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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이방사람들어게도 환영받는 성령의 사람 - YouTube
창 45:16-18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오늘은 이방 사람에게도 환영받는 성령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요셉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요셉을 만나자마자 애굽왕 바로는 요셉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죠.
바로가 요셉을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창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에는 영에 감동된 사람을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새 번역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번역을 하였고요.
가장 잘 번역된 성경으로 알려진 킹 제임스번역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떻게 애굽왕이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당시의 애굽왕은 셈 계열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었던 왕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기용하는 일에 별 반대 없이 하게 되었을 것이고요.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많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공동번역의 번역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번역이 가장 잘 번역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우리는 성령의 사람으로 이해를 하면 되고요.
그래서 애굽왕 바로는 요셉을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해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시작 때 읽은 말씀은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왕궁에 들렸을 때 일어난 반응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왕궁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창 45: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을 들은 애굽왕과 신하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 말합니까? 바로와 그 신하들이 기뻐하고 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왕만 기뻐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기뻐하였다고요? 신하들이
지금 요셉은 애굽의 어떤 자리에 있다고 합니까? 총리의 자리 우리나라의 신분으로 하자면 국무총리이죠.
그러나 오늘날의 국무 총리와 3000년 전의 총리와는 그 권력이 많이 다를까요?
전혀 다르죠?
애굽왕은 요셉을 총리로 기용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창 41: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어떻게 할 것이라 합니까? 복종하리니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뭐뿐이라 합니까? 왕좌뿐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의 그 다음 행동이 눈에 뜁니다.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왕은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서 요셉의 손에 끼우고 라는 말씀을 우리는 읽습니다.
인장이 무엇입니까? 왕의 도장이죠? 우리나라 옛날로 말하면 옥쇄입니다.
그것이 어떨 때 사용하는 것입니까? 왕의 최종 결재서류에 찍으면 바로 그 명령은 이행되게 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그 옥쇄를 반지로 만들어서 왕의 손가락에 끼고 있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보관 방법입니까?
옛날에는 그 옥쇄를 훔쳐서 엉뚱하게 나쁜 짓을 하는 그런 예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염려해서인지는 몰라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인장 반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성경역사를 살펴보면 요셉처럼 인장 반지를 받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혹 누군지 아시는 분?
에스더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성경보겠습니다.
에 8: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모르드개와 관련된 예기를 할 시간이 없고요.
이곳에 나오는 왕은 어느 나라 왕입니까? 페르샤 왕이죠.
내용을 보면 조서를 기록하고 반지로 도장을 찍어서 변개하지 못하는 왕의 명령으로 만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인장 반지가 그런 반지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애굽왕은 그 반지를 누구에게 주었다고 합니까? 요셉에게
이제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적으로는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있지만 그의 신분이 조금 전까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종 출신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나이는 얼마나 되었고요. 성경이 얼마라고 합디까?
창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 나이가 얼마라고요? 삼십 세라
우리 정서로 볼 때 국무총리는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이 합디까?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합디까?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이 하죠? 이유라도 있습니까?
국무총리면 나라의 정치인들중에도 어른이라는 말이 맞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요셉은 신분도 종 출신의 죄수였고요. 나이도 아직 어리고 그렇습니까?
보통 정치에 입문하는 나이가 30대 입니까? 삼십전에 입문하시는 분들이 혹 있습니다만 보통 보면 30 이상 되어서 정치에 나섭니다.
그 만큼 경륜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것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그 모든 것에 아마도 낙제 점수 일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직권으로 보디발의 감방에 있던 죄수가 하루 아침에 애굽나라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나라 정치인들이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꿈 해석을 하고 해결 방안을 말할 때 바로와 그 신하들이 좋게 여긴지라는 말씀이 41장 3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 기록이 다입니다.
총리로 임명할 때 신하들의 반응은 일절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45장의 기록입니다.
45장11절에 보면 아직 흉년이 다섯해가 남았다고 요셉이 형들에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요셉이 총리로 몇 년 있었는지 계산이 나오죠?
총리로 몇 년 지났습니까? 풍년 7년 흉년 2년 그러니 합 9년입니다.
9년이 지난 어느날 요셉의 형들이 가나안에서 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왕궁의 반응을 우리는 16절에서 읽었습니다.
창 45: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였다.
요셉이 애굽에서 9년동안 총리로 있었던 그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9년 정도 정치를 했으면 요셉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들어 났을까요?
