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안중근 의사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10월 26일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다. 필자가 최근 사석에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10월 26일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1979년의 그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그러나 10월 26일은 그 1979년을 기점으로 70년 전 안중근(토마) 의사가 하얼빈에서 조선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주살(誅殺)하고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필자가 안 의사의 옥중 자서전 <안응칠역사>(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2009년)를 읽고 또 안 의사에 대한 관련 자료에 관심을 두고 성찰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 의사는 짧은 생애였지만 사상에 있어서도 행동에 있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쇄신하고 발전하였다. 둘째, 안 의사는 개인과 사회, 세상과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초월적 관계에서 자신의 삶과 세상의 의미를 찾고 행동으로 실천하려 했다. 인간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뿐만 아니라 초월적 차원에서 삶을 지향함으로써, ‘전인(全人)’으로서 참 인간화와 역사의 완성으로서 참 사회화를 추구하였다. 셋째, 이 관계는 상호적이었다. 안 의사는 이웃과 사회, 민족과 세상을 타자화(他者化)하여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내몰기보다는 상호 교류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의 진보를 꾀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세상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그 동력을 안 의사는 ‘인간적인 힘’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신앙’에서도 찾았다. 안 의사 의거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백성은 너무 기뻐했다. 독립을 넘어 평화를 염원했던 의인들은 안 의사의 뒤를 기꺼이 따랐다.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해 당대의 부일세력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문 개’의 ‘미친 짓’이라고 했으며, 이토의 죽음에 앞다퉈 눈물 흘리기 경쟁을 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의사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했다가, 안 의사 본인이 검사 앞에서 당당히 천주교 신자라고 밝힘으로써 언론에 알려지자, 교회를 떠난 자라고 둘러대면서 그를 부끄러워했다. 그 후 부일세력은 안 의사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애국자, 애족자로 행세하려니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글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성찰했다. 아마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반응이 갈렸을 것이다. 로마에 부역한 지도자들은 환호했을 것이며,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폄훼했을 것이나, 고통 중에 있는 대부분의 유다 백성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두고두고 마음에 담았을 것이다. 의인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세상을 갈라놓는가 보다. 빛과 어둠의 실체를, 정의와 불의의 실체를, 진리와 거짓의 실체를, 자유와 억압의 실체를, 사랑과 증오의 실체를 또렷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거짓 평화를 내세우는 세력의 기세등등함을 보고 있다.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및 정부 부처의 불법 선거 개입과 관련해서, 그리고 사법부의 무력화와 입법부인 국회의 활동과 그에 대한 대중매체의 태도에서, 전근대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본다. 시민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 ‘폐쇄적 지배집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익을 취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장악하려는 ‘폐쇄적 지배집단’ 앞에, 시민은 그저 고분고분하게 순종할 의무만 있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금력과 권력과 해괴한 언변을 동원해서 어둠도 빛이라 속이고, 거짓도 진리라고 포장하며,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고, 증오를 사랑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시민의 의식을 망가뜨리고 침묵을 강요한다. 이를 위해 하느님마저 도구로 이용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마태 22,37) 교회는 십계명 가운데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를 첫째 계명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교리에서는 “우상숭배는 하느님이 아닌 것을 신격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신이나 마귀(예를 들어 악마 숭배), 권력, 쾌락, 인종, 조상, 국가, 재물 등 인간이 하느님 대신에 어떤 피조물을 숭배하고 공경한다면 이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가톨릭교회 교리서 2113항)이라고 가르친다. 권력과 국가와 재물을 절대시하는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한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결코 같지 않다. 국가가 정치공동체로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여러 ‘사회’ 가운데 하나라면, 정부는 시민과 그 여러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조직, 곧 ‘도구’일 뿐이다. 그 때문에 정부는 시민의 선택으로 바뀌기도 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렇다. 우리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유지하며 정부가 여러 차례 바뀌지 않았던가. 또 많은 사람이 ‘정부’와 ‘관료’를 동일시한다. 그러나 정부와 관료는 결코 같지 않으며 같을 수도 없다. 관료는 우리와 같이 유한하고 나약한 사람이고, 정부는 기구인데다가, 관료가 있고 정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있은 다음에야 관료가 임명되고 선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한 말로 나랏일 하는 사람을 정부와 동일시하고, 또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명하다. ‘민주’의 실종이다. 시민은 주인이 아니라, 관료와 정부와 국가에 종속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맨 위에 왕과 왕족이 있고, 그 아래 관료와 무관과 학자와 종교인들이 있고, 그 아래에 평민이 있고, 그 아래 노예가 있던 그 시절, 평민과 노예는 의무만 있지 권리는 없었다. 권리는 왕족과 귀족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는 평민과 노예를 먹여 살려야 했다. 평민과 노예가 없으면 그 무수한 일들을 귀한 몸으로 직접 해야 했으므로…. 빨래부터 농사까지, 하다못해 집에서 일 보러 관청에 가는 것까지. 이때를 흔히 ‘절대왕정’이라고 했다. 관료와 정부에, 그리고 국가에 시민으로서 권리를 내세우지 못하고, 의무만을 강요당하는 것을 어떻게 ‘민주’라고 서술할 수 있겠는가. 관료와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려는 이들은 관료의 행위(정책)를 반대하면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고, 정부를 반대하면 곧 국가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매도한다. ‘폐쇄적 지배집단’은 자기들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국가를 절대시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국가를 절대시하고, 절대화된 국가를 내세워서, 천부의 양심도, 신앙도, 하느님도, 교회도, 자기들의 권력과 이익(재물)에 순종해야 하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자기들의 권력과 이익에 반대하면 바로 ‘반정부’라 선전하고 ‘매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의사의 의거를 두고 당시의 부일지도자들이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문 개’의 ‘불경한 짓’으로 매도한 것과 같다. 이토는 일본의 관료였을 뿐이고, 그의 행위가 2천만 시민을 고통에 몰아넣은 악이었음에도, 이토를 정부와 국가(실제로는 군국주의 일본이었지만)와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지켰던 것이다. 그러면서 태연히 ‘애국’, ‘애족’을 내세웠다. <안응칠역사>를 읽으며 오늘의 우리 모습을 살핀다. 박동호 신부 (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