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이 넘었지?
삼십년이 뭐야 삼십칠 년이 지났어! 어젯밤에 곰곰 계산해 봤거든“
여고시절 절친했던 친구를 만났다. 나는 남편 직장을 따라 십여 년 간 지방을 전전하다가 일원동에서 이십여 년 넘게 살았고 친구는 결혼 후 내내 분당에서 살아왔는데, 오랜 시간 지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십이 넘어 이제서 만나게 된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아. 너야 너. 어떻게 그렇게 꼭꼭 숨어 살았니? 널 찾을까 해서 지난번에 동창회에도 일부러 나가봤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동탄면 석우리 촌구석이 고향이면서 수원에서 자취를 했고 그녀는 그 당시에는 꽤 부잣집에 속하는 매교동 목욕탕집 둘째딸이었다. 내가 주말이면 석우리 집에 들러 가져 온 배추김치 하나로 세끼 밥을 대충 때우는 동안 그녀는 풍성한 식탁에서 밥투정을 하며 지냈다.
연탄불을 꺼트리는 날이면 나는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굶었다. 학교 매점에 들러 빵이나 라면이라도 사 먹으면 될 일이었으나 나는 그 정도의 주변머리도 없었다. 물론 용돈이 두둑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도 있기는 했다. 미련하게 그냥 굶는 것으로 하루를 버텨냈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와 힘들여 연탄불을 피우고서야 밥을 지어 먹었다. 서러움이 섞인 밥이었다.
바로 그런 날이었다. 본래 말이 적던 나는 내 자질구레한 일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내 사정을 빤히 안다는 듯 제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 설탕을 훌훌 뿌리고 계란 후라이를 척하니 올려 맛있는 냄새가 모락모락 오르는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아아!! 그 달콤함! 고소함!
혀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깊게 새겨진 그 기억을 어찌 잊으랴. 지금도 나는 식빵에 계란 후라이를 올려놓은 샌드위치를 가장 좋아한다. 어디에서든 빵집을 지나칠 때면 그녀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마음이 헛헛한 날은 식빵을 사서 친구가 해주었던 방식대로 먹고는 했다. 그녀를 잊은 적이 있을까. 오십이 넘을 즈음 내가 그날의 따스함과 달콤함 그대로를 시로 표출해낸 것 역시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런 친구가 있으니 따스한 시가 쓰였다고 문우들은 부러워했다.
친구 복례
친구 복례는 빵집에 산다
우리 동네 수수한 빵집에도 살고
번쩍이는 강남역 빵집에도 산다
앵두꽃 피는 시골 빵집에도 산다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연탄불이 꺼져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자취생을
번번이 제 집으로 끌고 가
계란 한 개 올려 식빵 노릇하게 구워주었다
그 맛은 혀에만 스미는 것은 아니어서
가슴에도 젖어 들어서
빵집에 빵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녀도 있어서
잊은 듯 멀어진 그녀가 떠오른 날은
빵집으로 간다
가슴이 빈 집 같은 날은
그녀에게 간다
친구 복례는 빵집에 산다
“너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왜 그렇게 설레는지 몰라. 사촌언니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니까.
밥 먹을 집을 고르고 차 마실 곳을 찾으러 말이야.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유별나게 그러느냐고 사촌언니가 궁금해 하더라“
그녀가 시간을 쪼개 발품을 판만큼 광교산 기슭의 밥집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정갈하면서도 구수한 반찬들로 가득했다. 산 아랫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찻집 창가에 앉아 서너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계속 만나 왔던 것 같아 ”
자취를 하며 독립적으로 학교에 다닌 내가 부모 밑에서 편하게 지낸 그녀보다 한 수 어른이라 여겼는데 그 시절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 일은 네 스스로가 하는 거야 엄마도 언니도 아무도 네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거란다 네가 결정해야 해”
일찍이 그렇게 깨달은 그녀이니만큼 가난한 남자를 만났지만 참으로 열심히 살아 경제적인 여유를 얻었고. 아들 딸 둘 다 미국유학을 보냈고 성공적으로 결혼까지 시켰단다. 도자기공예 작가로 활동해 왔단다. 지나치게 열정적인 작품 활동 탓으로 그만 허리에 문제가 생겼고 며칠 뒤면 허리수술을 한단다. 허리가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외롭고 막막한 시간 속에서 깨달은 바가 많단다. 이제 자신을 사랑하며 천천히 살아가려 한단다. 자랑스럽던 푸른 잎새 무심히 내려놓고 당당하면서 의연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가 있는 무채색 풍경이 그렇게 좋단다. 겨울나무처럼 살아가고 싶어 하는 친구를 엿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도 내게 물었다. 무엇으로 살고 싶은가.
나는 시집과 수필집을 선물했다. 잘났든 못났든 그 안에 과거와 지금의 내가 그대로 들어있지 않은가. 다음날 그녀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네 수필집에 푹 빠져있단다. 편안하고 포근하고 따뜻해 강아지풀로 하나하나 터치하듯 아기자기하게 쓴 글이야. 네 글에서 행복을 느껴” 행복을 느낀다는 그 말 얼마나 감사한가. 얼른 나도 답장을 보냈다. “친구는 역시 내편. 내 작고 소박한 세상을 칭찬해주는구나 고마워!”
그녀를 만나는 동안 그 시절 나를 만난다. 선숙, 용옥, 무철, 복례와 그리고 나 다섯 명이 쉬는 시간에 학교 뒤편에서 둥글게 모여 앉아 다정하게 찍은 사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앳되고 순진한 웃음을 짓고 있는 우리들을 만난다. 향나무로 가득했던 교정과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난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숯칠을 하고 아프리카 원주민 같은 모습으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던, 꽤 호기있게 소리를 높이던 체육대회 날이 어제였던 것처럼 다가온다.
그녀와 함께 돌아온 여고시절, 한동안 열여덟 살로 살아갈 것 같다.
첫댓글 어제 입춘
오늘 정월 초하루 새벽에 이 글 읽고 따스한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감사하고 늘 건강하시길......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3ㅇ년만에만났으니
얼마나행복할까
찬미야축하혀
그리운친구복례가보고파
시을그리도멋지게써내려가더니만
60이되서
숨어사는친구복례를만났다니
신인님께서얼마나좋아했을꼬
그런데나는선숙ㆍ무철은기억이나는데요
모처럼댓글쓰려니비밀번호가삭제가되어간신히복구했네요
친구야미안
이제부터열심히댓글올릴께
ㅋ
열심히?
좋지 좋아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저절로 느낌이 와서 댓글을 쓰고 싶을 때 그 때 올리면 돼 친구야!
고맙다 마음 써 줘서!!!
그리워 그리워 눈물나게 그리워 하던 복례 만났구나
궁금했는데
누구나 그런친구 있는거 아닌데 찾아서 참 좋겠다!
축하해~~~
그래그래
니 덕분이잖아
니가 중간에서 내 마음을 귀담아 들었다가 다리를 놓은 덕이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