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기니 고원지대에서 지속 가능한 농경을 위해서는
토양의 생산성도 유지해야 했지만 목재 공급이라는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밭을 개간하고 마을을 세우기 위해 숲을 파괴한 탓이었다.
고원지대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여러 이유에서 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목재는 집과 울타리, 연장과 그릇, 무기를 만드는 재료이고,
요리를 하거나 추운 밤 오두막을 덮혀주는 땔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고원지대는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수천년 의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특히 파푸아뉴기니의 와기밸리와 인도네시아령 뉴기니의 발리엠밸리)에서는
해발 2,400미터 아래로 숲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면 고지대 사람들은 필요한 목재를 어디서 구하고 있을가?
1964년, 고원지를 방문한 첫날에 나는 마을과 밭 주변에 카수아리나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쉬오크(sheoaks)' 혹은 '아이언우드(ironwood)'라는 이름으로도 알져져 있는 카수아리나는
솔잎을 닮은 잎을 가진 대여섯 종의 나무들을 가리킨다.
원산지는 태평양섬,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열대 동아프리카 지역이었다.
하지만 쉽게 쪼개지면서도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그래서 철과 같은 나무라고 하여 아이언우드라고 불린다.)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중에서도 뉴기니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카수아리나는 '카수아리나 올리고돈(Casuarina oligodon)'으로,
시냇물 제방을 따라 자연적으로 발아한 이 나무의 묘목들을
수백만 명의 고원지대 사람들이 옮겨 심으면서 집중적으로 키우는 나무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다른 몇 종의 나무도 하께 심기는 했지만 카수아리나가 압도적으로 많다.
카수아리나를 고원지대로 옮겨 심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전통적인 농업(agriculture)과 달리 나무를 재배한다는 뜻에서
'조림(silviculture)' 이란 용어가 사용된다.(라틴어에서 silva, ager, cultura는 차례로 삼림, 들판, 경작을 의미한다).
유럽의 임학자들은 카수아리나 올리고돈의 정점과 이 나무의 숲에서 고지대 사람들이 얻는 혜택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카수아리나는 빨리 자란다. 또 목재와 땔감으로 사용하기에도 그만이다.
질소를 고정시키는 뿌리 혹과 풍부한 낙엽은 토양에 질소와 탄소를 더해준다.
따라서 밭 군데군데 흩어져 자라는 카수아리나는 토양의 비옥도를 높여주고,
버려진 밭에서 식재된 카수아리나들은 새로운 작물을 심기 전에 지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휴경 시간을 단축시킨다.
뿌리는 가파른 경사면의 흙들을 붙잡아 매는 역할을 하므로 침식의 위험을 줄여준다.
농학자들은 카수라리나가 타로 벌레의 수를 감소시킨다는 근거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지만
뉴기니 농부들은 어쨌든 카수아리나가 타로 벌레의 번성을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다른 많은 사례와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는 그들의 주장이 옳은 듯하다.
고지대 사람들은 미학적 이유에서도 카수아리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카수아리나 가지들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를 좋아하고,
카수아리나가 마음에 그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래의 숲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 넓은 계곡에 카수아리나를 옮겨 심음르로써
이 나무 의존적인 사회가 계속 변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조림을 시작했을까?
고원지대의 초목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고식물학자들이 사용한 단서들은
제2~8장에서 이스터 섬, 마야 지역,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의 초목사를 다루면서 언급한 단서들과 다르지 않았다.
즉 습지와 호수의 퇴적물에서 추출한 화분의 분석 및 그 화분과 관련된 층의 확인,
자연발화나 개간을 위한 방화에서 생기는 숯이나 탄소 입자,
삶림 파괴로 인한 침식을 뜻하는 퇴적물,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 등이 사용되었다.
약 4만 6,000년 전, 아시아에서 뗏목이나 카누늘 타고
인도네시아 섬들을 거쳐 이동한 사람들이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최초로 정착했다.
당시 뉴기니는 호주와 연결된 거대한 대륙의 일부였고, 이때 인간이 정착했다는 증거는 뉴기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 3만 2,000년 전쯤에 뉴기니 고원지대에서 숲을 이룬 수종들과 비교해서 그렇지 않은 수종의 화분이 많았고,
잦은 불로 인해서 생긴 숯이 있었다는 것은 이때 사람들이 이미 이 지역을 뻔질나게 다니면서 사냥을 하거나
판다누스(pandanus)의 열매를 채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은 사냥과 판다누스 열매의 채취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벌목이 꾸준히 계속된 흔적, 그리고 계곡 늪지대에서 발견된 인공 배수로는
약 7,000년 전 고원지대에서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약 1,200년 전 까지 숲을 이룬 나무들의 화분은 꾸준히 줄어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초목의 화분은 늘어났다.
그리고 이때쯤 서로 약 8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두 계곡,
즉 서쪽의 발리엠밸리와 동쪽의 아기밸리에서 거의 동시에
카수아리나 화분의 양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오늘날 두 지역은 벌채로 인한 삼림 파괴가 가장 광범위하게 일어난 곳이며,
동시에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계곡의 모습은 1,200년 전에도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카수아리나 화분의 급격한 증가를 카수아라나 조림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라고 본다면,
왜 하필이면 그때 800킬로미터나 떨어진 두 지역에서 갑자기 카수아리나가 식재되기 시작했을까?
당시 목재 위기를 불러왔던 요인으로 두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잇다.
하나는 7,000년 전부터 고원지대에 농경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삼림 파괴가 가속화된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두껍게 쌓여 있던 이른바 '오고윌라 테프라(Ogowila tephra)'로 알려진 화산재층과 관련 있었다.
당시 이 화산재는 뉴기니 동부(와기밸리가 있는 지역)를 뒤덮기는 했지만 서쪽 끝의 발리엠밸리까지 날아가지는 않았다.
오고윌라 케프라는 뉴기니 동부 해안에 위치한 롱아일랜드 섬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재층이었다.
1972년 나는 롱아일랜드 섬을 찾아가보았다.
산들이 직경 6킬로미터의 커다른 원을 이룬 섬으로
가운데에는 태평양의 삼들에서 가장 큰 호수 중 하나인 커다란 분화구 호수가 있었다.
제2장에서 언급했듯이, 환산재에 ㄴ실려온 영양ㅇ분들이 농산물의 생산을 증가시켰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구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인구 증가에 따라 목재와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뉴기니 사람들은 카수아리나의 장점에 주목하며 그 나무를 옮겨 심기 시작했을 것이다.
끝으로 엘리뇨 현상이 페루에서 나타난 때를 뉴기니에 적용해본다면
가믐과 서리가 세 번째 요인으로 구원지대 사람들에게 큰 압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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