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38〉마음 없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
5근의 작용 뒤 움직이는 마음 다스려야
마음, 소리로부터 분리돼 있어
모든 번뇌 자신 마음에서 비롯
육조혜능(638~713) 스님은 광동성 소관의 남화사에 머물기 이전, 15년간 은둔생활을 하며 보림(保任)을 하였다. 이후 혜능은 산에서 내려와 광동성 광주 법성사(현 광효사)에 들어가니,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마침 도량에서 학인 스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와 깃발이 움직였다.
한 학인이 뜰에 있다가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옆에 있던 학인이 말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
두 학인의 논쟁이 끝나지 않자,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일화는 <육조단경>은 물론 ‘비풍비번(非風非幡)’이라는 공안으로 <무문관>에 실려 있다. 혜능의 말대로 깃발이 움직인 것은 바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다. 바로 깃발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보고 듣고 인식한 그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보는 것에 마음이 기울어 있기 때문에 깃발이 보이고, 소리에 마음을 두기 때문에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깃발이 움직이든 바람 소리가 들리든, 거기에 마음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법이다.
몇 년전 미얀마에서 1년 넘게 머문 적이 있다. 미얀마 스님들은 매일 오전 7시 무렵, 발우를 들고 마을로 탁발을 나간다. 그 사찰에 머무는 외국인 스님들도 모두 탁발 행렬에 참가하게 되어 있다. 나는 탁발하는 승려로서가 아니라 탁발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따라갔다.
50여명의 스님들께서 사찰 주변의 마을을 1시간 정도 탁발하는 동안, 몇 장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의 중심에는 그곳에서 출가한 한국 스님이 찍히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였다. 인도네시아 비구 스님 한분이 내게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그 스님을 처음 본데다가 사진을 찍은 적이 없기 때문에 사진이 없다고 말했다. 며칠 후 다시 사진을 달라고 해서 사진기를 보았더니, 한국 스님 바로 뒤에 인도네시아 스님이 서 있었다. 바로 그제서야 그 스님을 인식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비풍비번 공안을 뼈저리게 마음에 도장 찍었다. 눈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아니하고, 귀가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초기불교 경전에는 ‘5근(안이비설신)의 작용에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눈(안근)으로 보는 것이나 귀로 듣는 등의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감각기관이 문제인가? 바로 5근의 작용 뒤에 움직이는 그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뜻이다.
해탈열반을 얻기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수행에 임하면 모든 감각기관이 멈추게 되어 있다. 즉 마음이 외부경계에 동요하지 않고 깊은 선정에 든다면,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태국의 아짠차(1918∼1991) 선사가 정진할 때, 경험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좌선에 들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을에서 소음이 들려왔지만, 마음을 조절하면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마음을 한 점에 집중시켜 소리 쪽으로 돌리면 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다가오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을 보았고, 그 마음은 소리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번뇌가 생겼다고 외부 경계를 탓해야겠는가? 모든 번뇌는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됨이요,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진리를 내 가슴 깊숙이 안착시키는 데는 참으로 무수한 세월이 걸린 것 같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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