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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4장 묵상
유대인들에게는 모세 5경 곧 토라에 의해서 613개의 율법조항이 있다.
613개의 율법 조항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면
1계명은 창1;28에 있는 “생육하고 번성하라”이다.
2계명은 창17;10에 있는 “모든 유대인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이다.
3계명은 창32;32에 있는 “환도뼈의 큰 힘줄을 먹어서는 안 된다”이다.
100계명은 출28;28에 있는 “가슴받이가 에봇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다.
200계명은 레28;14에 있는 “숙모의 몸을 범하는 것은 삼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이다.
300계명은 레23;8에 있는 “유월절 기간 중 7일째 되는 날에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이다.
400계명은 민27;8에 있는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에게 유산을 상속하여야 한다.”이다.
500계명은 신16;16에 있는 “왕은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이다.
600계명은 신25;11에 있는 “음낭을 잡는 자를 보고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이다.
마지막 613계명은 신31;19에 있는 “토라(율법)을 써서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이다.
613개의 율법 중에서 248개 조항은 “--하라”는 긍정적인 율법이다.
365개의 조항은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율법이다.
--하라는 율법을 잘 지키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의 육체에는 248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248개의 긍정적인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248의 뼈마디에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강건케 해 주신다고 믿는다.
그런가하면 --하지 말라고 하는 365개 조항의 율법을 잘 지키면 365일 곧 1년 내내 하나님께서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해결해 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613개의 율법조항을 잘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온전케 하심과 정결케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계명,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은 자신들의 건강문제와 영적인 문제에 직접적으로 간섭해 주신다고 믿는다.
육신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와 가족관계, 민족 공동체문제 등등 모든 문제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해결해 주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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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려고 애를 쓴다 해도 613개의 율법 조항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지키면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613개의 율법 중에서 단 하나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계명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잘 지키라고 말씀하신 613개의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한다.
율법,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고, 죄를 범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게 된다.
이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처벌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는가?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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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말씀하시는 속죄제는 하나님께서 잘 지키라고 주신 613개의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림으로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함 받는 제사제도이다.
하나님은 속죄제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 자신의 처한 위치에 따라서 차등을 두고 있다.
① 대제사장을 비롯한 일반제사장의 경우
3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였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일반 제사장은 기름부음을 받아서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속받아서 제사장이 되어진다.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과 직업은 그 자녀에게 그대로 상속되어지는 제도를 통해서 제사장인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아서 아들은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되어진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인 아버지의 아들 중에 장자가 아버지의 대제사장직을 상속받게 되는데, 대제사장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이후에 대제사장직을 상속받게 되는 아들에게 관유를 부어서 대제사장으로 상속되어지도록 한다.
일반 제사장은 많지만, 대제사장은 단 한 사람이다.
대제사장 아론의 장자인 나답이 대제사장의 직임을 상속받아야 하지만,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잘못된 불로 분향을 드리다가 향로에서 불이 나와서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아론의 대제사장권은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상속받게 된다.
또 엘르아살의 장자가 아버지 엘르아살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의 직임을 상속받게 된다.
아버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되면 대제사장의 직임을 비워둘 수 없기 때문에 곧 바로 그의 장자에게 관유로 기름부어서 대제사장의 직임을 상속받게 된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단 한 사람이다.
물론 마카비 왕조이후 예수님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상속제에서 임명제, 임기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많았지만 보편적으로는 대제사장은 상속제였기 때문에 단 한 사람만이 대제사장이 존재하게 된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대리권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듯 대제사장도 한 명이다.
3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라고 단서를 붙인 대상은 대제사장을 지목하는 말씀이다.
대제사장이 613개의 율법 조항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제물을 드려서 속죄제 제사를 드림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함받도록 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함으로 범죄하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백성들을 대표해서 제사드리는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가장 무겁고 중한 제사를 드리게 하신다.
대제사장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서 자신이 직접 속죄제 제사를 드리면서 속죄, 사함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곧 흠 없는 수송아지로 제물을 삼아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다.
대제사장이 수송아지 머리에 직접 안수하면서 자신의 죄를 전가시킨 후에 직접 수송아지를 잡아서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서 휘장 앞에서 오른손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서 7번 뿌린다.
분향단 뿔들에게 바른다.
남아 있는 피는 성소를 나와서 번제단 밑에 쏟는다.
그런 후에 수송아지 기름과 콩팥은 다 뜯어내서 번제단에서 불로 태워서 화제로 드리게 된다.
수송아지 머리와 모든 고기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을 번제단에 있는 재를 버리는 정결한 곳으로 가서 다시 불로 태우게 된다.
속죄제 제사에는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일반적으로 번제단에서 제물을 화제로 제사드리는데 반하여 속죄제 제사에는 좀 다르다.
기름과 콩팥은 번제단에서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리지만, 다른 것들은 성막 밖으로 나가서 범제단의 재를 버리는 곳에서 화제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모든 제사장들의 대표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일반 제사장들까지도 이에 준한 제사방법으로 속죄제 재사를 드림으로 율법을 범한 죄를 사함받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고 계신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② 이스라엘의 온 회중 곧 이스라엘 민족이나 지파 공동체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수송아지를 제물로 삼아서 속죄제 제사를 드린다.
