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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교과서에 한자가 필요할까요?
참과 거짓을 가르는 10문 10답
과학과 진실의 눈으로 한자 사용 문제를 살펴봅시다.
이건범 /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대표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으니 초중등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는 한자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2013년 2월 18일에 몇몇 국회의원을 앞세워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냈습니다. 개정안은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사용하자는 방안을 담고 있는바, 한자 혼용으로 가는 디딤돌을 마련하려는 것 같습니다. 한자어는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이 사람들의 주장은 논리가 궁지에 몰리면 카멜레온처럼 변하므로 찬찬히 짚어보아야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습니다.
한자는 우리 조상의 문화와 사상, 역사를 적던 문자였고, 19세기 말까지 한자와 중국어 문법이 섞인 한문이 사회 지배층의 주류 글말이었습니다. 그 유산 가운데 하나인 한시는 지금 보아도 압축된 문장과 운율로 세상의 이치를 엮어내는 독특한 멋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는 배우기 어려운 탓에 백성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이에 세종대왕께서 백성이 뜻을 펼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민중은 삶의 형편 때문에 대부분 문맹이었거나 일부에 한해서 한글을 사용하였습니다.
문자혁명을 이뤄낸 대한민국
한글은 19세기 말에 와서야 국가의 공식 문자로 대접받았고,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부터 비로소 국가와 국민의 문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했던 습관이 남아 교과서와 공문서, 신문 등에서는 1990년대 초까지 한글과 한자가 함께 쓰였습니다. 그런데 정치 민주화 이후 1980년대 말부터 일간 신문에서 한자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중반에는 거의 모든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습니다. 신문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에 병기하던 한자도 사라졌습니다. 어떠한 강제도 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슬기롭고 위대합니다. 제국주의의 압제와 뒤늦은 근대화에도 굽힘 없이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 성장을 이룩한 데에 이어 1987년에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고, 그 뒤에는 문자 혁명을 완성하여 문화국가의 바탕을 다졌습니다. 그토록 오래 사용하던 한자를 버리고 백 년 만에 한글을 생활과 소통의 문자로 굳힌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 의사소통에서 한자 없이 한글만으로도 아무런 막힘이 없다는 서로의 믿음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글로 적음으로써 국민 누구라도 언어 공동체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인권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의 문맹율은 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한자가 지배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채워주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습관은 진실의 눈을 가린다
한자 대신 한글을 선택한 국민의 현명함 덕에 지식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과 휴대전화에서 한글을 이용한 소통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빠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신문, 인터넷, 책, 전화 문자 등에 한자를 적지 않는다고 뜻을 모르거나 오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한자가 익숙하거나 어떤 개인 사정으로 한자를 흠모하게된 분들은 이런 현상이 매우 걱정스럽나 봅니다. 교과서, 공문서, 신문에 “한자어를 한자로 적지 않으면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한글로만 생활하는 국민 대다수가 사실은 문맹”이라며 안타까워 합니다. 늘 한자가 그득했던 신문이나 책을 읽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당연히 그런 읽기 습관과 생각 버릇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서 한글 전용 교과서로 공부했던 20대부터 50대 초반 나이까지의 성인이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말이나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런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나 고사성어를 모를 수는 있지만 이는 한자에 익숙한 세대가 영어 낱말을 잘 모르는 현상처럼 그저 시대의 변화와 언어 환경의 변화가 낳은 결과일 뿐입니다. 지식의 중심도 50년 전과는 사뭇 다르듯이 말이죠.
한자어는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만 그 뜻이 통한다는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한자나 한글과 같은 문자가 아니라 말소리로 전해지는 낱말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수많은 한자어는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는 말과 문자의 관계를 무시한 억지일 뿐입니다.
한자 문제의 본질은 교육 바깥에 있다
세상에 범죄 말고 배워서 나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렇다고 초등학생에게 모든 걸 다 가르치려다 보면 아이들을 정신병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한자 급수 시험을 강요하는 곳이 있다니, 교과서에 한자를 마구 집어넣으면 한자 사교육이 얼마나 요동칠지 뻔합니다.
