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Also sprach Zarathustra
| | | ··· 프리드리히 니체(1844 ~ 1900.08.25,55세) | |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 는 잠언(箴言)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시인이자 음악가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기일(忌日)입니다. 니체는 문명의 비판자였습니다. 인류 문화가 권태를 이기기 위해 점점 더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타락할 것을 정확히 예견했습니다.
니체는 초인(超人) 사상으로도 유명한데, 초인은 어린이의 본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니체는 인류가 세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고 순종하는 낙타, 고독한 싸움꾼 사자의 과정을 넘어 창조하지만 유연하고 외롭지 않은 어린이의 단계에 이르기를 갈망했지요.
독일의 사상가, 철학자이자, 음악가,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20세기를 연 철학자이다. 1844년 독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조상은 폴란드 계라고 알려져 있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 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4세에 슐포르타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이 두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에 입문했다.
28세 때 최초의 저작『비극의 탄생』을 펴냈으며 이 저작에서 니체는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 을 제시한다. 1873년부터 1876년까지는 독일과 독일민족, 유럽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반시대적 고찰』을 집필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가 사망한 해인 1900년은 특별한 상징을 지닌다. 19세기를 마감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20세기를 새롭게 연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실제로 니체는 '사후, 나는 신화가 될 것이다'는 예언을 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 되었다.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프란츠 카프카 등 니체를 선망하는 일련의 작가들이 니체의 사상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카프카가 니체를 엄청나게 존경했다는 사실과 카프카의 작품 세계는 결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매듭이다. 또한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등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니체를 실존철학의 시원(始原)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포스트 구조주의자들, 그러니까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 역시 니체를 위대한 사상가로 평하며 저마다 계승 의식을 발현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니체에 대한 열광은 대단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라는 박상륭 작가의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니체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으로는 고병권이 있다.
니체의 작품 세계에서 대표작인『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위치는 각별하다. 이 작품은 그의 집필 활동의 정점에 씌여진 것으로, 그의 활동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언 형식의 아포리즘(aphorism)이 니체 저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아포리즘의 절정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oke Zarathustra)> 라는 고전은 ‘신은 죽었다.’ 로 유명한 니체의 역작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의 이상적 인간상인 초인(超人)이라는 경지에 오른 니체의 분신이요, 세계를 향해 인간을 깨우치려 하는 방랑자이다. 니체는 모든 이성과 합리성 뒤에 숨은 인간 내면의 교활함과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여겨 신에 의존하면서 올바른 가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을 꼬집는다.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신처럼 되길 원하는 인간도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앙을 쏟는 인간도 아닌 초인을 진정한 인간상으로 꼽았다. 초인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슈퍼맨'의 개념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엇인가 극복되어야 하는 인간 또는 보통 인간과 극복해야 할 것 사이의 중계자를 말하는 것 같다. 초인에 대한 니체의 표현을 옮겨 보자.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초인이다. 인간이 아니라 초인이 나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목표다. 가장 가까운 이웃도, 가장 가난한 자도, 가장 고통받는 자도, 가장 착한 자도 나의 목표는 아니다. 아, 형제들이여, 내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다. 그리고 또한 그대들에게도 나로 하여금 사랑하고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많은 면이 있다.
여러 함축적 표현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인간은 역시 건너가는 존재, 몰락하는 존재이며 그러면서 완벽해지려는 것이 아닌 몰락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
니체는 인간이 인식을 통해 눈에 보이거나 드러나 있는 것을 멀리해야 하며, 그러한 인식을 통해 의욕 된 바를 먼저 행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일깨워 주고 있다.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이 세계는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니체는 세계에 대해 몰이해와 종교적이면서 지배적인 가치관에 의해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창조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그 끝이 몰락의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계속해서 극복해 가야만 하는 그러면서 동시에 불완전한 미래를 더듬어 가는 그런 인간상을 추종한다.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비이성적인 것 속에서 그대들이 태어나야 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선악은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의미가 변한다. 과거의 죄가 오늘날 계속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묵은 가치관을 보다 진보해야 할 미래에 짜 맞추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그릇된 방법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지배의 수단으로 숭배의 수단으로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현실과 동떨어진 세속적이고 낡아빠진 이념을 마치 창조적인 것처럼 퍼뜨리는 행위는 잘못되었다.
책 끝에 니체는 이렇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극복하라. 그대들,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자잘한 덕을, 가소로운 재치를, 모래알 같은 조바심을, 개미떼 같은 잡동사니를, 가련한 자기만족을, 최대 다수의 행복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온통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니체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함축적이면서 감성적 표현으로 내재 돼 있다. 그가 말하려는 것, 그가 일깨우려는 사상이 무엇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거울 들여다보듯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으로 느끼기엔 조금 버겁고, 해설이나 검색을 통해서 의미를 읽어 보려 해도 역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아마 니체처럼 느끼고 니체처럼 생각하고 그것이 철학책을 읽는 즐거움은 아니다. 칸트가 얘기하길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배우라' 했던가. 앵무새처럼 읽은 내용을 마치 내가 다 아는 내용인 듯 주절거리는 것도 헛된 일이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텍스트 모양만 쳐다보는 것도 생산적인 일은 아니다. 아직은 그냥 읽으며 천천히 느끼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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