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차려진 차례상 앞에서 네 사람이 절을 올린다. 준비는 어제 이순신이 해두었다. 절을 마친 네 사람이 이제 막 음복을 하려는데 조방장助防將 정걸 장군이 왔다. 정걸은 전라 병사 최원이 보내온 설 선물과 각종 화살들은 진해루(여수 진남관) 아래에 놓아두고 편지만 이순신에게 가져왔다. 정걸 뒤에는 전라 병사가 보낸 물건들을 짊어지고 온 군관 이경신과 병사들이 서 있다.
이순신은 조방장이 왜 전라 병영 군사들을 모두 자기 앞에 데려왔는지 잘 알고 있다. 정걸은 그런 사람이다. 좌수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이순신에게 직접 격려 말을 듣고, 이순신이 친히 내려주는 술과 밥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면 장졸들은 사기가 치솟는다. 이순신에게 그런 공덕을 쌓으라는 것이 정걸의 주문이다. 이순신 또한 그런 성품이니, 병영에서 온 군관과 병졸들이 서운함을 맛볼 일은 결코 없다. 얼마 후, 기쁜 낯으로 병영 장졸들이 돌아선다.
이우신은 구면이지만 봉과 회는 정걸을 처음 본다. 둘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한 채 정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칼을 차고 투구를 쓴 장수이기에는 너무나 늙은 노인이다.
‘할머니가 77세인데 저 장군은 연세가 얼마란 말인가!’
정걸은 이순신의 어머니 변씨보다 한 살 많은 78세였다. 전라 좌수사(정3품) 이순신을 돕는 부지휘관 역할의 조방장(종4품)을 맡고 있지만 나이는 이순신보다 31세나 많았다.
정걸은 이순신이 태어난 1545년보다 1년 전인 1544년 무과에 올라, 이순신이 급제한 1576년보다 4년 전인 1572년에 이미 지금의 이순신과 동급 벼슬인 경상 우수사를 지냈고, 그 후에도 전라 우수사와, 이순신의 현 직책인 전라 좌수사까지 지냈다. 게다가 한 계급 위인 전라 병사(종2품)도 역임했다.
정걸은 젊은 시절 두만강 일대의 온성 부사(종4품)와 종성 부사 등을 맡아 국경을 지키는 육군 장수로 일했고, 장년 들어서는 창원 부사와 전라 병사 재임 기간을 제외하면 모두 수사로 근무했다. 그 정걸이 지금은 되레 낮은 벼슬로 내려와 거의 손자 또래인 47세 이순신 아래에서 78세 조방장으로 있다.
봉과 회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순신도 같은 마음인가? 마루에 앉아 있던 이순신이 뜰 안으로 정걸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었다.
“영공令公께서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다른 장수 편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세배를 드리러 찾아뵈었어야 도리인데 동생과 조카들이 때맞춰 당도하는 바람에 여태 이러고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정걸이 허리를 반쯤 숙이며 대답한다.
“영감께서는 어이 그런 황송한 말씀을 거듭 하시오? 자꾸 그러시면 모두들 이 늙은이를 욕할 것이외다.”
대감大監은 중앙 조정 정2품 판서 이상 고위 관리를 부르는 호칭이고, 그 외 정3품 이상은 영감令監이라 불렀다. 이순신이 정3품 수사였으니 정걸이 그를 “영감”으로 호칭한 것은 관례에 따른 일반적 언사였다.
반면 이순신이 정걸을 “영공”으로 부른 것은 대단한 예우였다. 이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죽었을 때 임금과 조정이 시호諡號를 내리면서 ‘공’이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다. 중국 주나라 말기 춘추시대(기원전 770년∼ 기원전 403년) 제후들도 ‘왕’을 자칭하지 못하고 ‘공’으로 만족했었다. 20년 전부터 수사를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31세나 연장자인 노장 정걸을 “조방장” 또는 조방장의 별칭인 “경장” 등으로 부르는 결례를 꼼꼼한 이순신이 범할 리 없다.
정걸이 ‘수사께서 줄곧 “영공”이라는 극존칭을 쓰면 사람들이 종내는 이 늙은이를 욕할 거외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이순신은 전라 좌수영에 오고 두 달가량 지났을 때부터 이미 정걸을 ‘영공’으로 모셔왔다.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에 부임할 당시는 한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2월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순신은 맹추위로 온몸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임기를 개시하면서 곧장 마음까지 얼어붙고 말았다. 수사로 근무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그랬다.
전라 좌수영이 관할하는 5관(순천 도호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현, 흥양현)과 5포(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의 수령과 장졸들이 모인 가운데 이순신 전라 좌수사 취임식이 열렸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장졸들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는 그런 행사였다. 하지만 자리에 참석한 수령과 장수들은 오만상 얼굴을 찌푸린 채 애꿎은 땅바닥만 발로 툭툭 차댔다.
“저 양반이 뉘시여? 그 유명한 이순신 아녀?”
“류성룡이 뒷배를 봐주어 단숨에 수사에 올랐다지?”
수령과 장수들은 어쩔 수 없이 이순신에게 인사는 했지만 뒤로는 그렇게들 쑥덕댔다. 이순신으로서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부하로 둔 탓에 피어오른 먹구름이었고, 수령과 장수들로서는 위계질서를 깨뜨리고 벽력같이 승진한 이순신에 대한 의구 때문에 품게 된 짙은 불신감이었다. 조직의 위기였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