그런데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분들은 대학생들이 한자를 몰라 과거 논문을 읽지 못한다고 개탄하면서도 정작 대학 교육의 문제점에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국문학과나 사학과처럼 높은 한자 실력이 필요한 학과에서 학부 수업이나 대학원 입시에 한자 능력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음에도, 한자 없는 교과서로 40년을 이어온 초등 교육을 걸고넘어지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초중등 교육의 문제가 어디 교과서에 한자 혼용을 하지 않아서 생겼겠습니까?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 어려움이 생기는 까닭이 한자로 명심보감을 읽히지 않아서겠습니까? 그런데 한자 숭배자들은 모든 문제가 다 한자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다
이제 과학과 진실의 눈으로 이 문제를 짚어봅시다. 한자 혼용이나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늘 꺼내들고 휘두르는 속설 10가지를 질문으로 만들고, 사실에 뿌리를 둔 답을 달았습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문자 생활과 교과서를 20년 전으로 되돌려야할 까닭이 있는지 판단해 주십시오. 이 문답집은 인지과학자, 언어학자, 국어학자, 국어교사, 고전 번역가 등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15일 세종대왕 태어나신 날에
□ 미신에서 나온 열 가지 물음
1.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나 된다던데, 사실인가요?
2. 한자어는 한자로 써놓아야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한자어는 동음어가 많으니 한글로만 적으면 혼동이 오지 않을까요?
4. 초등학생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한자어의 어원을 알려주는 교육 방식이 좋지 않을까요?
5. 교과서에는 한자를 적을 수 없나요?6. 한자를 많이 알면 국어 성적이 오를까요?
7. 한자는 정말로 우리 조상이 만들었나요?8. 한글은 한자의 음을 적기 위해 만들었다면서요?9. 우리 고전을 읽기 위해서라도 한자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10. 한자를 알면 중국어 익히기에 유리할까요?
1.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나 된다던데, 사실인가요?
거짓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51만여 개의 낱말 가운데 한자어는 57%입니다. 물론 그 한자어 가운데에도 사전에만 실려 있을 뿐, 현실에서는 일상생활 및 전문 분야 어디에서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푸른 하늘’을 뜻하는 말만 해도 궁창(穹蒼), 벽공(碧空), 벽락(碧落), 벽소(碧霄), 벽우(碧宇), 벽천(碧天), 벽허(碧虛), 제천(霽天), 창궁(蒼穹), 창호(蒼昊), 청궁(靑穹), 청명(靑冥), 청허(晴虛) 등 13개 이상이 실려 있고, ‘넉넉하다’는 뜻의 ‘은부(殷富)하다’처럼 우리가 죽을 때까지 듣도 보도 못할 낱말들이 많습니다.
한자 혼용파의 이러한 주장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조선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은 사전에 한자어를 70%나 되게, 토박이말은 고작 30%에 지나지 않게 낱말을 실었습니다. 한자를 숭배하던 대표 학자인 이희승과 남광우가 이런 주장을 계승하였습니다. 사전에 한번 올라간 말을 솎아내기가 쉽지 않고 많은 사람이 협력하여 사전을 만드는지라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쓰지도 않는 한자어가 많습니다.
한글학회가 1957년에 완성한 《큰 사전》에는 토박이말이 47%, 한자어는 53%가 실려 있습니다. 5년에 걸쳐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정재도 선생님에 따르자면,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를 버릴 경우 한자어 비중은 30%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의 발표에 따르자면 한국인이 실제로 사용하는 낱말의 비율은 토박이말이 54%, 한자어는 35%, 외래어 2% 수준으로,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결코 한자어가 중심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2. 한자어는 한자로 써놓아야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류는 말을 먼저 하였고, 그다음에 문자를 사용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갓난아기 때 사람은 말을 먼저 배우고 학교에 갈 무렵에 문자를 익힙니다. 언어 사용의 기본은 듣기와 말하기이며, 문자는 듣기와 말하기를 쓰기와 읽기로 확장한 것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마치 사전처럼 낱말의 꼴, 뜻, 다른 낱말과의 관계 등 낱말에 관한 정보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데 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심성어휘집’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머릿속 사전이지요. 사람이 자라면서 듣거나 말하고, 문자로 본 낱말의 앞뒤 흐름이나 설명으로 의미를 파악하면서 머릿속 사전의 어휘가 늘어나고 뜻도 풍성해집니다.
