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STAKOVICH
교향곡 15번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
RCO 11003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하이팅크의 광대한 교향곡 레퍼토리 가운데 이 지휘자가 가장 적은 이의로 자기 지분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작곡가를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브루크너나 말러보다도 오히려) 쇼스타코비치를 꼽아야 할 것이다. 그가 1977~84년에 데카에서 녹음한 교향곡 전집은 서방 지휘자 가운데 최초의 전곡 녹음이었으며, 해석 역시 기존의 동구권 지휘자들과는 달리 곡의 형식미 자체를 부각한 연주로 많은 반향을 얻었다(물론 당시에도 바로 이 점에서 이의를 제기한 이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로열 콘세르트헤보와의 15번 음반은 2010년 3월 17~19일의 실황을 편집한 것으로, 1978년에 런던 필하모닉과 이 곡을 녹음한 지 정확히 33년만의 복귀이다. 단 한 곡만 수록되었다는 데 불만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연주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한 음반이다.
템포 면에서 보면 이 연주는 전반적으로 좀 느린 편이다. 굳이 다른 녹음과 비교하자면 미하일 플레트뇨프/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2008년 녹음(PentaTone)과 가장 가깝다. 전체적인 스타일을 놓고 말하자면 ‘순음악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부류에 속하며, 이 점에서 어느 정도는 로만 코프만/본 베토벤 오케스트라의 2005년 녹음(MDG)을 연상케 하지만 해석의 ‘순도’와 일관성은 오히려 하이팅크 쪽이 우세하다. 예를 들어 1악장에서 코프만의 녹음에서는 세련되지만 다소 느슨한 현과 돌발적인 다이내믹 대비를 보여주는 금관이 기이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하이팅크는 모든 대목에서 일관된 선명함과 투명함을 보여준다. 짜임새는 매우 명쾌하며, 관현악의 정위감과 원근감도 훌륭하게 포착되었다(타악기군이 특히 잘 잡혔는데 다만 큰북은 좀 둔탁하다). 굳이 말하자면 (뻔뻔스러울 정도로 야할 표현으로 일관하는 콘드라신의 멜로디야 녹음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해학적인 느낌이 덜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고, 특히 빌헬름(혹은 굴리엘모) 텔 서곡 인용은 내겐 좀 과도하게 정석적이다. 그러나 일부 대목에서 살짝 비틀린 로코코풍의 연주를 들려주는 바이올린은 나름대로 즐거움을 준다.
콘세르트헤보의 금관은 2악장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병행 3도의 코랄에서부터 악장 끝까지 호흡이 길면서도 차분하고 균일한 음조를 유지하며, 중간부에 등장하는 장송곡 풍의 트롬본 코랄은 선명하면서도 풍부한 억양으로 담담하지만 짙은 비감을 드러낸다. 한편 코랄 직후의 첼로 독주는 콘세르트헤보임을 감안하면 좀 건조한 감이 있기는 해도 짙은 애수가 담긴 호소력 풍부한 연주를 들려준다. 짜임새가 좀 성기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긴장감은 다른 어느 녹음 못지않으며, 특히 플루트를 비롯한 목관의 차가운 음색은 때론 섬뜩하기까지 하다. 3악장 첫머리에서는 이러한 측면에 한층 강조되어 마치 얼음으로 지은 ‘공포의 집’에 들어선 것 같은 오싹함마저 느껴진다. 악장 전반적으로 보아도 매우 정성스럽고 세심한 연주로 기괴함을 잘 살려내고 있다. 금관은 여기서도 매우 능숙한 연주를 들려준다(특히 호른에 주목하기 바란다). 피날레에서 차분하게 억제된 바그너 인용(‘니벨룽의 반지’ 중 ‘운명의 동기’) 뒤에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주요 주제는 매우 세련되고도 쓸쓸하며, 창백하면서도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중간부 후반에 도달하는 클라이맥스는 위압적이라기보다 대단히 침통하며 고통스럽다.
녹음에 대해서는 앞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밸런스가 잘 잡혀 있고 성부 분리도 선명하며 잔향 역시 적절하다. 특히 피날레의 맨 마지막 악구에서 다시 한 번 명징하게 표현된 관현악의 원근감은 그야말로 시각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진정 눈여겨보지 않으면 안 될, 매우 뛰어난 해석이고 연주이며 음반이다.
첫댓글 콘서트헤보우도 전관예우(?)가 확실한 건 결코 예외가 아닌 것 같군^^ 하이팅크옹의 의도를 철저하게 흡수하고 이를 곱씹어 밀도있게 반응하여 능수능란하게 표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오케스트라가 바로 이들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 데카 전집(런던필)은 전반적으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스타일과 거의 상반된 해석이어서(자네의 표현대로라면 형식미를 너무 부각해) 어떤 면에서는 설득력이 매우 떨어지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연주라 잘 안듣게 되던데, 최근 이 분의 스타일은 (이젠 은퇴를 앞두고 계실만한 연세이신데도) 오히려 더 직설적이고 강렬해진게 아닌가 싶기도 해. 나로서도 매우 궁금한 연주가 아닐 수 없네...ㅎㅎ
RCO 정말 최고인듯! ^^* RCO와 비교할수도 없겠지만 이번 LSO 공연은 정말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특히 관악기 파트가 엉망이었다죠?
그런 말이 있더군요. 전 어째 내키지 않아서 안 갔는데, 그러길 잘한 것 같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