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5년 8월 16일..
스님은 우연히 보도를 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배웠던 그 역사적 사건..
그 사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이준열사'님의 사망원인이
'종기'에 의한 사망이라는 황당한 조작이 이루어졌고
(실제로는 항거하기 위한 할복자살)
성중님으로부터 이상설, 이위종, 이준 세 분 의사(義士)님들이
현재 저승에서 큰고초를 겪고 계시는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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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래 첨부된 기사를 읽어보십시오.
여기보면 1956년 이준열사의 사망에 대해
종기가 원인이고 어쩌고 해서 결론을 내렸다는데 황당합니다.
하지만 그 기사 내용과 다르게 성중님께서는
-이상설선생이 억울함을 항거하시기 위해 '이준-이위종-이상설' 순으로 할복 제안
-세 분 모두 죽음 각오
-7월 12일 이준열사 대로변에서 할복
-주변인들이 추가로 두 분 의사님들의 거사를 못하게 막음
-부상을 입으신 이준열사를 근처로 옮김(이 때 혼란으로 세 분 떨어지심)
-이준열사는 7월 12일 혼자 계실 때 사망(사망 원인은 할복)
-이준열사 시신에 시반이 바로 나타나기 시작(종기 부분이 강하게 두드러짐)
-사망하신 이준열사를 호텔로 옮김
-7월 13일 일본인 타카이시 기자가 악성종기라 보도(시신 본적 없고 종기 풍문 들음)
-7월 14일 사망 공식발표
-이위종선생은 ' 만국평화회의보' 인터뷰 하신적 없음(기자들이 자의로 써준거)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지속적인 조작을 했다고 하시네요.
이런 사유로 할복 자살하신 50여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종기 사망 어쩌고로 결론..
그러나 성중님께서는 당시 대한매일신보ㆍ황성신문은 정확한 보도를 했다고 하십니다.
정확한 정보, 정확한 사실보도.
하늘에서도 대한매일신보ㆍ황성신문 보도된 대로 처리가 되었으니
이준열사님은 분명히 할복 자살이 맞습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의사)
사실관계는 그렇고...
가장 심각한 것은 이 3의사님들이 그 자살 건으로 사망 후 저승에서 갇히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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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어쩌다 이사건을 알게 되었냐하면요..
2025년 8.15광복절을 맞아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과 서훈 승격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생을 기리고 있는 TV보도내용...
그것을 보고 가볍게 성중님께 여주었습니다.
-이 분이 잘 사셨나요?
(잘 사셨다는 것은 공동체, 우리 민족을 위한 삶을 의미)
-잘 살았다...
-저 기념관(보재 이상설 기념관)에 선생의 혼이 오셨나요?
-없다..
(충격)
-잘 사셨다면서요...
-못 왔다.. 잘 사신거는 맞지만 저승에서 갇혀 있다.. 못온다..
-갇히신 연유가 무엇인가요??
-방법론에서 걸린 일이 있다..
이렇게 해서 스님은 충격을 받고 추적에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
(추가 질문)
-당시 세 분(이상설 위위종 이준)이 계시는데 다른분들은 어떠신가요?
-전부 갇혔다. 못온다.
(충격)
저승에서 갇히신 원인 추적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할복 자살건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님이라도 그상황에선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죠.
그런데...이상설 선생의 삶의 년도를 추적하니..
헤이그에서 분함을 이기지 못해 이준열사가 할복자살하신 것이 원인으로 나왔습니다.
이당시 세 분은 절박했고요.
이상설선생이 순국하자는 안을 먼저 꺼내셨다고 합니다.
셋 다 할복자살...
순서는 '이준-이위종-이상설' 순으로...
순서가 정해진건 이준선생이 가장 강하게 주장하셨기 때문이랍니다.
결의는 세 분이 모두 동일.
이렇게 결정하고 거사당일인 7월 12일...실행에 옮겼는데...
이준열사 할복 시도 후에 주변 한국인, 네덜란드인, 미국인, 사할린아이누인 등
여러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사할린 원주민도 자신들을 위한 활동이 있었다는게 충격입니다.
역사에서는 잘 모르는 내용인데...)
이 때 할복하지 못한 것을 두고 이상설선생은 평생 치욕으로 여기셨다고 해요.
지금 저승에서도 같은 입장.
그리고 이후는 위에 알려드린대로 진행 되었고요.
사후에 그 숭고한 뜻 마저 1956년 왜곡되어 결론이 났습니다.
이건 당연히 바로잡아야죠.
