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모퉁이를 쓱 돌때면 혹? 하는 기대감이 있다 돌담의 기와는 까맣고 반지르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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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돌담길로 지정되어 있는 옻골마을의 돌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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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골마을 앞쪽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회화나무 옆 농산물 간이집하장에서는 복숭아 포장이 한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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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달성의 측백나무 숲. 숲 앞에는 동쪽 환성산에서 흘러내리는 불로천이 금호강으로 흘러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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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종가의 보본당. 1753년에 세운 재실 건물로 한국전쟁 당시 임시학교로 활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판문 속에 보이는 문이 별묘. |
| | 일단정지 표지도 없는 좁은 철로를 가뿐히 넘자 연잎 수북한 못을 지난다. 듬성듬성 고개 내민 분홍 연꽃도 잠깐 눈에 들이고, 이어지는 무궁화 꽃길도 넉넉히 향기롭다. 곧, 초록의 작은 들판이 나타나고, 탈탈탈탈 주황색 경운기가 마주보다 작아진다. 굽실굽실 달아나는 길을 쫓아 조급히 달리다가도, 육박해오는 검고 푸른산의 기세에 주춤, 느려진다. 그 길가에 복숭아밭이 길고 넓게 이어지고 있다. 단 5분. 빵빵, 쌩쌩, 도시의 소리에서 벗어난 지 단 5분 만에 내 앞에 다가온 풍경이었다.
◇…옻골마을
그리고 미리 문을 열어 놓은 듯, 마을 입구의 장승처럼 선 두 그루의 느티나무를 본다. 350년 된 보호수다. 왼쪽으로는 느티나무들과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마을의 터가 높아 금호강 지류들이 훤히 보이므로 악기를 막으려 길게 동서방향으로 나무를 심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느티나무 숲 뒤에는 옴팍한 연못이 있고, 초록색 그늘 속에 노인들이 모여 앉아 있다. 버스가 천천히 들어서다 노인들 곁에 잠시 멈춰 선다. 아마도 인사를 하는 모양이다. 대구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의 대문 풍경이다.
몇 걸음 옮기면 정면에 거대한 두 그루의 나무가 다시 가로막고 섰다. 역시 350년이 넘는 보호수로 회화나무다. 이곳을 흔히 마을의 시작점으로 친다. 마을은 높은 산으로 동그르 둘러싸인 골짜기에 오막하게 들어서 있다. 주변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 된 이곳은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 선생이 1616년 이곳에 정착한 이래로 경주 최씨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있는 최씨 종가는 얼마 전 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 마을에는 스무 채 가량의 고가가 남아 있지만 얼핏 보아도 현대식으로 바뀐 모습들이 꽤 있다.
회화나무에서 가장 안쪽의 종가까지, 마을길은 돌담길이다. 2006년도에 아름다운 돌담길로 선정되었을 만큼 '길의 계보'에서 꽤 윗자리를 점하는 유명한 길이다. 개울 흐르는 소리를 따라 걸으면 먼저 정려각을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개울건너 숲속에 놓인 연자방아를 지나 본격적으로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이 작으니 조막조막 걷는 여유가 있고, 구불구불 흐르지 않으니 각진 모퉁이를 돌 때마다 혹 하는 기대감이 있다. 대부분 보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돌담의 기와가 까맣고 반지르르하다.
돌담길의 정면은 으레 돌담이 막아선다. 집들의 대문은 돌담 속에 묻혀 사람이라도 나오면 갑자기 담을 뚫고 나타난 듯 깜짝 놀라게 된다. 종가로 향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여길까, 하고 직각의 모퉁이를 쓱 돌면, 담이다. 그렇게 몇 번을 혹, 한 후에야 종가집 대문이 나타난다. 드디어.
◇…최씨 종가 백불고택
종가 집 문 앞에 서면 들어서기도 전에 오른쪽으로 시선이 간다. 뒷간이 문간채에 달려 외부에 있다. 문은 옛것인데 속은 신식이다. 사랑채의 남자들이 사용했던 뒷간이라 한다. 문이 활짝 열린 것이 '급하면 쓰시오'라 말하는 듯하다. 마당에 들어서면 '백불고택' 현판이 붙은 사랑마루 뒤로 산이 우뚝하다. 산꼭대기에 바위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거북을 닮았다는 생구바위다. 옻골 사람들은 이 거북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백불고택은 대암 선생이 입향한 후 그의 손자인 최경함이 1694년에 지은 것으로 정조 시대의 학자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호를 딴 것이다. 대구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다.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재실인 보본당, 큰 사당, 불천위를 모신 별묘, 대문채, 제수를 준비하는 포사, 헛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쓰임과 위계에 따라 동서, 남북, 높고 낮음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담이 쓰임을 나누고 중문이 동선을 잇는다. 문을 넘나들 때마다, 종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설 때 마다 그 위계를 몸이 느낀다.
특히 보본당은 보는 이를 사로잡는 놀라움이 있다. 보본당 앞에 서면 다섯 칸의 가장 중앙, 대청의 뒤 열린 판문 속에 별묘의 문이 들어선다. 더 나아가 대청에서 보면 별묘의 문 위로 뒷산의 생구바위가 바로 보인다. 재실 대청의 중앙-대암 선생의 불천위 묘-생구바위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재실 문 앞에서 대청너머 마당을 보면 배롱나무 두 그루가 중앙을 비우고 옆으로 살짝 비켜선 채 꽃 피어 액자 속 그림을 만들고 있다. 옛 사람들의 집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발견하면 저절로 헉, 숨이 막힌다. 참으로 치밀한 계획, 놀라운 발상이 아닌가. 담 너머 안채에서 아기 옹알이 소리 들린다. 아기는 이 놀라운 곳에서 자랄 것이다.
마을 입구 농산물 간이 집하장에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복숭아를 포장하고 계신다. "이것 좀 먹어." 복숭아 하나를 건네주신다.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 크다. "요즘은 황도, 오도로기가 나오는 때지. 오도로기? 오도로기는 경봉이라는 거야." 회화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어른주먹보다 큰 복숭아를 우걱우걱 먹는다. 복숭아 단물이 줄줄 흐르고, 회화나무 연노랑 꽃이 파르르 떨어져 내린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숲을 거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 번이나 지나친 곳인데, 왜 그리 믿었을까. 측백나무 숲은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도동 측백나무숲'은 아찔한 절벽 숲이다. 바위를 억세게 부여잡고, 바위틈을 파고 들어가 천천히 자란 측백나무들의 숲. 이곳은 숲을 보호하기 위해 2011년까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저 숲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절벽을 또르르 굴러가는 뭔가를 발견하고 눈이 동그래진다. 다람쥐다.
대구는 측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남방 한계 지역이라 한다. 지금 남아있는 측백나무는 약 100여 그루, 그 사이 소나무나 느티나무, 회화나무도 조금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백년 묵은 측백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었다 한다. 숲의 향은 얼마나 진동하였을까. 그래서 숲이 있는 산 이름도 향산이다. 조선 초 문신인 서거정은 대구 10경 중 제6경으로 이곳 측백수림을 꼽았을 만큼 숲은 압도적인 위용으로 서있다. 그러나 정신을 완전히 뺏겨서는 안 된다. 숲 바로 앞 도로에 차들이 씽씽 달린다.
))) 여행정보
지하철 방촌역 지나 유턴하면 옻골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철길 지나 계속 직진하면 된다. 옻골마을 가는 길 중간에 대구도동 측백나무 숲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두 군데 모두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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