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고 저녁을 맞이하니 시간이 많다.
저수지와 숲정원을 돌고 돌아와 밥을 해 먹고 나서
붓놀이를 두 장해도 시간이 많다.
글씨는 줄이 맞고 획도 바른 듯한데 술먹고 논 것보다 멋은 없다.
개구리 우는 소리, 빗소리에 잠을 설치는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설치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몸을 일으니키니 5시가 지났다.
아마 해 뜨는 시각이 멀지 않겠지만 비구름에 가릴 것이다.
지난 창비에서 2.1운동 100주년과 촛불의 의미를 게으르게 읽다가 나온다.
보슬비가 내리는 길을 우산을 들고 걷는다.
어제 점심에 지난 방호교는 물이 많이 줄었지만, 깨끗해졌다.
주차장엔 자전거를 꽂은 캠핑카 한대가 잠자고 있다.
방호정에 올라 글씨를 보고 사랑공원으로 오른다.
신발이 젖기 시작한다.
반곡마을의 한길을 걸으며 봄에 본 비석들을 한번 더 본다.
남양홍씨, 남평문씨 비와 그리고 장창원의 동몽교관 정려도 본다.
구례의 동몽교관지려를 난 몇개나 봤을까?
효행을 올려 직책없는 동몽교관의 아이들 본되는 선생이라는 벼슬을 받고
이 동네에서 큰소리치는 명패로 삼았다고 하면 난 그 후손들에게 몽둥이 맞을까?
삼년시묘에 호랑이 여우 등이 지켜주고, 누워계신 부모에게
살을 떼어내거나 한겨울에 딸기를 구하거나, 없던 잉어를 잡는 일은
어느 마을에나 있을법한 이야기였을거다.
길손식당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길을 따라 회고나 앞까지 올라간다.
시인 홍준경과 화가 이강희의 소개를 보고 회관을 지나 개천으로 내려간다.
힘센 풀들이 누워 있다.
건너편 길 위의 검은 매그너스 승용차 한대는 온통 풀에 덮여 있다.
다리를 건너며 물과 구름 낀 만복대 산록을 보다가 다시 돌아온다.
반석위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들을 산수유 나무 사이로 보며 내려온다.
내려가지 못하다가 아랫쪽 너른 곳에서 조심스레 내려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