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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인가?
마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주현절 5주입니다. 주현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현현(顯現,epiphany)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 혹은 통찰을 뜻하는 말입니다. 원래 'epiphany'는 그리스어로 '귀한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며, 기독교에서는 신의 존재가 현세에 드러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그러니 주현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 날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죠.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보여주신 은총을 인식하면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용어로는 공현절(公現節 "공식적으로 나타난 날") 또는 공현 대축일 등이 쓰입니다.
날짜는 전통적으로는 1월 6일이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1월 2일부터 8일 사이의 일요일로 정하기도 합니다. 서방 기독교에서는 동방 박사가 예수를 찾은 때로 보고, 동방 기독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때로 보기도 합니다.
주현절의 절기색은 ‘흰색’입니다. 흰색은 흠 없는 순결, 거룩함, 완전, 위엄, 영광, 즐거움을 상징하는 신성의 색으로,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축제와 그리스도의 생애 중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사용하는 전례 색상이라 하겠습니다.
주현절 5주의 복음서의 성서 일과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의 본문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 중 하나죠.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이라 다들 잘 알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너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소금과 빛이 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과 빛’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소금이나 빛과 같은 행동을 하라는 삶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소금과 빛’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안에 ‘이미 소금과 빛이라는 정체성을 지녔다’는 말이죠.
두 번째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마 5:13). 소금의 정체성은 짠맛입니다. 이 짠맛이 여러 가지 기능을 하죠. 소금의 대표적인 작용은 방부(防腐)작용입니다. 소금은 음식을 썩지 않게 합니다. 이 짠맛은 적당한 곳에 적절한 양으로 존재할 때 좋은 역할을 합니다. 김장할 때 배추를 절입니다. 적당한 양을 사용하면 배추가 맛있어지죠. 뻣뻣하던 배추도 소금에 의해 부드러워집니다. 하지만 양 조절을 잘못하면 너무 짜지거나 물러질 수도 있죠. 소금은 기가 막힌 조미료이기도 합니다.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등도 소금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음식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간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간이 잘되면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것이죠.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북쪽 갈릴리 호수로부터 시작한 요단강이 남쪽 사해로 흘러들어 갑니다. 사해(死海)는 소금기가 너무 많아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데서 나온 이름입니다. 사해의 고도가 너무 낮아 물이 빠져나갈 데가 없고, 설상가상으로 그곳의 암염(巖鹽)이 녹아들어 생기는 현상입니다. 사해의 염도가 높아 사람이 들어가면 수영을 못해도 저절로 둥둥 뜬다고 하죠.
팔레스틴 땅에는 소금이 흔합니다. 암염이 많기 때문이죠. 사해에는 지천으로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금에는 진흙 등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흔하다고 그냥 두면 짠맛을 잃어버리고 부패하기 쉽습니다. 그런 특성 때문에 짠맛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빛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빛의 특성은 밝음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사물을 드러내 줍니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사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은 음습한 곳에서 벌어지는 죄까지 모두 드러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은 따뜻함을 품고 있습니다. 한겨울의 추위도 빛이 드는 양지(陽地)는 따뜻해 사람과 짐승을 불러들이죠. 햇빛은 젖은 것을 말려 곰팡이 등을 죽이는 방부, 살균 작용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빛은 동물과 식물에게 에너지를 주어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본 동력이 됩니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없다면 모든 생명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라는 것입니다. 즉 빛이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단지 ‘교회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 안에서 영성 훈련을 받고 개인의 구원을 받는 것만이 우리 삶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를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 우리 공동체(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전위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13절)”.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15절)”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절에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소금으로서의 역할도 잘하라는 말씀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서에 대비되는 구약의 말씀으로는 이사야 58장 6-12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소위 금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6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행위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7절)“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이것을 지킨다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10절)“이고,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11절)“이라고 축복하십니다.
6-7절에서 야훼께서는 ‘금식의 근본 목적이 종교적 행위가 아닌 정의와 자유, 평등한 사회 실현을 위한 정치적 행위’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죠. 한두 사람에게 베푸는 선행을 넘어서 사회구조를 바꾸어내는 일이 참다운 금식임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지도자에게 향해서는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9-10절)“이라는 전제를 깔고 잃어버렸던 조국, 폐허가 되었던 성읍을 재건해 준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그 지도자는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12절)!"이라는 칭송을 받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민생과 민주의 회복이 무너져가는 조국을 재건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국의 운명을 바꾼 왕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지난 화요일(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정부로 이송된 지 11일 만이고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에 이어 9번째 거부권 행사입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태원 대참사는 재난 예방·대응·사후처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냈습니다. 참사 책임을 져야 할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도 처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고, 윗선·실세 앞에서 진상규명은 길을 잃었습니다. 159명의 생때같은 젊은 목숨이 희생된 사회적 대참사 속에서도 맹탕 수사와 진상 조사 외면, 책임 회피, 책임자 봐주기로 일관하였던 것이죠. 그러고도 참사 유족·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받아 만들어진 특별법까지 다시 거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한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라는 제목으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유가족협의회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위헌 정부’”라며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던가? 유가족들이 오직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 어떻게 진상규명의 책임은 외면하면서 돈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안전 사회로 만들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을 거부한 것은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라며 “최소한의 명분도 근거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국민적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정의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날은 이태원 참사 458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에서는 특별법 통과를 위한 오체투지 등 갖은 노력을 하였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서 살을 에는듯한 추위 속에서도 19,500배 절을 하는 철야 행동도 불사했습니다.