예를 들어 토박이말인 ‘사람’이나 한자어인 ‘인간’은 모두 귀로 들어서 그 뜻을 알 수 있는 낱말입니다. 들어서 바로 그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된다면, 어원과 역사에 상관없이 그 낱말은 우리 머릿속 사전인 심성어휘집에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자로 토박이말인 ‘사람’을 읽을 때나 한자어인 ‘인간’을 읽을 때 우리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음운적 읽기 과정을 거칩니다. ‘인간’을 한자 어원으로 분해하여 읽지는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한글로 된 문장 속에서 ‘인간’을 ‘人間’으로 표기한다면 ‘인간’으로 읽을 때에 비해 훨씬 과중한 시각적 처리와 지식을 동원해야 합니다. ‘인간’을 입말 단어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언어 사용자에게 굳이 한자의 어원을 상기시키는 ‘人間’을 읽도록 강제한다면 이는 현학의 취미를 강요하는 것이거나 문화적 폭력을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언어의 낱말에는 자주 듣고 말하며 읽고 쓰는 고빈도의 일상어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저빈도의 전문어가 있습니다. 일상어는 낱말을 듣거나 보는 즉시 그 뜻을 자동으로 떠올리며, 전문어는 낱말의 뜻을 알아채는 데에 배경 지식과 이해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대부분 고빈도의 일상어는 그 어원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처리 단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날 비(飛), 갈 행(行), 틀 기(機)로 분석해서 듣거나 읽는 경우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김포 공항에서 막 이륙한 비행기의 소음에 놀란 비둘기는 먹던 모이를 두고 지붕으로 잽싸게 날아올랐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각각 한자어인 ‘비행기’와 토박이말인 ‘비둘기’는 낱말 처리 과정에서 전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이해됩니다. 둘 다 고빈도 구체어이며 일상어이기 때문입니다. 한자어는 어원이 무엇이든 이미 한국어에서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커피’를 coffee라고 쓰지 않아도 그 뜻을 이해하는 것처럼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주 나오는 일상어 가운데에는 ‘배려’나 ‘민주주의’와 같이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어도 있습니다. 초등 2학년 국어에 나오는 ‘배려’라는 말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인데,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의 편리와 지하철의 순조로운 운행을 위해 사람이 내리고 난 다음에 탄다든가, 노약자 지정석에는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앉지 않는다든가 하는 마음이 곧 배려라는 사실을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알아가고 확장시켜야 정확한 의미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한자 어원만 달랑 안다고 그 뜻에 충분히 다가가기는 어렵습니다.
저빈도의 추상어나 전문어는 대부분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들입니다. 한자 혼용파들은 수학 개념인 ‘미분’과 ‘적분’을 한자로 써야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자 微分, 積分은 수학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영어의 Differential과 Integral을 번역한 신조어입니다. 이런 낱말은 번역의 정확성과 적절함은 제쳐놓고, 한자로 읽어도 그 말의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분과 적분은 원래 어려운 수학 용어라 수학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 뜻이 통합니다. ‘미분’과 ‘적분’을 읽어서 그 낱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微分’과 ‘積分’을 읽어 그 낱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는 근거도 증거도 없습니다. 이 경우에 필요한 것은 한자 표기나 한자 지식이 아니라 바로 수학 지식입니다.
전문 학술서나 고전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은 사전에 등재된 경우라도 저빈도에다 그 의미가 어려워서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한자의 병기가 전반적인 문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빈도의 전문 용어나 어려운 한자어는 그 낱말을 구성하는 한자 또한 저빈도인 경우가 많아서 기초 한자를 익힌 경우라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후곤(後昆)’이라는 말은 후손이라는 뜻인데, 이 昆자는 상용 1,800자에 들어 있지 않은 저빈도 한자라 이를 적어 놓더라도 뜻의 이해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에는 사전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미분’과 ‘적분’의 경우처럼,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안다고 해도 그 낱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낱말이 사용되는 분야와 출처, 맥락 등을 알지 못하면 실제 그 낱말의 뜻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낱말이 포함된 문장들을 읽을 때는 낱말을 구성하는 한자 음절 각각의 의미보다는 문장의 맥락이 이해에 더 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도 배경 지식과 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이 결정적으로 도움을 줍니다.
3. 한자어는 동음어가 많으니 한글로만 적으면 혼동이 오지 않을까요?
