부해둔게 잇어 조금 써본것 뿐입니다..
이번주 대간길 조심해서 잘 다녀 오십시 바랍니다.
국도나 지방도로 다니기를 좋아해서 몇번은 지나갔을터인데
생소한 역사가 숨어있었네요.
덕분에 지역 역사공부 잘받았습니다.
그리고 단독으로 교신하는 인공위성이 있는지요
겹겹으로 겹칠때는 산줄기찾기가 까다롭던데 내공이 신의경지입니다.
언제나 수고가 많으십니다.
단독으로 교신하는 인공위성 있죠
강줄기는 도로가 어디로 향하는지 미리 보지 않으면 한참 돌거나 자칫하면 엉뚱한곳으로 가서 헤매게 되니
시간날때마다 인공위성 지도 확인하고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가다가 역사적인것 있으면 찾아도 보고
이번주 정맥길에 많이 춥다고 합니다. 준비 잘해서
안전하게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늘 고마워요^^
방장님 글 읽을때마다 새삼 부러움을 느낍니다`~
산 그리메를 볼때마다 늘 궁금하거든요~~ 펼쳐진 산 이름이요~~
알고 싶다고 다 알수는 없는거니~~
발품 팔아서 알고 있다니 어찌 따라 하기도 힘들구요~~
즐감하고 갑니다`~
예전에 조금씩 다니던 곳이라 집더날때 미리 공부를 좀 하곤 하는데
워낙 돌팔이라 집에 오면 다시 잊어 버립니다.
혼자 가다보니 인공위성으로 공부를 하는데도 가끔 엉뚱한곳으로 가서
뺑이 치고 돌아 나오곤 하는데 금강길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대간 화이팅 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뭐하는것도 없으면서 강행기를 이제야 읽어봅니다
나는 언제 강줄기 공부를 할려는지 자료도없고 ~~ ㅎ
올해도 골빙이 차곡 차곡 쌓이겠군요 욕보셨습니다
산행기 보다 강행기에는 쓸게 너무 많아서 핵심만 쓰는데도
한참 쓰게 됩니다.
덕분에 현장에서 역사 공부도 하구요
아마도 강줄기 어느정도 하고 나면 역사 학자가 될듯하더군요
이번주 정맥 잘 댕기 오세요 후원 감사히 잘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