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특성이나 문화는 그 나라의 속담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물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서양의 경우에도 놀랄 만큼 비슷한 속담들이 있는데, 이는 인간사가 다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문화교류를 통해 속담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나 ‘쇠뿔은 단김에 빼라’ 같은 우리 속담들은 ‘같은 깃털의 새들은 함께 모인다’나 ‘요리사가 많으면 국을 망친다’나 ‘쇠는 달구어졌을 때 때려라’ 같은 영어 속담들과 대단히 흡사하다. 더구나 “사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같은 것은 아예 우리말과 영어가 똑같다.
그러나 약간 다른 것들도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은 ‘부화도 하기 전에 병아리를 세지 마라’인데, 전자에는 뭔가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후자에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 있다. 또 우리 속담의 ‘엎질러진 물이다’는 영어의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울지 마라’와 비슷한데, 전자는 ‘포기’의 뜻을, 후자는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와 ‘울타리 너머 풀밭이 언제나 더 파랗게 보인다’는 각각 농사와 먹는 것을 중시했던 사회와 목축과 잔디밭이 중요했던 사회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속담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 속담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영미 속담인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미리 조심하는 게 낫다(Better Safe Than Sorry)’의 경우, 전자는 준비를 소홀히 해 낭패를 보는 상황을, 후자는 늘 조심하며 살자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나 소를 잃은 다음에야 외양간을 고치는데, 그것도 제대로 고치는 법이 없어 또다시 소를 도둑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예컨대 해마다 수해(水害)가 나지만 여전히 대비가 소홀하고, 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음 해 수해를 맞으며, 잘못된 대학입시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가도 고쳐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해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우리는 준비가 철저한 사람을 쩨쩨하거나 소심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니 안전의식이 미덕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설마?’ 하다가 늘 사고를 당하고 후회한다. 오죽하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우리에게는 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주위 사람이 잘되면 웬일인지 우선 배부터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우리 사회에는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건 참을 수 없다’라는 희한한 속담까지 생겼다. 영어에는 ‘이길 수 없으면 그 사람과 한편이 되라(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배 아파 하지 말고 차라리 잘나가는 사람과 손을 잡으라는 뜻이다. 또 우리 속담인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에는 놀부식 ‘심술’이,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에는 ‘지기 싫어하는 오기’와 ‘자기 합리화’가 깃들어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깨우쳐준다. 수단이야 어쨌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이 속담은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과연 떳떳하고 올바른 정도(正道)였는지 돌이켜보게 만든다. 혹시 그동안 우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불량식품도 만들어 팔고,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라면 부정행위나 ‘찍기 요령’ 습득도 불사하며, 성실한 과정보다는 지름길만을 찾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선거철을 맞은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만 쥐면 된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담은 오랜 세월에 걸쳐 민중들이 만들어온 것으로서 한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반영한다. 우리의 속담들에도 선인(先人)들의 지혜와 풍자와 해학이 깃들어 있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중요한 지침들이 내재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속담을 교훈 삼아, 재난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며, 목적달성보다 수단을 중요시한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