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가 바리오스의 작품을 외면한 이유가 요청한 악보를 못 받은 모욕감이 계기일까? 아니면 바리오스의 뛰어난 재능에 대한 경계심이나 질투였을까? 바리오스 연구가인 Stover 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세고비아가 바리오스의 곡을 한 곡도 연주하지 않은 사실이 의아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세고비아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기타리스트가 작곡한 작품이나 “현대적”이지 않은 작품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기서 “현대적”이란 말은 그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드비시, 데 파야, 라벨, 바르토크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세고비아의 삶은 새로운 기타 레퍼토리를 만들어 내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의 작곡가들과는 같이 작품을 만들어 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만약 그랬다면 기타 레퍼토리에서 20세기 작품들은 훨씬 더 풍성해 졌을 것이다."
"그런 20세기 대표적인 작곡가들과는 작업을 못했지만 세고비아의 노력으로 인해 오늘날 클래식 기타의 기본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졌다.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이 레퍼토리들은 “로맨티시즘으로부터의 벗어남” 이었다. 즉 새로운 방향으로 옮아가되 조성체계는 파괴하지 않는 것이었다."
“새로운” 레퍼토리에 대한 세고비아의 방향과 동기에 대해 이탈리아의 음악학자이자 기타리스트인 Angelo Gilardino 는 이렇게 말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세고비아가 바리오스를 만났던 시절 세고비아의 기타 레퍼토리에 대한 비젼은 이미 충분히 표출되었고 그것은 분명했다. 현대(contemporary) 레퍼토리는 기타리스트가 아닌 ‘진정한’ 작곡자의 작품이라만 했다. 세고비아가 그런 자신의 신념을 알려서 스트라빈스키나 라벨, 바르톡이 작품을 쓰도록 하지는 못했고 그 신념이 폰세나 테데스코에게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아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세고비아가 바리오스의 작품을 전혀 연주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쉬워해서는 안된다. 기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당시의 음악계에서의 그의 강점은 바로 그가 나름의 수준을 갖춘 작곡가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었고, 기존에 기타로 들을 수 없었던 음악적 특성을 갖는 작품들을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소개하는 능력이었다. 바리오스는 마땅히 우리의 존경과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세고비아가 자신과 자신의 악기를 위해 찾고 있던 질적인 측면에서 바리오스의 작품은 아무 것도 대체해 줄 수 없었다.”
Stover 는 이렇게 덧붙인다.
“처음에는 플라멩고로부터 벗어나려했고, 그리고 클래식 기타를 마스터한 이후에는 레퍼토리를 확장하는데 있어 기타리스트를 피하려했고 그러면서 기타의 잠재력을 음악계와 작곡가들에게 알리고자 애를 쓰는 젊은 세고비아의 모습을 본다. 세고비아가 바리오스를 만났을 때 세고비아에게는 레퍼토리가 “별로” 없었다. (토로바와 프랑코의 작품이 하나씩 있었다.) 세고비아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고자 했었으나 바리오스의 작품은 그가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Stover 와 Gilardino의 해석을 받아 들인다면 세고비아가 바리오스의 대성당 연주를 듣고 악보를 요청한 것은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 바리오스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세고비아가 원하는 범주나 조건을 갖추지 않았지만, 대성당만은 예외였다는 것일까? 계속해서 Stover 의 얘기를 들어보자.
“세고비아가 바리오스와 그의 작품에 대한 외면은 아래의 두가지 사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는 로맨틱 스타일에 대한 거부이고, 둘째는 여러 시대의 특징과 요소를 결합한 절충적인 스타일에 대한 거부이다. (바리오스의 음악은 민속적인 요소, 바흐, 쇼팽, 타레가등 여러 스타일과 시대적 요소가 결합되어있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바리오스 음악의 핵심요소이다. 그래서 세고비아는 바리오스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충동적이고, 바리오스가 진지하고 질적으로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간주했다. "
"그런데 세고비아의 바리오스에 대한 배척에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그것은 작곡자 자격 측면에서 당대의 모든 기타 연주자에 대한 거부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기타 작품은 대부분 연주자겸 작곡가가 작곡했었고 바리오스는 바로 그 전통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는 세고비아의 외골수적인, 타협없는 이상에 대한 열광적인 몰두가 지나쳤다고 본다. 이것이 바리오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예술성, 아름다움, 기술적인 전개를 못 보도록 세고비아의 눈을 가린 것이다.”
(계속)
첫댓글 바리오스의 곡들이 대체적으로 달달 하기는 하지요, 해도 ...
동감입니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외면한 것은 좀 더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연주를 안 하더라도 제자에게까지 연주를 못하게 할 것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