당시 사건은 당연히 당시에 가장 잘 아는 것이고..
우리나라 신문에서 분명히 보도한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일본인이 쓴 기사를 신뢰한단 말입니까.
7월이면 사후 시반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중 하나인데
어찌 그런것 하나 고려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이위종선생의 기사가 고려사항으로 들어갈수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어찌 진짜 인터뷰만 신문에 실리나요.
성중님께서는 이위종선생은 인터뷰를 하신 적이 없다하셨습니다.
언론의 생리를 안다면 이건 바로 이해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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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 분은 저승에서
01.이준 선생은 자살자 특별감옥
02.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저승사자님들 감옥
이 두군데에 계시답니다.
이건 하늘도 안타깝게 여기시고 계시는데요.
하늘의 법이라 어쩔수 없으시답니다.
다만 일반 죄인 사망자들하고는 다르다고 하세요.
감옥 기본 고초 겪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많은 특례가 있답니다.
이분들은 사실 천신으로 가시게 되어 있데요.
하지만 헤이그에서 자살을 기획하고 실행한거.
이게 발목을 잡았답니다.
당시 세 분의 의사들은 절박했지만
하늘의 판단은 다르시다고 합니다.
하늘은 자살을 가장 큰 죄로 인식하시고요.
타인을 살상하는것도 거의 동급으로 인식하시는데
예외적 조항이 있지만 그 기준이 매우 엄격하데요.
당시 세 분은 할복 자살을 선택했지만
자살을 행하기는 최후 수단이고
그 앞단계가 3번 정도 다른 방법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사후 자살의 벌은 피할수 없었다는거.
자살과 기획 모두 처벌.
이준 선생은 자살자로 처벌 되었고,
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그것을 기획한 이유로 저승으로 보내지 않고 중간에서 구금.
이 중간 구금만으로도 하늘이 크게 배려하신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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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격적인 사실..우리가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역사적 결론이야 또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거고요...
성중님이 알려주신 내용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스님 거짓말 안합니다.
뭐하러하겠어요.
그리고 스님 일본 싫어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배울점이 많은거 분명해요.
일제시대 일본의 거리들은 지금 우리나라 서울 최첨단 거리와 맞먹습니다.
그당시 일본의 실제 사진 보시면 여러분들은 기절하십니다.
당시 전투기와 전함, 심지어 항공모함까지 만들었던 무시무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배울점이 있죠.
1900년 이전 일본 지도는 지금 최첨단 대한민국 지도와 동일합니다.
등고선까지 다 그려져 있어요.
그걸 위해 수십년을 우리나라에 와서 발로 뛰어 거리를 측정했답니다.
물론 의도는 불손하죠.
이상세 지도로 우리 우리 의병들 전멸.
의도가 불손한 건 맞지만 현대식 지도를 그 당시 만들었다는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할 일.
'일본'이라는 국호 역시 그 뿌리는 고구려의 '졸본'에서 온 것이고요.
일본 천황들이 무덤은 우리나라와 양식이 같습니다.
물론 뿌리도 같고요.
이런 사실을 알고 생각을 하고 있는 스님이
일본이 불리할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역사적 사실관계는 반드시 올바르게 바로잡아져야 하고요.
우리가 할 일은 종교적인 것입니다.
세 분의 저승에서의 처분...
저승의 법은 매우 엄격합니다.
어쩔 수 없고요..
우리가 '마당재'에서 부탁드릴 수 있답니다..
2026년 1월 1일(음력 11월 13일) 마당재에서...
최우선으로 세 분을 하늘에 구제 요청을 해야 합니다..
스님이 진즉 알았더라면...
사실 세 분 모두 스님을 알고 계시답니다...
기다리셨데요.. ㅡㅡ...
이것도 특전인데... 우리나라의 상황 돌아가는 것을 다 인지...
중생이 이리 어리석습니다...
오늘(8.16)도 스님이 그 보도를 보고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모르고 넘어 갔을 일입니다..
이준선생은 1907년 7월 12일 순국 제 사망(아래는 공식기록)..
(이준(李儁, 1859년 음력 12월 18일 조선국 함경도 북청 출생 ~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별세.) )
이상설선생은(李相卨, 1870년 음력 12월 7일 ~ 1917년 4월 1일)
이위종선생은(1884년 1월 9일 한성부(現 서울특별시)출생~1924년 이후 (향년 40세 이상) 사망.사망지 미상)
(성중님께서 실제는 1923년 사망이라 하십니다)
사망하신지 100년이 넘었는데...