낱말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한글로만 썼을 때, 읽기와 이해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는 원래 어려운 낱말(이 경우는 ‘미분 적분’처럼 한자 표기가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이거나, 쉬운 낱말이지만 동음어가 있는 경우입니다.
사실 동음어 또는 다의어는 한국어 한자어에서만 문제가 아니라, 영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에서 읽기 과정에 어려움을 일으킵니다. 영어에는 철자 표기가 다른 동음어와 한자어를 한글로 적을 때처럼 철자 표기까지 같은 동음어가 있는데, BAND(무리, 끈), BANK(둑, 은행), BEAR(참다, 곰), BARK(짖다, 나무껍질), BAT(방망이, 박쥐), LIE(거짓말, 놓다) 등은 표기까지 같은 동음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동음어는 그 낱말이 놓인 맥락에 따라 의미가 활성화되고 분명해집니다. 한국어에서도 동음어를 사용할 때, 그 낱말이 고빈도의 일상적인 낱말이라면 맥락을 분명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사과를 받아줘.”라는 문장은 앞뒤 맥락으로 그 사과가 과일인지 용서의 말인지 분간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고 한자를 표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한자 혼용파들은 ‘사기’라는 말이 사전에 30여 개나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들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한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어떤 경우라도 말이나 글에서 앞뒤의 낱말이나 토씨를 모두 빼고 밑도 끝도 없이 “사기”라고만 말하거나 적는 바보는 없습니다. “사장님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문장에서 혼란을 느낀다면 그는 남과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책이나 방송 등의 매체와도 단절된 채 자란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한자 교육보다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동음어 가운데 ‘시제(時制)’, ‘시제(時祭)’, ‘시제(詩題)’의 예처럼 낱말이 저빈도의 어려운 낱말이지만 평소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낱말들은 한자 표기가 도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장의 맥락을 정확히 사용하고, 선택하려는 뜻을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동의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문장을 쓰는 태도입니다.
무분별하게 한자어로 새 말을 만드는 번역 방식은 동음어를 양산하는 주범입니다. 동음어 때문에 한자 혼용이나 병용을 독려하는 문화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번역과 신조어 생산의 문화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4. 초등학생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한자어의 어원을 알려주는 교육 방식이 좋지 않을까요?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어 어휘 교육의 효율적 보조수단으로 초등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자어를 분해하여 그 어원을 밝힘으로써 어휘력을 높이자는 설명입니다. 가령 지구과학의 지층 학습에서 ‘습곡(褶曲)’이라는 용어를 알기 위해 ‘주름 습(褶), 굽을 곡(曲)’으로 분해하여 “주름지듯 굽어진 지층”이란 뜻의 한자 어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예를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지의 발달과정은 언어든 수학이든 음악이든 모두 전체적이고 비분석적인 인지로부터 나이가 들면서 분석적인 인지로 나아갑니다. 분석적인 인지는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의 발달 단계로 치면 형식적 조작기에 해당하며 중학교 이후에 급속히 발달합니다. 따라서 다음절 낱말을 그 한자어 또는 형태소에 따라 분석하고 그 어원을 따지는 방식은 중학교 이후의 과정에나 시행되어야 하며, 그 이전에 무리하게 시도하면 언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위험이 큽니다.
