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고대사에서 나온 이야기
1. 맘모스
빙하기에 살았던 거대한 코끼리의 일종이다. 이빨만 해도 2~3m에 이르는 거구에 긴 털로 덮여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멸종되었다. 시베리아 북부 툰드라(tundra)지대 등에서 얼어죽은 거의 그대로의 모습로 발굴된 일이 있다. 아시아· 유렵으로부터 북미주까지 북반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맘모스의 뼈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광범한지표면에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빙하기 말기에 북쪽으로 이동하여 전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맘모스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거대한」또는 너무도 거대하여 제기능을 상실하기 쉬운 것을 비유하여 말한다. 예컨대 거대하다는 뜻으로 맘모스 빌딩, 맘모스 탱커 등으로 사용한다.
2. 빛은 동방으로부터
원래는 고대 로마의 속담이다. 로마문화는 로마에서 동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것을 수용 계승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계문화가 좀더 광범하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이른바 오리엔트에서 먼저 시작됐음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좀더 첨가한다면 세계문명의 3대 발상지는 중국의 황하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으로 잡고 있다.
3. 악어의 눈물(악어의 논법)
「악어의 눈물」이란 거짓 눈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악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먹이를 유혹하고 또 그 먹이를 먹으면서도 거짓으로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로부터 악어를 위선자의 상징으로 말하게 되었다.
「악어의 논법」이란 상관궤변법(相關詭辯法)을 말한다. 그 옛날, 나일강 언덕에 살던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악어에게 붙잡혀가자 악어에게 내 아들을 제발 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 악어는 자기가 그 애를 돌려줄 것인지, 돌려주지 않을 것인지에 관한 자기 의사를 정확히 알아맞히면 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만일 어머니가 ‘돌려준다’고 말한다면 악어가 그 어린애를 잡아먹고는 네 대답이 틀렸다고 말할 것이며, 또 ‘돌려주지 않는다’고 대답한다면 악어가 돌려주려고 했지만 대답이 틀렸기 때문에 돌려줄 필요가 없어서 잡아먹는다고 할 것이라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우화적인 전설에서 악어의 논법」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4.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고대에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진 것은 모두가 건조물이다. 기원전 2세기에 살았던 Sidon의 시인 안티파트로스(Antipatros)는 그리이스 사화집(詞華集)에 75편의 시를 남겼는데, 이 시들에서 다음의 7개 불가사의라고 했다.
① 바빌론의 벽돌로 쌓은 성벽, ② 올림피아의 금상아제 제우스신상 ③ 바빌론의 공중정원 ④로도스 섬의 거인 동상 ⑤ 이집트의 피라밋 ⑥ 하리컬나소스의 마우솔로소 왕의 묘(Mausoleum 이라고 한다.) ⑦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그러나 ① 바빌론의 벽돌로 쌓은 성벽 대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에 있는 등대를 꼽는 것이 보통이다.
5. 다모클레스의 검(劍)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 사의 참주(僭主) 디오뉴시오스 1세(BC430~367)를 섬기는 부하에 디모클레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케로가 남긴 문헌에 의하면 어느 날 다모클레스는 디오뉴시오스 1세에게 아부하여,
“임금님의 행복이 몹시 부럽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디오뉴시오스는 대향연을 베풀고 다모클레스도 여기에 초대한 다음
“내가 그렇게도 행복해 보이느냐, 그러면 한번 자리를 바꿔 보겠느냐?”
고 하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과 관을 벗어 다모클레스에게 입히고 또 머리에 얹어주었다. 다모클레스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 맛나는 음식도 실컷 먹었다. 그러자 무심결에 머리 위를 본즉 거기에는 단 한 줄의 말총에 매달린 예리한 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질겁을 했다. 여기서 디오뉴시오스왕은 적이 많은 참주의 행복이란 기실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로부터 위험한 자리위에 앉아서 유지되는 행복을 ‘다모클레스의 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데서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완전한 행복은 없다.)는 속담이 나온 모양이다.
6. 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루비콩강을 건어 이태리로 진군한 카에사르(Julius Caesar, BC100~44)는 정적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대군을 BC 48년 8월 9일, 파르살스에게 대파하자 폼페이우스는 다시 이집트로 도망쳤다. 그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이집트까지 들어갔지만, 폼페이우스는 여기서 암살되었다. 카에사르가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에 포로가 되어 그녀를 애첩으로 삼은 동시에 이집트 정쟁에 개입하여 클레오파트라를 여왕으로 세웠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BC 47년에 카에사르는 소아시아로 건너가 폰토스왕인 파르나케스 2세군과 제라에서 싸웠다. 대단한 격전이었다. 카에사르는 친구 중 한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때의 전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I came, I saw, I conquered.)"
이것은 과연 군인답게, 간명하고도 요령 있는 모범적인 보고로서 유명하다.
7.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그리스의 유명한 신탁소인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에 걸려 있는 아테네의 입법가이며 7현인 중 한 사람인 솔론(Solon, BC 640~560)이 한 말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 이 말은 ‘자기의 분수를 잊지 말라’ 라는 뜻이었지만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의 정신을 탐구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 것은 철학자 소크라테스(Sokrates, BC 470~ 399) 이후부터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때까지의 철학은 ‘철학의 시조 탈레스(Thales, BC 640~546)’이래 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했었는데, 소크라테스 때부터 ‘인간자신’을 연구대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탈레스 자신도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했던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사실 그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일이란 무엇이냐?”
대답에 그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
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8. 고르디온의 매듭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Magnus, BC 356~327)은 BC 334년, 동정(東征) 도중에 소아시아의 프르브기아의 옛수도 고르디온(Gordius)에 도착하였다. 이 도시에 있는 신전에는 1대의 수레가 밧줄로 신전기둥에 매여져 있었는바 그것은 마술과 같은 매듭으로 엄중하게 묶여져 있었다. 이것을 ‘고르디온의 매듭’이라고 한다. 이 끈의 매듭을 푸는 사람은 이 수레를 타고 전 세계를 정복하는 대왕이 된다는 예언이 있으므로 많은 영웅호걸이 그것을 풀어보려고 시도했으나 지금까지 누구도 풀지 못했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곧 칼을 뽑아들고 그 매듭을 단칼에 쳐서 끊어버렸다. 예언대로 그리고 무력으로 알렉산더 대왕은(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또한 이로부터 ‘비상수단으로 난제를 해결한다.’ 라는 숙어도 생겨났다.
9.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 to Rome, 방법은 달라도 도달한 지점<결론>은 마찬가지다.)는 말은 프랑스의 시인 라 · 폰테느의 우화시에서 나온 격언이다.
로마는 그의 군사적, 경제적인 의도로부터 수도 로마를 기점으로 훌륭한 군사도로를 그의 광대한 지배지역의 말단까지 부설했다. 그후 유럽각지에서는 이 도로를 보수, 유지하여 근세에 이르기까지 국도로서 사용해왔다. 그러므로 유럽에서는 문자 그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화고’ 있었는데 이것은 문화적인 의미도 있다.
독일의 사학가 란케의 유명한 말에 ‘일체의 고대사는 말하자면, 하나의 호수에 흘러드는 물줄기들로 되었다. 모든 역사는 로마 역사에 흘러들었고, 근세사의 전체는 로마사 속에서 다시 흘러 나온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문화사도 적용되는 바 고대문화는 일단 로마에 집중되고 그로부터 서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때문에 유럽문화의 거의 대부분의 원류(源流)는 로마에서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