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는 나쓰메 소세키에 필적하는 정도로 일본 독자에게 대등한 위치가 부여되는 메이지 시대의 소설가 모리 오가이의 작품이다.
오카다는 도쿄 의대생으로 건장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다.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던 나는 그와 별 말을 나눈 적이 없다. 그는 자주 대학 교정을 지나 제법 먼 거리를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산책 행로는 정해져 있다. 아카몽, 신사거리, 안경교를 건너 야나기하라 천변을 타고 오나미치로 돌아서 골목길을 이리저리 둘러서 가는데 헌책방에도 이따금 들른다. 내가 오카다와 친해진 계기도 산책길에 있는 헌책방에서 서로 같은 외국소설을 구입하려고 하다가 대화를 트면서부터였다. 산책 길에는 꼭 무에자카를 지나는데 남쪽에는 이와사키의 저택이 있고 북쪽에는 여자들을 모아 놓고 바느질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 오카다는 목욕탕을 다녀 오던 한 여인과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시끌한 소녀들의 웃음 터져 나오는 바느질집 옆에 있는 적막한 집으로 들어가려던 중이다.
적막한 집에 살고 있는 이 여인은 사채업자 스에조의 첩 오다마이다. 스에조는 아내 몰래 첩으로 삼은 오다마를 위해 이 집을 구해 그녀를 데려다 살게 했다. 심성이 착한 오다마는 불쌍한 아버지를 위해 첩이 되기로 작정한다. 그녀는, 돈만 아는 스에조라도 영감을 위해 자신이 사는 집 옆에 거처를 마련해서 편히 모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는 순사 출신에게 결혼 아닌 결혼으로 속았던 전력이 있었다는 점도 그녀의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 같다. 그녀는 스에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곤 한다. 어느 날 산책하던 오카다는 창문을 통해 그녀를 자주 보게 되었고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게 되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터 놓고 대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날 오다마가 외로움을 달래려고 기르던 새의 집에 구렁이가 침범하게 된다. 마침 지나던 오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처마에 달려 있던 새장에 손을 뻗쳐 뱀을 죽이고 두 마리의 여한 마리를 겨우 살려 낸다. 오다마는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던 오카다에 대한 연정이 일어나게 된다. 고마운 마음은 교묘히 숨어 있던 욕망을 불러내고, 그를 향한 기다림과 대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게 하지만 천성적인 수줍음이 답례를 하지 못하게 막곤 한다. 눈치를 챈 오카다로서도 그녀에 대한 관심과 그녀를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는 천혜와 같은 독일 유학장학생에 선발되고 나서는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착잡하다. 유학을 떠나기 전 나와 오카다, 다른 친구 이시하라와 함께 기러기가 날아 드는 갈대 연못을 산책한다. 이시하라는 그에게 돌로 기러기를 맞춰 잡자고 부추긴다. 동정심 많은 오카다는 주저하다가 못 이겨 돌멩이를 일부러 빗나가게 던졌으나 그만 기러기 한 마리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히고 만다. 셋은 기러기를 옷에 감추어 경찰서 앞을 지나쳐서 이시하라의 집으로 가서 기러기를 안주 삼아 이별의 술을 마신다.
내가 하숙집에 와서 취기 때문에 다음날 늦게서야 겨우 눈을 뜨니 오카다는 떠나 버리고 없었다. 오카다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오다마와도 영원히 떠났다. 날아갈 계절을 기다리던 기러기나 행여나 오실까 마중나와 기다리던 오다마나 둘 다 선량한 기러기였다. 그는 두 기러기의 머리에 돌멩이를 던진 것이다. 그는 선량하고 인정 많던 오카다였지만 오히려 그를 사모하던 기러기와 같은 오다마를 안주삼아 삼켜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왜 여린 여인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서 떠나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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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본문 중에서)
"여자에게는 갖고 싶지만 실제로 사겠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 갖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하나가 되어,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희미하고 달콤한 어떤 애상적 정서가 생긴다. 여자는 그런 감정을 즐긴다. 그것과는 달리, 여자가 실제로 사려고 하는 물건은 그 여자에게 강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여자는 그 물건 때문에 안절부절못할 만큼 괴로워한다. 설령 며칠 기다리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경우라도 그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여자는 더위나 추위, 그리고 어둠이나 눈비에도 아랑곳없이 충동적으로 그것을 사러 가는 경우가 많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도 특별히 이상해서가 아니다. 단지 갖고 싶은 물건과 살 수 있는 물건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여자일 뿐이다. 오다마에게 오카다라는 존재는, 예전에는 단지 갖고 싶은 물건이었으나 지금은 순식간에 변하여 살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여자에게 남자란 갖고 싶은 대상이거나 살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모리 오가이의 이런 관점은 당시 일본 여인들의 일반적 지지를 받는 생각일까? 조금 의아스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민족성 차이일지 문화적 차이일지, 아니면 시대적 차이일지는 나는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