요셉의 사람 됨됨이가 어떻다는 것이 들어 났겠습니까?
왕과 신하들이 기뻐하였다는 반응은 요셉이 잘 하였다는 것입니까? 잘못하였다는 것입니까?
저는 장유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우리 성도님들 마음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족하고 연약한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살았기에 그 가족이 오는 것을 기뻐하였다는 반응을 얻을 수가 있었을까?
지난번에 집사람과 김경화 집사님 그리고 장형제 이렇게 하동에 가신일이 있습니다.
그곳에 집사람이 가까이 하였던 건강이 좋지 않으신 젊은 여자분이 있습니다.
그전부터 집사람 가까이 살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을 듣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까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힘 드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그랬답니다.
이번에 갔더니만 또 다시 그런 이야기를 하드랍니다.
혼자 있는데가 아닌 김집사님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애굽나라 왕과 신하들은 요셉의 형제들의 소식을 듣고 환영을 하였는데 집사람과 관계되는 사람이 이사를 한다면 그리고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된다면 우리 성도님들 반응을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데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습니다만 그 나이많은 아가씨가 엄마 집이 부산에 있어서 엄마 집 가까운 곳에 살기를 희망하여서 우리와 상관없이 올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약 오시면 저희 들과 상관없이 반갑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살았기 때문에 정적들도 있었을텐데 다 좋아 하였을까?
그게 진정한 성도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성도라면 그 정도는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잠깐만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른 말로는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 들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계 14: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4장 1절이 말하는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는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 하늘에 갈 사람들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들 특성을 4절은 말을 합니다. 그 특성이 무엇이라 합니까?
첫 번째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도 이 말씀은 육신 적인 여자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다음 말씀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누구를 따라 가는 자라고 합니까? 어린양을 따라 가는자들,
어린양을 따라 어디로 가는자들이라고 하죠? 어리도 인도하든지. 라는 말씀에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어린양과 성령님은 같은 분이십니까?
물론 삼위일체로 이해하면 개체는 다른 분이시지만 그분들의 목적이나 하시는 일들을 보면 개체는 다르시지만 같은 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내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린양의 인도는 성령의 인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았습니까?
요셉은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는 환경을 만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갔다는 말씀입니다.
종으로 보내면 종으로서 충실하였고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에서도 충실하였고요.
총리가 되어서는 대충 살았을까요?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조 222 “요셉의 성품은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한결같이 시험을 견디어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나 감방에 있을 때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요셉에 대하여 여러 시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증언의 말씀과 같은 그런 모습을 우리 성도님들은 보셨습니까?
정말 그런 것 같습니까?
그게 누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까?
요셉은 한 때 예수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아서 신실하게 감당하였습니다.
마지막 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이 있습디까?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2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드러내시고자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당신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는 바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촉진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주님의 이름을 믿노라고 하는 자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다면 온 세상에는 얼마나 속히 복음의 씨로 뿌려질 것인가! 최후의 큰 수확은 속히 익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곡식을 거두시려고 강림하실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이 당신의 백성에게 완전히 재현될 때에 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품성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랑과 겸손이 그분의 품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분의 그 특징이 십자가에서 너무나 잘 들어 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 십자가에서 당신의 호홉이 힘들어갈 때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뭐라고들 하였습니까? 한번 볼까요?
막 15:29-31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너 그렇게 능력을 행하였는데 지금 그 능력을 발휘하여 십자가 아래로 내려 와보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려 오면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요?
영원한 멸망으로 바로 떨어지게 되죠? 누가 그 같은 것을 원할까요? 사탄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사랑의 줄로 십자가에 꽁꽁 묶어 두셨기에 십자가에서 내려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눅 23:.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들어낼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보여주신 견본아닙니까?
우릴 비난하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괜히 미운살이 박힌 듯이 대하는 이들을 위하여서 무엇을 하자고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자.
우리 성도님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전부 저의 잘못된 모습이었음을 성경은 저에게 보여 줍니다. 제가 그런 모습을 보여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나 우리 성도님들이나 다 우리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들어나길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그래야 주님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잘 안되지만 우리 이렇게 살아보기 위하여 다시 연습 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예수님의 판박이로 살다가 당신의 것을 거두러 오실 때 주님 닮은 사람들로 우리 다 선택함을 받아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다 들어가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