그런데 위에 예로 든 ‘습곡’의 褶자는 교육부가 권장하는 1,800자의 한자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고, 웬만하게 한자를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글자입니다. 초등 3학년 1학기 과학 교과에 나오는 ‘곤충’의 곤(昆)자 역시 상용 1,800자에 들어 있지 않은 한자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에 ‘귀소본능’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동물이 자기 서식처나 둥지로 되돌아오는 성질이나 능력을 뜻하는 이 낱말은 현재 초등 4학년 1학기 국어 읽기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학부모 가운데 이 낱말을 한자 어원으로 배운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나 ‘귀소’의 소(巢)는 ‘새집, 집’의 뜻을 갖고 있는데, 한국어의 다른 낱말 어디에서도 쓰임새를 찾을 수 없고 교육부가 지정한 상용한자 1,800자에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른 채 ‘귀소본능’을 배웠더라도 학부모 세대는 이 낱말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한자를 알아야만 뜻을 알 수 있다고 이처럼 어려운 한자를 배워야 한다면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습곡 지대’라는 새로운 낱말이 나타날 때 “주름 습이라는 한자가 있는데, 습곡 지대라는 말은 주름처럼 굽었다 해서 한자어로 이름 붙인 것”이라고 설명해 주면 될 일입니다. 한자 어원을 알려주는 일이 그 낱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개념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원은 말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일인바, 이를 반드시 학생들이 한자로 읽고 쓸 수 있어야 뜻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물론 ‘타제 석기’를 ‘뗀 석기’로, ‘마제 석기’를 ‘간 석기’로 바꾸었듯이 ‘습곡 지대’를 ‘주름 지대’라고 용어를 바꾸는 것이 더 좋습니다. 교육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한자어의 어원을 풀어도 그 낱말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先生)’은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 ‘제자(弟子)’는 ‘아우의 아들인 조카’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초등 4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인문 환경’이라는 말에서 ‘인문’을 人文이라 적고 ‘사람의 글월’이라고 어원을 풀어준다 하여 인문의 뜻을 알 수는 없습니다. “지역의 인구나 인구 분포, 산업, 교통 등의 인문 환경”이라는 문장에서 차라리 인문 환경을 ‘사람살이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5. 교과서에는 한자를 적을 수 없나요?
원칙적으로 교과서에 한자를 적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소리가 같고 뜻은 다른 낱말의 뜻을 보완하거나 전문적인 용어와 신조어를 해설하기 위해 괄호 속에 한자어를 넣어 교과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과서는 해방 이후 한글전용과 한자혼용을 오락가락하다 1970년부터 한글전용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학자들과 한글 전용을 추진한 학자들이 합의하여 1975년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괄호 속에 한자를 함께 적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과서를 집필하는 교사나 교수, 교과서 출판사 모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늘어나 자연스레 교과서에는 한자를 적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1990년대 중반에 대부분의 일간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진 흐름과 아주 비슷합니다. 신문에 한자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었지만, 한자로 적지 않아도 오해하거나 혼동할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여 모든 신문사가 한글 전용으로 신문을 내게 되었습니다.
국한문 혼용 문장의 최후 보루였던 서울대학교의 <대학국어>도 2004년부터 한글 전용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학교 교재에서도 사라진 한자가 초중등교과서에 다시 부활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한문’을 공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자를 익히고자 한다면 학생 개인이 꾸준히 암기만 해도 성과를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이 때문에 우리의 문자 생활을 과거로 되돌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중학교의 95%에서 한문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2009년 새 교육과정부터는 초등학교 정규 과목인 ‘창의적 체험활동’ 가운데 한자 과목을 추가하여 현재 절반 이상의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초등학생의 한자 사교육이나 한자 급수 시험 응시도 늘어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6. 한자를 많이 알면 국어 성적이 오를까요?
국어 교육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의 고른 발달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읽기 능력, 즉 교과서나 시험 문제의 지문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는 중・고등학교 내신 시험이나 대입 수학능력 시험의 방식 때문입니다. 다수 학생을 대상으로 같은 시험 문제를 내서 군말 없는 성적을 뽑아내는 데에는 객관식 형태의 문제 출제가 가장 손쉬운바, 이런 형식으로는 말하기와 듣기, 쓰기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듣기 시험도 2014년도부터 수능 시험에서 없어지고 대신 말하기(화법) 시험이 도입됩니다. 그렇지만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말하기와 쓰기도 필기시험의 속성상 독해 문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교의 국어 수업도 주로 교과서 분석과 해설에 치우쳐 있어서 독서와 문학 감상, 토론, 글쓰기, 듣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입니다. 교과서를 분석할 때 어려운 한자어가 나오면 한자를 아는 학생은 이해에 약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한자 지식이 필요하거나 한자 지식이 국어 능력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낱말의 뜻은 글을 계속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익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국어 과목에서는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이 수능 국어(언어) 시험을 잘 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학교의 국어 수업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차이도 독서를 좋아하느냐 아니냐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7. 한자는 정말로 우리 조상이 만들었나요?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고 동이족은 우리 민족을 말한다. 따라서 한자는 우리 문자이다. 이는 중국 학자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이 말은 초등학교 한자 교육 강화와 교과서 한자 혼용을 가장 목청 높여 외쳐 온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회장 진태하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는 중국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공자도 동이족이며, 우리 조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떤 연구 논문에 근거하여 펼치는 주장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다 입증된 사실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중국의 문인인 임어당이나 왕옥철이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지만, 이 역시 중국 학계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학계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없다 합니다.