③ 이스라엘의 족장 곧 지도자가 범죄했을 경우에는 흠없는 숫염소로 속죄제 제사를 드린다.
④ 이스라엘 백성 곧 일반인이 범죄했을 경우에는 흠없는 암염소로 속죄제 제사를 드린다.
일반인이 속죄제사를 드릴 때에는 흠없는 암염소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간혹 흠없는 암양으로 제물을 삼아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
이 속죄제사에도 화목제처럼 비둘기나 곡식은 제물로 사용되어지지 않는다.
레위기5;6-7에 보면 속죄제를 드릴 때 속죄제 제물을 준비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는 비둘기로 속죄제 제물을 삼는 것처럼 우리 개역개정판에는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레5;6에 등장하는 속죄제는 잘못 해석된 것이다.
속죄제가 아니라 속건제이다.
개역성경뿐만 아니라 히브리 원문성경과 일반 다른 영어성경에서도 속건제로 번역이 되었다.
개역개정판에서 속죄제로 번역한 것은 큰 실수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둘기나 곡식은 화목제와 속죄제의 제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흠 없는 수송아지, 염소, 어린 암양으로 제물을 삼아서 속죄제 제사를 드린다.
“욤키푸르”라고 하는 대속죄일에 두 마리의 염소를 끌어다가 대제사장이 두 마리에 염소 중에서 제비를 뽑아서 “여호와께”라는 제물로 뽑힌 염소는 속죄제 제물로 속죄제 제사를 드린다.
“아사셀로”로 뽑힌 염소는 일반 제사장이 성전 동쪽 수산문을 통하여 유대광야 끝까지 끌고 가서 뾰쪽뾰쪽한 바위들이 있는 낭떠러지에 집어 던져서 죽이는 제물이 바로 염소이다.
아사셀 염소를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들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게 되는 것이 대속죄일에 행해지는 큰 행사 중에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제 제사를 드림으로서 속죄제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함으로 발생하게 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사함을 선포하신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하는 것은 예수님의 특성을 잘 설명하는 말씀이다.
본래 대속죄일에 세상 죄를 지고 무인지경의 광야로 가서 죽어야 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아사셀 염소이다.
유대인들은 염소는 수치스러운 짐승으로 여긴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하는 분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분이다.
그래서 수치스러운 짐승인 염소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을 상징하는 양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소개한다고 해서 대속죄일에 쓰여지는 아사셀 염소가 양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속죄제에는 수송아지, 숫염소, 암염소가 주로 사용되는 제물이다.
그렇지만 간혹 어린 암양으로도 속죄제 제물로 사용되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 제사를 드림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말씀, 613개의 계명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오직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율법, 계명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하든 항상 613개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흔적들로 가득하다.
탈릿 또는 겉옷에 달려있는 찌찟이라고 옷단술을 매다는 것도 613개의 율법을 기억하면서 지키려고 하는 흔적이다.
유대인들은 탈릿으로 온 몸을 감싸고 토라를 읽거나 하나님께 기도한다.
테필린이라는 성구함을 이마에서 팔에 매달고 기도하는 것도 613개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씨앗으로 가득 채워진 석류를 먹는 것도 613개의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마음의 고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613개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어떤 것이든 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613개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613개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라는 신앙고백과 같다.
L4 & B4
하나님의 백성,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613개의 율법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고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직분과 위치에 따라서 합당한 제물을 드리면서 속죄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
이처럼 이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율법을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런 부분이 예수님 시대에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 너무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려고 했던 그 마음가짐과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을 향하여, 곧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책망하면서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 외식하는 자들, 개들” 등등 말씀으로 책망하셨다고 해서 유대인들 자체가 지키려고 하는 613개의 율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결코 율법을 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지나치리만큼 철저하게 613개의 율법을 중시하고 지키려고 애쓰는 민족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으로 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궁극적으로는 놀라운 축복의 민족으로 세워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얼마나 신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얼마나 집중하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려고 하고 있는가?
우리들은 연약하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영혼의 양식, 생명의 양식이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진 말씀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정말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우리들의 영혼을 살리고, 생명의 양식이 되도록 하고 있는가?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으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들의 실제 삶에서 적용이 되어지는 말씀으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지는 말씀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적으로 하나하나 간섭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말씀으로 느끼고 고백하고 만지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으며 살고 있는가?
성경에 기록되어진 말씀으로만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믿으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말씀 그대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때로는 우리들은 ‘그 말씀은 성경말씀이니까 그렇지,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에는 그 말씀대로 살 수 없어. 오늘날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야. 그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66권의 모든 성경말씀에 한 구절이라도, 아니 단 한 단어라도 소홀하게 여길 수 있는 말씀은 없다.
단 한 단어라도, 단 한 글자라도, 단 한 구절이라도 그 말씀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의지하고 지키려고 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축복의 도구가 된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613개의 계명,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지키지 못할 때에는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고, 다시 613개의 율법을 지키려고 헌신한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하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신앙인들의 자세도 그러해야 한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들에게도 넘치게 부어주신다.
대전와우리교회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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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의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