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호박과 늙은 호박
최광희 목사
텃밭에 나갔다가 예쁘게 자란 둥근 호박을 발견하고 더 자라서 씨앗이 생기기 전에 얼른 따 왔습니다. 둥근 호박이란 소위 늙은 호박이 어릴 때의 모습을 말합니다. 어린 상태라면 애호박이라고 불러도 좋겠지만 길쭉하게 생긴 애호박이 따로 있기에 그것과 구별하기 위해 둥근 호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둥근 호박은 지금이 먹기에 딱 좋은 상태입니다. 조금 더 자라면 속에 씨가 생겨서 일일이 발라내어야 합니다. 된장찌개에 둥근 호박을 하나 썰어 넣으면 맛있는 찌개가 됩니다. 물론 호박 입장에서는 제대로 자라보지도 못하고 씨앗이 여물어 후대에 종자를 전하지도 못하고 끝나는 것이 아쉬울 지도 모릅니다.
이 둥근 호박을 바라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박이 이렇게 예쁜데 사람들은 왜 예쁜 얼굴은 사과 같다고 하면서 예쁘지 못한 얼굴을 두고 호박 같다고 할까요? 이렇게 예쁜 둥근 호박이 시간이 지나 늙은 호박이 되면 예쁘지 못한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늙은 호박이 되면서 껍질은 두꺼워지고 여기 저기 흉터도 생기고 둥글던 모양은 펑퍼짐하게 바뀝니다. 한 마디로 제 맘대로 생긴 호박이 됩니다.
그러나 늙은 호박은 둥근 호박과는 비교되지 않는 매력이 있습니다.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면 안에 황금색의 과육이 두껍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박의 과육에는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몸이 붓는 사람에게 호박이 특효입니다. 또한 호박 과육을 넣고 끓인 호박죽은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아서 노인이나 환자에게 매우 좋은 영양식입니다. 호박죽은 각종 오염 물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독소를 배출하는 데도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호박죽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유질이 풍부해서 소화 불량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또한 비타민 A가 풍부해서 논의 보호와 야맹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박죽에는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암 효과와 몸의 면역력을 증진시켜 준다고 합니다.
호박죽을 끓이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되면 황금색 호박 과육을 갈아서 부침가루와 섞어 전을 붙이면 맛있는 호박전이 됩니다. 호박 과육을 잘 갈무리해서 냉동해 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꺼내어 호박전을 부쳐 먹을 수 있으니 이번 가을에는 집집마다 늙은 호박 하나씩 들여 놓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레기로 버리는 호박씨도 볶아서 까먹으면 매우 좋은 간식거리가 됩니다.
이처럼 늙은 호박은 여러 모로 유익하고 쓸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생겼다고 구박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구박을 하든지 말든지 호박은 둥근 호박의 예쁨을 포기하고 늙은 호박의 못 생김을 추구합니다. 그래야 호박 본연의 가치와 매력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러고 보면 덜 자란 둥근 호박을 따온 저는 호박의 꿈을 싹둑 잘라버리는 죄(?)를 지은 샘입니다.
예쁜 둥근 호박과 못 생긴 늙은 호박을 비교하여 상상하면서 저는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호박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매력이 있는 사람을 점잖다고 표현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점잖다는 말은 젊지 않다는 말의 축약형입니다. 점잖은 것은 성숙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속에 있는 매력보다 겉모습을 주목하는 시대입니다. 하나같이 늙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예쁜 겉모양만큼 속사람이 성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늙은 호박이 말해주는 듯합니다. 날씨가 시원해졌습니다. 아침과 한낮의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나는 전형적인 가을입니다. 그 따가운 햇빛을 받으면서 벼가 알이 차고 과일마다 과육의 단맛을 키워갑니다. 이 가을은 우리가 늙어가는 호박을 보면서 외양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추구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