한자는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고대 황제의 역사편수관인 창힐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으며 중국에서는 그를 신격화하기도 합니다. 유물이 출토되면서 연구는 되고 있으나 기원에 대해 아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실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유물은 기원전 약 1,3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갑골문인데 이는 상나라가 도읍을 은으로 옮긴 후 길흉화복을 점친 기록으로서 한자의 초기 문자 형태입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한자가 갑골문 전부터 오랫동안 발전해 왔다는 정도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처음 들어온 때는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어림잡으며,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인 6세기를 전후하여 역사서가 엮어지면서입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한자를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지방 정부 가운데 하나로 왜곡하는 동북공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우리 한민족을 한자 민족으로 만들어 동북공정에 정당성을 주는 위험한 논리입니다.
8. 한글은 한자의 음을 적기 위해 만들었다면서요?
훈민정음 창제에는 주요한 목적과 부차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주요한 목적은 백성을 이끌고 가르치며 백성이 스스로 뜻을 펴게끔 하자는 것이었고, 부차적인 목적은 용비어천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과 한자의 발음을 표준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세종은 양반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유교의 생활 원리인 삼강오륜과 농사 지식, 나라의 법령 등을 제대로 알게끔 가르치고 이끌고자 하였습니다. 한자나 이두로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펴 주지 않는 것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라며 백성이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듯 백성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자기 뜻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한글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은 세종대왕이 지으신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에 잘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물론 당시에는 한자 서적으로 주요 지식을 얻었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읽으려면 한자의 발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표준 한자음을 집대성한 것이 세종의 뜻에 따라 신숙주가 대표 집필한 《동국정운》입니다. 이를 가지고 훈민정음이 한자의 음을 적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일제 강점기에 세종대왕과 한글을 깎아내리려던 일제의 의도를 그대로 이었다고밖에는 달리 볼 길이 없습니다.
9. 우리 고전을 읽기 위해서라도 한자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글로 표기했을 때, 절대로 그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는 한시와 같은 한문 문장입니다. 우리 선조가 지은 한시는 한자로 표기되었을 때만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음운으로만 읽어서는 절대로 그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한시 또한 우리의 우수한 문화유산이고 그 문화유산이 계승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한시는 오래전 이두로 쓰인 신라 향가와 그 문화적 지위에서 큰 차이가 없는 문화유산입니다. 역사학자나 문학사가는 이런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전통문화를 일상의 취미로 가지는 문화인들의 저변 또한 넓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공공의 시민적 자질을 키우기 위한 공교육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기본 교육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를 알면 모르는 사람보다는 중국이나 한국의 고전에 접근하기가 유리하겠지만, 한자 급수 시험에서 1급을 딴 사람일지라도 한자로 적힌 고전을 술술 읽을 수는 없습니다. 한문 고전은 한자를 많이 알더라도 읽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어 낱말을 많이 안다고 해서, 영어로 된 철학서, 문학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님과 같습니다. 한 개 한 개의 낱글자를 모두 알더라도 문장의 구조를 모르면 ‘번역’은 불가능합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번역되어 나온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만 해도 한문을 전공한 한문학자들과 역사를 전공한 국사학자, 경제사와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한문 공부를 한 학자 등 16명의 교수님이 함께 공부하면서 10년에 걸쳐 번역해야 했습니다. 2007년에 공공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대개 인문학을 공부하고 별도로 4~5년가량 한문 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 가운데 실력자를 뽑아 한문 고전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고전번역서 약 1,600책을 간행하였습니다. 취미나 문화생활로 한문 고전을 공부하는 일이야 나쁠 게 없지만, 거기에는 한자 지식 말고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배워야 할까요? 마찬가지로 한문을 전공한 학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마치 일반인도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우리말로 번역한 책을 읽어야 할 시간에 한자 공부를 하라는 비효율적인 억지입니다. 오히려 한문 고전을 번역할 전문가를 더 많이 양성하고 이들이 번역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10. 한자를 알면 중국어 익히기에 유리할까요?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한자 간체자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사용해 온 복잡한 한자(번체자)를 단순화한 것인데, 그것은 번체자와 모양이 매우 달라 번체자를 많이 알더라도 읽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번체자로 써서 보여주면 중국인도 대부분 읽지 못합니다.
