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화친을 주장한다)' 두 글자가 신의 일평생에 허물이 될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신은 아직도 오늘날 화친하려는 일이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지금 논의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정묘년(1627)에 화친을 맺은 것은 의리에 해로움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 외람되이 천자라고 호칭을 하였다. 다시 그들과 사신을 통할 수 없다.' 이 말이 그럴 듯 합니다만 실상은 깊이 생각한 것은 못됩니다. 저 오랑캐가 정묘년의 형제 동맹을 어기고 우리에게 비례(非禮)를 강요한다면 의리상 결코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렇지 아니하고 계속 이웃 나라의 예를 써 옵니다. 그들이 천자라고 외람된 호칭을 하고 안하고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어찌 예의 문제로 오랑캐에게 문책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경망하게 큰 소리를 쳐서 오랑캐의 노여움을 사서 끝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신이 이렇게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시비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이해로만 아뢰어 전하를 잘못 인도함이 아닙니다. 현 정세를 참작하고 의리를 재량하며, 선유들의 정론에 고증도 해보고 조종께서 행하신 사적을 참고하여, 이렇게 하면 반드시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고 이렇게 하면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하면 도리어 해로울 것이고 이렇게 하면 사리에 합당할 것임을 생각하여 그것이 꼭 옳다는 자신이 서서 아뢴 것입니다. 늘 생각해 보아도 국력은 현재 고갈되었고 오랑캐는 병력이 강성합니다. 정묘년 때 맹약을 아직 지켜서 몇 년이라도 화를 늦춰야 합니다. 그 사이 인정을 베풀어 민심을 수습하고 성을 쌓고 군량을 저축해야 합니다. 또 방어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군사를 집합시켜 일사분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적의 헛점을 노리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계책일 것입니다. 최명길, <섬천집>
(인조 14년 11월 무신, 부교리 윤집이 상소를 올렸다.) 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부모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진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까지도 모두 황제의 힘입니다. 우리 나라가 살아서 숨쉬는 한 은혜를 잊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오랑캐의 형세가 크게 확장하여 경사(京師)를 핍박하고 황릉을 더럽혔습니다.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전하께서는 그 때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구차스럽게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병력이 미약하여 정벌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차마 이런 시기에 어찌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야 있겠습니까. <인조실록>
명나라 장군 모문룡이 가도에 군대를 주둔시켜 후금을 자극하는 가운데 광해군이 쫓겨나고 이괄의 난 등으로 조선의 정세가 어수선해졌다.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야심을 가진 후금은 이 틈을 타서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 정묘호란 뒤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이라고 고치고 조선에게 군신 관계를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조정 의견은 크게 주전과 주화로 나누어졌다. 주화론을 대표하는 최명길의 글과 주전론을 주장하는 윤집의 글을 읽고 누구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