이제사..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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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건을 겪으며 다시 한 번 자살이나 타인의 생명을 살상하게 하는거..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게 되네요..
충무공... 보살께서 겪으신 백의종군 사건은...
누구나 자살각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하셨어요.
왜 빨리 안데려가냐고 하늘을 원망하신 일은 있어도...
자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절대로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이나..
타인을 살상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면 안됩니다..
예외 없이 강력한 처벌...
다만 축생이나 해충 살상은 다른 문제로 보십니다...
우리들이 고민하는 것과는 다른 기준이 있으세요.
그건 다음에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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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열사 할복자살의 진상은?- 수정 2019-10-19 11:20
- 등록 2007-06-23 09:02
'어제 동경전보를 접한 즉 이준씨가 분기를 이기지 못해 자결하여 만국사신 앞에 열혈(熱血)을 뿌려 만국을 경동하였다더라'(대한매일신보 1908년 7월18일 호외) '이준씨는 분기를 이기지못하여 자기의 복부를 할부(割剖)하였다는 전보가 동우회중(同友會中)으로 도래하였다는 설이 유(有)하더라'(황성신문 1907년 7월19일)
헤이그 특사 이준은 1907년 7월15일 네덜란드 현지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처음 보도한 일본의 진서신문(鎭西新聞)은 '이준은 안면에 종기가 나와서 절개했는데 절개한 곳에 단독(丹毒)이 침입하여 이틀 전에 사망하고 어제 장의를 집행…'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이준이 자결해 만국 사신 앞에서 피를 뿌렸다고 보도했으며 황성신문은 이준이 복부를 갈라 자살했다고 전했다.
대한매일신보ㆍ황성신문이나 진서신문 중 한 쪽은 오보를 낸 셈이다. 양쪽의 보도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이었을까?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2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헤이그 특사가 국외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통해 이준의 사인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자세하게 분석했다. 사실 이준의 사인은 이미 50년 전에 결론이 났다. 1956년 이준의 사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자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1개월 간에 결쳐 각종 문헌자료의 기록과 각계인사의 증언을 검토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복자살은 민족의 공분을 이끌어내기 위한 "허구"였다. 조사결과 당시 대한매일신보 주필이었던 양기탁이 단재 신채호, 배델과 협의해 이준의 분사를 할복자살로 만들어 신문에 쓰게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이위종이 만국평화회의보(the Courrier de la Conference de la paix)와 가진 인터뷰에도 할복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이준 선생은 뺨에 종기를 앓기는 하였으나 매우 건강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날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저녁 때 의식을 되찾아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 나라를 구해주소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하려 합니다'하면서 가슴을 쥐어뜯다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준의 할복자살 소식은 이미 조선 전토로 번진 뒤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 진영의 대표적인 독립군가인 '용진가'의 가사에는 '배를 갈라 만국회에 피를 뿌리고 육혈포로 만군 중에 원수 쏴 죽인 이준공과 안중근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같이 원수 쳐보세'라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또 민족주의 진영의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장 많이 이용한 '동국사략(東國史略)'과 '초등대한역사(初等大韓歷史)'는 '충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여 만국 사신 앞에 피를 뿌렸다'고 서술했다. 이후에도 이준의 순국은 할복자살로 전해졌다. 최근에도 여당의 한 유력인사가 '이준열사가 배를 갈라…'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이 연구원은 "국사편찬위원회가 1956년과 1962년 이준의 죽음을 분사(憤死)로 정리한 이상 사인에 대한 논란은 종식할 때"라면서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이 애국정신의 상징적 교재가 됐으며 국외 한인사회 공동의 정신적 흐름을 형성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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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님께는
-이상설선생이 억울함을 항거하시기 위해 '이준-이위종-이상설' 순으로 할복 제안
-세 분 모두 죽음 각오
-7월 12일 이준열사 대로변에서 할복
-주변인들이 추가로 거사를 못하게 막음
-부상을 입으신 이준열사를 근처로 옮김(이 때 혼란으로 세 분 떨어지심)
-이준열사는 7월 12일 혼자 계실 때 사망(사망 원인은 할복)
-이준열사 시신에 시반이 바로나타나기 시작(종기 부분이 두드러짐)
-사망하신 이준열사를 호텔로 옮김
-7월 13일 일본인 타카이시 기자가 악성종기라 보도(시신 안 봄)
-7월 14일 사망 공식발표
-이위종선생은 ' 만국평화회의보' 인터뷰 하신적 없음(기자들이 자의로 써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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