한국 갤럽이 2일 발표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부권 여파로 29%를 기록했습니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19%), 소통 미흡(11%), 독단적/일방적(7%), '외교, 김건희 여사 문제(각 6%) 등이 꼽혔습니다. 한국갤럽이 매주 시행하는 조사기준으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0%대 밑으로 하락한 것은 2023년 4월 2주 차 조사(27%) 이후 약 9개월 만입니다. 당시는 일제 강제동원 배상·미국의 동맹국 도감청 논란 등의 문제가 불거졌던 시기였습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24년에 접어들어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김건희 리스크도 여전한 불씨입니다. 김건희 씨의 명품 수수 사건은 한국언론에서는 사라졌지만 전 세계의 언론 등에서는 계속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NYT)도 현지 시간 2월 1일에 <영부인과 디올 파우치: 정치 위기가 한국을 움켜쥐고 있다 (The First Lady and the Dior Pouch: A Political Crisis Grips South Korea)>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대통령 배우자가 연루된 스캔들이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큰 문제가 됐다”며 ‘김건희 명품 수수’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이 기사에서 "선물은 김건희 만날 수 있는 티켓 같은 것", "대통령실에는 두 명의 VIP가 존재하는데 그 중 No.1은 김건희라는 농담을 한국 사람이 한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김건희 씨가 왜 명품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주장을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가 ‘김건희와 마리 앙투아네트, 역겨운 최상위 계급자들’이라는 칼럼에서 언급했습니다. 이 기자는 “명품은 잔인한 자본주의 계급의 상징”이라고 분석합니다.
사람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그것이 사용자를 특별한 계급으로 포장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세 때만 해도 귀족들은 장신구로 자신의 계급을 과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이 워낙 명확해 유니폼을 입힐 필요조차 없었던 시대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이 평상시 자신을 드러낼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저 사람이 귀족인지 평민인지 노예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명품이 자신이 귀족임을 드러내 준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명품을 지위재(Positional goods)라는 독특한 재화로 분류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겁니다. 명품은 기능이 뛰어나서 명품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계급(Position)을 드러내기 때문에 명품이라는 이야기죠. “비싼 외제차를 사는 이유는 승차감 때문이 아니라 하차감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차에서 내릴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도구가 바로 명품차란 의미입니다.
명품을 소유함으로 자신이 평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김건희 씨의 행동이 지금 전 세계인의 조롱 받고 있습니다.
주현절 5주를 맞이하면서 저는 오늘 과연 나는 세상의 소금과 빛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본거죠. 그러면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나가고 헌금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의 소금과 빛인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이죠. 진정 내가 세상의 소금이라면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썩지 않도록, 그리고 살맛이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면 온갖 부정과 부패, 억압과 죽임의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의 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금식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이나 근동 국가에서 금식은 비상시국에 행해지는 개인 또는 국가적 결단입니다. 성서에 보면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통해 태어난 아기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때 혹이라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삼하 12장). 느헤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의 중건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비보를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 기도를 하였죠(느 1장). 개인적인 이유뿐 아니라 왕의 죽음(삼상 31:13; 삼하 1:12)이나 전쟁(삿 20장) 때도 금식하였습니다. 전 국민의 회개(삼상 7:6; 욘 3장)를 촉구하거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때(에스더 4:16)도 집단적인 금식 기도를 하였죠.
어쨌든 금식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거나,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결단할 때 자신을 스스로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였습니다. 죽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절박함을 하나님과 세상에 알린 거죠.
그런데 이 금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6절)"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는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민생 구휼의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는 평등과 평화, 자유와 정의의 가치 구현으로, 정책적으로는 민중의 의식주와 빛의 탕감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24년 2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평등과 평화, 자유와 정의의 가치는 형편없이 퇴보하였죠. 민생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전쟁의 위기, 경제위기로 인한 저출생 등의 사회 존속의 위기 등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국민들 모두가 나서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올해도 ‘적폐청산, 민생회복, 평화통일’을 위해 37년차 단식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가 하늘에 상달 되길 바랍니다.
어제(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는 159개의 보라색 현수막 행진이 있었습니다. 이 행진은 서울광장 앞 분향소 앞에서부터 종로, 을지로를 거쳐 정부서울청사 앞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한 정부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기 위해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참사 희생자를 상징하는 159개의 현수막을 들고 도심 행진에 나선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이 행진을 ‘국민의힘·윤석열 정권 심판 대행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너는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응답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모두에게 있고 이 응답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이 나라와 민중들,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