간체자는 번체자에서 어떤 원칙을 세워 획수를 간략하게 한 것이므로 그 원리를 알게 되면 한어(중국어)를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한자를 좀 아는 사람들은 간체자를 외우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영어 문장을 읽거나 들을 때 문법 지식을 동원하여 하나하나 분석하려는 버릇처럼 간체자를 읽을 때 자기가 아는 한자 지식으로 문자를 분석하고 변화 원리를 적용한 뒤 읽으려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기존 지식의 간섭을 받지 않고 그저 마구잡이로 간체자를 외우는 서양인이 한어 익히기에 더 유리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어는 글자마다 고유한 억양인 네 가지 성조를 갖고 있습니다. 발음 기호는 같지만 성조가 다른 문자들이 있어서 성조에 맞게 발음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따라서 간체자와 함께 그 문자의 발음 및 성조를 다 외워야 합니다. 성조를 익히는 일은 간체자를 익히는 일만큼 어려운데, 이 역시 외국인이라면 막무가내로 외우는 길이 가장 빠르고 확실합니다. 따라서 한어는 한어 그 자체로 공부하는 게 바람직하며, 한자 지식은 사람에 따라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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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한자 교육 강화는 학생과 교육을 망칠 뿐이다.
우리말의 낱말 사용 비율은 토박이말이 54%, 한자어가 35%, 외래어가 2%라고 한다.(“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국립국어연구원, 2002, 혼종어 제외) 그러니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한자어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사정을 들어 교과서에 실린 한자어를 한자로 적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자를 알아보려면 한자를 배워야 하니 초등학교부터 한자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바로 뒤를 잇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휘력에 대한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모른 채 한자 세대의 향수만으로 아이들을 멍들이고 지치게 할 뿐이다.
1970년부터 4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교과서는 한글 전용을 바탕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라면 괄호 속에 한자를 병기하여 뜻을 보완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교과서에서 한자가 줄어드는 까닭은 우리의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의 문자 생활이 변해서다. 굳이 한자로 쓰거나 괄호 속에 한자를 함께 적지 않더라도 낱말의 뜻을 혼동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중등 교과서에도 한자 병기조차 그다지 쓸모가 없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본을 본떠서 한자 급수 시험 등으로 사교육을 조장하여 학생들과 학부모의 부담을 키워 왔다. 유치원에서도 한자 급수 시험을 강요하는 일마저 벌어지는 판이다. 한자를 모시는 이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학생들의 어휘력이 떨어졌다는 억지를 쓰며 초등 교과서에도 한자를 병기하고 나아가 혼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한글 교과서로 공부한 부모 세대의 어휘력이 떨어졌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낱말의 뜻은 그 어원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생활과 학교 공부 속에서 말로 그 의미를 듣고 익숙해진 말들은 그 말의 어원이나 한자 지식 없이도 그 뜻을 알게 된다. 어찌 ‘방정식’이나 ‘미분, 적분’과 같은 말을 한자로 적는다 하여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 배경 지식이나 개념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없는 한 한자 어원을 안다고 저절로 그 뜻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마찬가지다.
어휘력을 키우고 뜻을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넓은 독서와 말하기, 듣고 이해하기, 글쓰기 등의 국어 능력을 고루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일본 한자 말을 그대로 쓰지 말고 쉬운 우리 말글로 바꾸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한자 교육 강화 주장은 학생들이 총체적인 국어 능력을 키울 시간을 빼앗고 개념 이해를 단지 한자 이해 수준으로 떨어뜨리며 한자 사교육을 부추기는 짓이다. 초등 교과서에는 한자 혼용은 물론이고 한자 병기도 필요 없다. 40년 넘게 이어오며 자리 잡은 초등학교의 한글 전용 정책을 흔들지 말고, 한자 교육은 지금처럼 중학교부터 한문 교과나 자율 학습으로 감당해도 될 일이다.
우리의 요구
1. 새누리당은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즉각 거두라.
2. 교육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한자 급수 시험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지도하라.
2013년 4월 16일 <교과서 한자 혼용과 초등 한자 교육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책위원장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박종국 회장, 외솔회 성낙수 회장,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김종일 상임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윤지희 공동대표,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김태균 상임대표.
