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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그리스인 조르바’
허 열 웅
우리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평생 영혼을 쥐고 흔든다. 주인공의 삶은 독자들에게 깊은 골을 남겨 나이가 들어도 오래토록 잊히지 않는다. 그 동안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내 삶을 흔든 책 몇 권을 고르라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첫 번째로 선택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살아가는 조르바의 삶이 나를 회한과 반성의 절벽에 내던져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도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자네 뭐하는가?’ 그의 인생철학은 살아서 펄펄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은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기진맥진할 때그리스인 조르바를 ,비관적인 성격이라면 ‘로빈손 크루소’를 읽어라 영국의 책벌레들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월1일 서울 종각 부근의 북콘서트 전문카페에서 대자연과의 탯줄을 끊지 않은 소설의 주인공 조르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일보사와 열린책 들이 마련한 행사는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독후감을 제출한 독자들을 중에서 4대1의 경쟁을 뚫고 초대받은 50여명을 상대로 한 파워 클래식 내용의 일부분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로 인해 최근에 삶의 진로가 바뀐 사람은 베스트세일러 작가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다. 그는 이 책이 던지는 ‘자유’라는 질문에 견디다 못해 금년 4월에 대학교에 사표를 내고 조르바처럼 살겠노라고 일본으로 떠났다. 곽재구 시인은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30년 벼른 끝에 찾아가 그의 묘비 앞에 세워진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읽고 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또한 배우 최불암은 일생에 자기가 꼭 연기해보고 싶은 인물이 조르바라고 하며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지난해 그리스를 여행할 때 소설의 무대인 그의 고향이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 몹시 아쉬웠다. 할 수없이 그리스의 히오스 항에서 지중해를 건너 터키로 가는 배의 갑판위에서 크레타(Crete)섬 쪽에서 밀려오는 눈부신 푸른 파도를 반갑게 바라보며 카잔차키스의 체온을 느끼는 것만으로 마음을 달랬다.
이야기는 근엄한 영국식 문명교육을 받은 청년 작가가 항구도시 피라에우스에서 키가 크고 몸이 가는 뜨내기 노동자 조르바를 처음 만나 함께 크레타섬으로 가 광산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줄거리다. 조르바는 계획에 매이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계속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존재다. 술과 음악에 미쳐있는 야성을 지키고 있는 자연인이다. 그의 눈엔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이 다르고 늘 보던 길마저 새롭다. 세상 모든 것이 늘 신비롭고 즐겁다. 그의 생은 자유로움 바로 그것 이었다. 부조리를 향해 거침없는 조롱과 욕설을 끼얹는다. 왼 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자려나간 것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오, 항아리를 만드는데 자꾸 걸리적거려서 도끼로 잘라버렸지요' 라며 대답을 한다. 그 동안 몇 번의 연애를 했느냐는 질문에 " 수닭이 장주를 갖고 다니며 한답니까? 라는 반문을 하는 등 그의 입에서 뿜어내는 말은 정제되지 않았고 행동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면서 애독자 모임 ‘카잔차키스의 친구들’이 105개국에 생겼다. 그러면서 조르바는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의 상징이 됐다. 우리가 조르바 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갖고 있으며, 너무 많이 고민하고 소심하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며 노동자로 일하고 체험한 것이 지식의 전부다. 행복의 기준을 재산과 학벌, 지위, 명성에 맞추는 현대사회에서 보면 조르바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추구하는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자유인 그대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농사꾼 전우익 이 쓴 세상사는 이야기 ‘혼자만 살믄 무슨 재민겨’ 에서<인생은 장사가 아닌데 왜들 계산하고 따져가며 살려고 들 해요, 남는 장사 누구는 못해요, 무식하고 우직하게 살아요.>라는 말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뒤돌아본다. 나 자신보다 남을 더 많이 의식했고, 어떠한 일에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이기적인 마음에 계산기를 두드려 판단한 다음 행동에 옮겼다. 좀 더 높은 지위와 넓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편하게 살고자 앞만 보고 질주해 왔다. 때로는 과거에 발목 잡히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엿보려 했고, 하루를 속이며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는 세상에 함께 맞장구치며 살아온 것이다. 요즈음에는 책 읽는 것에도, 글 쓰는 일에도 어정쩡하니 사는 것 자체가 어정쩡하다.
이 소설이 발간된 지 1세기가 넘도록 많은 독자들을 갖게 된 이유는 주인공 조르바는 어정쩡함을 저주한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모두 그 어정쩡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잠 잘 때는 잠에, 일 할 때는 일에, 키스할 때는 키스에 몰두하라고 한다. 조르바는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밥 먹는 것은 물론 잠자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다. 또 한 흥이 나면 산투르란 악기를 켜며 밤 새워 술을 마시고 기진맥진 할 때까지 춤을 춘다.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가 새로운 출발을 한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그는 ‘인생은 한 순간, 무서워하면 끝장이다’ 하며 인내와 용기를 자신의 영혼에게 불어넣는다.
카잔차키스의 집 대문 위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우리는 매일 같이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 라고 했고 BBC 방송에 출연해서는 ‘한계를 초월하는 도전을 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어려운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면 나는 큰소리로 묻는다. ‘조르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러면 답이 나온다. 답이 있다는 걸 확신할 때 나의 존재가 투명하게 감지되고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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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혼을 쥐고 흔드는 감명깊은 이야기
곁에 오래 머물러 갑니다.
맑은 영혼을 지닌 작가님 작품 늘 감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