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언어를 쓰다듬다> 外 48편
인간과 문학사
작가의 말
주름, 이 말을 처음 들은 게 언제였나.
"이마에 주름이 생겼구나. 여자는 주름이 있으면 늙어 보이는데...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마라."
어머니는 내 이마를 보고 걱정하셨다. 그때 내 머릿속에 남은 말은 '여자'와 '생각'이었다. 여자는 늙어 보이면 안 되고, 늙어 보이게 하는 주름의 원인은 바로 '많은 생각'이었다. 결국, 효도를 못 했다. 이후 내가 문학과 손잡으며 한 일이란 그 많은 생각뿐이었으니.
이 책의 제목인 <<주름>은 저 유명한 철학자 들뢰즈의 '주름'이나 라이프니츠의 주름 잡힌 모나드와 관계가 없기도 하고 슬쩍 있기도 하다. 모나드란 싹트는 씨앗이나 춤추는 원자를 의미하지만, 우주생성의 점이자 영혼으로 의미가 확대되기도 한다. 나는 삶의 황홀한 슬픔과 몽환적인 허무, 영혼에 파문을 일으키는 알 수 없는 그 무엇들, 인생과 문학 속에서의 굴곡과 흔적들을 '주름'이라 부른다. 들뢰즈의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의 고차원적인 주름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어느 유명 여배우가 나와서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음엔 주름이 안 생겨요."
한참 동안 나는 이 말이 좋았다. 마음에는 주름이 안 생긴다니 그거 좋군, 하며 마음을 맘껏 쓰고 다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작가가 하는 일이란 게 혹시 이 마음의 주름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돌연한 생각이 탁, 쳤다 그러자 나와 사람들의 마음속 주름진 자리마다 하나하나 삶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걸 글로 쓰기 시작했고, 곱게 때로는 거칠게 다림질을 했다. 다림질로 쫙 펴지기도 하고, 여전히 구깃구깃 접힌 자국이 남아 있을 때도 많았지만.
내 마음에도 주름이 적지 않다. 다행히 나는 늙어가고 있어서 여자라는 개념이 흐릿해져도 상관이 없고, 작가라서 많은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처지가 되어 더없이 편하다. 무엇보다 나의 일생에서 '언어와 사유'에 대한 생각을 깊고 넓게 한 시기에 쓴 책이라 개인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마의 주름이 새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