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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내원암을 지나 산의 들머리는 묵밭같은 넓은 공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아마 사찰 증축 계획이 있는 공터가 아닐까 한다. 공터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이정표에 새겨진 고당봉 방향으로 너른 길을 따라 간다. 지난 번 왔을 때는 갑오봉의 억새밭을 지나 장군봉에 오르고 장군샘을 거쳐 고당봉에 올랐지만 오늘은 가장 너른 길을 선택하여 일행을 안내한다.
고당봉 주능선까지는 잘 닦여진 임도로 넓고 평탄한 길이기에 몇번의 휴식을 하지 않아도 금방 다가갈 수 있어 부산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길이란다. 다만 이곳 분기점(사방으로 길이 갈라져 있음) 에서 고당봉까지 200여미터만 다소 경사가 급하나 목재텍크 계단이 설치되어 오름에 별 어려움이 없다. 조금 돌아가는 목재 텍크를 버리고 직선 코스로 가니 텍크까지 바위벽을 조금 기어 오른다. 텍크에 닿아 골뱅이 사다리를 오르면 바위덩이로 된 정상에 선다. 산악회의 마스코트인 상헌이는 남보다 어려운 암벽을 다람쥐처럼 능숙하게 오른다. 11살 나이로 숱한 암산을 다니면서 스스로 익힌 산행 기술이 날로 발전하여 이제는 회원 어느 누구에 못지 않은 산꾼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고당봉에 서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사방에서 풍경으로 다가온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고 바람이 잠잠한 정상에서 우리는 빙빙 돌면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만끽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금정 산성과 멀리 바다를 경계로 만들어진 도시의 빌딩들, 장군봉과 갑오봉이 만든 너른 억새평야의 누런 물결을 따라 길게 요동치는 봉우리들의 중심에 서서 거느리는 자의 여유에 젖는다.
정상에서 내려 산성의 북문을 향한다. 고모령 산신당의 좁은 방에 들어서서 손을 모아본다. 무엇을 소망하는 게 아닌 아무 생각없는 손모음에 마음이 개운해진다. 전망대 텍크 마루에 점심상을 펴다가 산신당 옆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한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거느리고 북으로 고당봉으로 울을 쳐 바람을 막고, 반주를 겯들인 오찬은 한폭의 신선도를 생각하게 한다.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하산로를 따라 내려가고 나는 금샘을 들렀다가 북문으로 가기로 한다. 산 이름의 유래가 될 만큼 이름난 샘이려니 했더니 고당봉에서 남으로 갈라선 작은 산줄기 위에 바위들이 모여 있고 그중 불쑥 솟은 선바위 꼭대기가 움푹 파여 물이 고여 얼음이 얼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니 신기하고 아래 세상 사람을 굽어 보는 게 모든 물의 근원인양 근엄하다. 높이 솟은 바위 끝에 파여 귀한 물을 담았으니,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금빛 물고기가 살고, 금빛 물이 고이고, 선녀가 목욕을 하면서 걸어놓은 금빛 옷, 가뭄이 들면 철철 넘치는 샘물들을 마구 쏟아내지 않았으랴. 곁에 가 보아도 고인물이 얼어 있는 게 신비하다. 한참동안 샘에 시선을 두다 북문으로 내려와 일행과 합류한다. 돌아보니 더 뾰족해 보이는 금샘 바위가 우릴 내려다 본다.
북문에서 범어사까지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오히려 불편한 느낌이 든다. 넙적한 돌을 묻어 포장된 도로처럼 딱딱하여 산길 특유의 느낌을 줄이지만 범어사 가까이 바윗덩이 바다는 또하나의 볼거리이다. 산에서 범어사로 들어서는 문을 지나니 긴 담벼락이 늘어서 좁은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범어사 경내를 돌아 일주문을 나서는데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절로 들어서는 불자들이 통로를 비좁게 한다. 범어사는 화염종의 본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 고 한다.(범어사 홈페이지 참고) 금정의 뜻을 터득한 일행들은 이야기 속의 금샘을 못 본 것에 아쉬움을 남기고 산행을 마무리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나무가지의 자유로운 활보를 닮고 동자승의 해맑은 웃음을 간직할 수 있으면, 삶은 금샘에서 노니는 금빛 물고기보다 찬란하지 않으랴. '하루하루 자유롭고 웃음으로 이어지는 삶이도록 우리네를 가볍게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산신당에서의 무념의 합장에 담긴 소망이었을까.
2013/12/29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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