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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소통 펴냄/전근홍 지음/1만원 | -백봉, 20여년간 중생교화에 힘슨 선지식 -거사풍(居士風)의 새 화두 ‘새말귀’ 제시 -일상생활 전부 화두로 들 수 있다고 주창 -재가 불자로서의 기본자세 10계율 제시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꽃을 들어 보임으로써 실상(實相)을 전하셨고, 유마 거사는 입을 열지 않으시고 둘이 아님(不二)의 법문을 했다. 이처럼 연꽃을 들어 보이거나 침묵으로써 법을 보일 수 있다면, 그 행위는 불법이며 실상이다. 그러니 스승이 아침에 세수 하시는 것, 공양 드시는 것, 일 하시는 것 등 모든 행위가 바로 ‘소식’이며 지혜다. 이 처럼 스승과 일상을 함께하거나 일상에 대해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수행이다.
이 책 저자인 전근홍 거사의 스승 백봉 김기추(白峰 金基秋, 1908~1985)는 20세기 ‘한국의 유마 거사’로 추앙받는 불교계의 큰 산맥이다. 그는 50세를 훌쩍 넘겨 불교에 입문했지만 용맹정진으로 단기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20여 년간 속가(俗家)에 머물며 거사풍(居士風) 불교로 중생 교화에 힘쓴 선지식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를 따랐으며, 그의 자비심 넘치는 열정적 설법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닫혔던 좁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눈에서는 시비ㆍ분별의 비늘이 떨어졌으며 집착과 망상을 내려놓아 참다운 자유와 안심을 얻은 제자들이 많았다.
백봉 거사는 <금강경강송> <유마경 대강론> <벽오동> <절대성과 상대성> 그리고 15권의 <선문염송요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설법을 녹음한 테이프가 300여 개나 되고 제자들은 그 테이프에서 가려 뽑아 <도솔천에서 만납시다>와 <허공법문> <공겁인>을 출판하기도 했다.
백봉 거사는 “눈이란 기관을 통해서 보는 놈이 누구냐,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듣는 놈이 누구냐?”며 “빛깔도 소리도 없는 바로 그 자리, 허공이 본바탕이고 법신”이라 강조했다. 다시말해 거사풍(居士風)의 수행가풍을 드날렸다.
백봉 거사는 경전이나 선어록에 대해 자구(字句) 해석이나 전통적 해설보다는 철저히 자신의 살림살이를 토대로 막힘없이 설법했다. 특히 자신이 살았던 전통과는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현대인들을 위해 불법의 정수를 알리기 위해 늘 고심했다. 예를 들면, 종래의 소극적이고 수동적 이해에 머물던 공리(空理) 방편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해 ‘허공으로서의 나’를 모든 상대성을 넘어선 절대적이고 주체적 근원으로 제시했다. 또 이 ‘허공으로서의 나’ 즉, 공겁인(空劫人)이 근본적 바탕이기 때문에 태어나고 죽는 것도 우리의 권리로서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라 설했다.
특히 백봉 거사는 이 ‘허공으로서의 나’를 근간으로 전통 화두 방편을 개혁해 새 화두라는 뜻의 ‘새말귀’를 제창했다. 전통적 화두 수행이 승려를 위한 것이라면 새말귀는 일상 속에서 바쁘게 일하는 재가 수행자를 위해 창안된 것이다. 즉 ‘허공으로서의 나’를 철저히 이해하면 법을 먹든, 세수를 하든, 운전을 하든 일상 생활 전부를 화두로 들 수 있다는 것이 새말귀의 이념인데, 이는 전통적 화두를 대체했을 뿐 아니라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한 새 수행법에 대한 토대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백봉 거사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서 재가수행자에게 어울리는 계율과 수행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 말아야 할 10계율’이란 뜻을 가진 〈십물계(十勿戒)〉에서 “비록 아내와 자식이 있다 해도 쏠려보는데 떨어지지 말라”, “가업을 잇더라도 잘못된 이익을 탐하지 말라”, “세상 법도와 함께 해도 대도(大道)를 버리지 말라”, “천하에 노닐면서도 법성(法性)을 무너뜨리지 말라”등 10계율을 통해 재가 거사로서 가져야 할 기본 자세를 말하기도 했다.
40여 년간 스승의 유지를 굳건히 이어온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명확했다. 저자는 “가장 감명 깊게 들었고 불교공부의 확신을 주었던 스승의 설법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한사람에게라도 바른 법을 알리려던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였다”며 “스승의 뜻은, 오직 생사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 출가 할 수 없고, 시간과 여건이 허락치 않아 길을 잃고 헤매는 재가 불자들에게 그들의 입처에 맞는 수단과 방편을 제시해 줌으로써 스스로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는 백봉 거사의 핵심 가르침이 자세히, 반복 설명돼 있다. 그리고 제자 지도법과 수행법, 하루 일과 등 저자가 직접 보고 들은 진솔한 수행담이 주로 들어 있다. 아울러 백봉 거사 문하 제자들의 깊은 불연(佛緣)과 간절한 발심, 스승의 인간적 면모와 제자들의 고뇌, 그리고 스승의 지도ㆍ점검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을 통해 독자들도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있다.
(현대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