<교과서 한자 혼용과 초등 한자 교육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
참여 단체와 개인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한글문화연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뉴라이트학부모연합, 평등교육실현을위한학부모모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흥사단교육운동본부, 교육희망넷, 아이건강국민연대,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어순화추진회, 또물또세종식국어교육연구소,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 한말글문화협회,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우리말바로쓰기모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국겨레문화연구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옛기술과문화, 짚신문학회, 참배움학교연구회,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한글문화연구회, 한글문화원, 한글사랑운동본부, 한글서체연구회, 한글이름펴기모임, 한글재단, 한글철학연구소, 한말글이름을사랑하는사람들, 한힌샘주시경선생기념사업회, 훈민정음연구소, 훈민정음학회, e-교육신문
(단체 41곳)
강경애, 강도원, 강명수, 강명진, 강문석, 강병륜, 강복영, 강선종, 강수아, 강숙자, 강흥구, 고경희, 고근미, 고대봉, 고순랑, 고영빈, 고영회, 고운맘, 구법회, 권재일, 길양희, 김가람, 김경희, 김권삼, 김남규, 김동윤, 김동진, 김리박, 김명진, 김명희, 김석득, 김선숙, 김성배, 김소라, 김수업, 김수정, 김숙희, 김슬옹, 김슬옹, 김승곤, 김영명, 김영삼, 김영석, 김영환, 김용기, 김윤미, 김은영, 김정대, 김정묵, 김정섭, 김정수, 김정연, 김정태, 김정훈, 김정희, 김종범, 김종택, 김종현, 김진경, 김진규, 김차균, 김한빛리, 김해순, 김형주, 김환기, 김희열, 김희철, 나채운, 남영신, 노영수, 류동환, 류명식, 류승란, 류지혁, 리의도, 문경언, 문두병, 문정수, 민경현, 박동근, 박문희, 박병선, 박병천, 박붕배, 박선자, 박성혜, 박순자, 박앵전, 박양순, 박영희, 박용규, 박용수, 박일한, 반제철, 박정숙, 박정호, 박종국, 박태권, 박홍길, 반재원, 반재철, 밝한샘, 방현근, 부복자, 서복희, 서은실, 서정수, 성기지, 성낙수, 성충모, 손미라, 손성범, 손연홍, 송근실, 송보영, 송상관, 송 현, 송환웅, 신영미, 신영순, 안상진, 안재응, 안춘자, 양문중, 양백진, 양순복, 양재봉, 양춘희, 양태식, 예재명, 오금림, 오동춘, 오창호, 원광호, 유동삼, 유운상, 유태승, 유해선, 유혜영, 육철희, 윤경수, 윤규병, 윤명진, 윤미영, 윤시내, 윤영돈, 이건범, 이경미, 이경자, 이경주, 이 곤, 이광희, 이근영, 이금옥, 이기갑, 이대로, 이동화, 이병모, 이봉원, 이상규, 이상보, 이상홍, 이석준, 이성모, 이승호, 이승훈, 이영길, 이용주, 이운진, 이유신, 이윤숙, 이윤옥, 이재강, 이재홍, 이 정, 이정옥, 이정희, 이종구, 이종수, 이지수, 이창림, 이태영, 이태형, 이판정, 이한순, 이해철, 이현종, 이혜경, 이혜수, 인민아, 임동아, 임지룡, 장기봉, 장선숙, 장성희, 장세훈, 장지익, 장혜자, 전미란, 전태수, 정달영, 정동환, 정복동, 정소용, 정수진, 정연교, 정옥희, 정의순, 정인환, 정인환, 정재도, 정재환, 정지용, 정해동, 조규태, 조숙자, 조오현, 조용란, 조이현, 조장희, 조종숙, 조현주, 조혜정, 지현정, 진용옥, 차재경, 차재경, 최기호, 최동오, 최명선, 최명자, 최미연, 최미영, 최방철, 최선순, 최승혁, 최승훈, 최애란, 최영희, 최용식, 최인호, 최종원, 최진용, 최해님, 최현주, 최홍식, 표은성, 하치근, 한무희, 한아영, 한재준, 한태상, 한효석, 함의정, 허경무, 허홍구, 현병찬, 홍정선, 홍종현, 홍현보, 홍희숙 (개인 26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