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에서 봉사기관으로 출발하기 시작하면
정원에 핀 코스모스가 잘 다녀 오라고 손짓한다.
가을 코스모스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청초하고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만난 듯 하다.
좀 길긴 하지만 코스모스의 전설을 살펴봅니다.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네. 가을에 피어야 할 꽃이 이상 기온으로 여름에 피었군.” 하는 말은 해마다 듣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코스모스는 파란 가을 하늘, 가을 운동회, 가을 소풍을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가을꽃이지만 사실 멕시코가 원산지라서 6월부터 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코스모스를 가을꽃으로만 여기는 건 가을에야 이 꽃이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일까요.
가을이 되어 미풍만 불어도 휘어질 듯 흔들리는 그 모습이 말이지요.
그래서 이 꽃에 붙은 순 우리말 이름이 ‘살살이’, 가냘프게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양을 뜻합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재채기만 해도 놀라 달아날 것처럼 생긴 이 꽃에 버겁게도 ‘코스모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스모스(cosmos), 우주라는 뜻이지요.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입니다.
그는 우주를 저마다 다른 음을 내는 악기들이 펼치는 화음과 선율의 조화로 바라봤고, 그래서 ‘조화로운 질서’라는 뜻을 가진 단어 코스모스(kosmos)를 우주에 붙였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우주를 질서 있는 세계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재채기에도 금방 날아갈 듯 가냘픈 꽃을 코스모스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신화에 따르면 이전에는 다른 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제일 처음 만든 꽃이 지금의 코스모스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질서, 코스모스였으니까요.
그 증거가 화장품을 가리키는 말, 코스메틱(cosmetics)에 들어있습니다.
그리스어 ‘kosmetikos’에서 유래한 말로 가장 가깝게 발음되는 것이 프랑스어 ‘cosmetique’이고 이 말이 영어권으로 넘어가 ‘cosmetics’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kosmetikos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뜻이 있습니다.
바로 ‘코스모스의 명령’입니다. 이 말에서 코스모스를 질서로 풀이하든 우주로 풀이하든 뜻은 통합니다.
‘질서를 지켜라’지요. 화장이 얼굴을 예쁘게 색칠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뿌리가 ‘질서’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에 화장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소속된 집단을 드러내고 신체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그들에게 사회적인 신분이나 소속된 집단이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인간을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것이 조화롭고 질서 있는 세계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카오스(kaos), 무질서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질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현대 과학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미술품, 조각, 음악, 시 등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더니 비율, 수치, 운율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질서와 조화, 한마디로 균형미가 아름다움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의 미학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됐으며 특히 르네상스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카오스의 상태를 거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질서와 조화는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코스모스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해주려고 만들었지만 처음 만든 탓인지 어설프고 연약하게 완성되어 입김만 불어도 살랑살랑 흔들립니다. 그 바람에 우리의 마음도 옛 추억으로 날아가 흔들립니다.
이것이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이지요.
그래서 가을에 보는 코스모스는 카오스입니다."
아무튼 나는 이 가을을 오래 오래 붙잡아 두고 싶다.
첫댓글 코스모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코스모스를 불렀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기 이전 상태가 카오스라는 것도 알았구요.....
심오한 뜻을 담은 코스모스, 한들 한들 거리는 코스모스가 가을날에 그냥
핀 것이 아니군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