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족보 타령
ks. kim
복 날이 찾아오면 제일 신나는 사람은 칼춤 추는 망나니가 아닐까? 진짜 망나니는 아니지만, 초복 중복 말복 무슨 복이 그리 긴지, 삼복 (三伏) 복에 더워 죽겠는데 일사병에 꼬꾸라지 않을려면 별 수 있나. 망나니 아니라 저승사자 방망이도 빌려와 내리쳐야지? 무엇을 베고 친다는 것인가? 누님을 따라 나섰지만 썩 공감은 안 갔다.
꽁나물 시루 같은 버스 속 천장에서 그래도 선풍기 한 대가 윙윙 거리며 돌아 가고 있었다. 삼복 더위에도 모란 시장행 버스는 오일장을 향하여 굴러간다. 버스 안 풍경은 한편의 작은 장터 같다. 광주리에 과일 담고온 아주머니, 계란 꾸러미 거머쥐고 서 있는 청년, 알 수 없는 보자기들이 여기여기 놓여 있다. 펑퍼짐한 윗저고리 사이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치마 가랑이 사이로 부채질을 해대는 할매와의 조화가 참 묘하게 어울린다. 부부는 아닌 것 같은데 나름대로 연륜이 느켜지는 피서법이랄까. 한쪽 켠에 가방을 든 내 또래의 여고생이 시선을 둘 곳을 몰라하고 있으며, 볼까지 더위 때문에 더 빨게지는 것 같았다. 버스는 낡고 삐끄덕 거리지만 고개길도 제법 잘 넘어가고 있다. 버스 안내양이 외친다. 조금 있으면 모란 시장이니 싸게싸게 내릴 준비하라한다. 시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니 자동차 타이어가 더 커지는 것 처럼 보인다. 저 많은 짐들과 사람들을 내려 놓으니 홀가분한 상태로 냅다 굴러간다.
시장을 비집고 들어서니, 복날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왁자지껄 거리는 소리에 더위가 묻치고만다. 언니 복날에는 뭐니뮈니 해도 이놈 닭만한게 없어요, 아직 한번도 시집 안간 진짜베기 숫 처녀야, 토실토실한게 잡아 드시면 삼복 더위쯤은 개나 주라고해라며 아저씨가 호객 행위를 한다. 언제 보았다고 사내가 왠 언니타령인지? 갑자기 이모, 이모 하면서 누간가가 자꾸 부르니 누님이 발걸음을 멈추신다. 나 불렀어요? 이모 이리와 봐 저집 닭보다 이놈이 진짜베기야, 이건 무공해 사료만 멕여 키운 토종으로 서방님이 더 좋아 하실거야한다. 원 닭 한 마리 놓고 성의학까지 들먹이다니, 요세말로 장사꾼도 지식을 겸비하는 세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동안 닭고기를 후라이드 치킨, 양념 치킨, 닭백숙, 닭볶음 등으로 먹어 왔지만 닭을 처형하는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 저처럼 조그만한 생명체를 과연 어떻게 할까 궁금했지만 꼭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별의식 없이 닭 음식을 즐겨왔다. 그 날이 온 것이다. 망나니 아닌 망나니 차림의 시장 아주머니나 아저씨의 한 손에는 서슬 퍼런 부엌칼 크기만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장 보러 나온 고객이 실하다 생각되는 닭장 속을 지적하면 거침없이 한 놈의 목을 채어 꺼낸다. 순식간에 닭장 속은 놀난 닭들의 몸부림으로 먼지가 일어난다. 삶과 죽음의 순간이 갈리는 운명의 장인 것이다. 닭목이 반쯤 잘리어 피를 다 흘리기도 전에 드럼통 속으로 내동갱이 쳐진다. 드럼통까지 들석이게 그속에서 몸부림 치다가 조용해지는 닭의 최후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저분들은 어떠한 느낌으로 하루에도 수십마리의 닭을 처형 처리하는 것일까? 닭의 입장에서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행하는 망나니의 역할인 것이다. 그분들을 절대로 사후에도 죄를 물을 수 없을 것인가? 명령에 따라, 그리고 먹고 살려니까 면죄부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저 분들 주므실때 머리 없는 닭이 나타내 내 머리 돌려줘라든가, 피 흘리는 닭 꿈을 꾸는지 묻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둔 닭이 향하는 다음 코스가 기달리고 있다. 펄펄 끓는 물 속으로 던져진후 몇분후에 건져 올려진다. 사람 손으로 털을 모두 뽑아 제거하거나, 고속회전 통 속에 넣어 제거하는 것이다. 과거 전쟁에서 캄보디아 킬링필드 사진을 접해보면 사람이 저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곳 시장에서는 일사천리의 과정으로 내장의 해체까지 10 여분 내에 깔끔하게 처리되어 완전 미끈한 나체의 생닭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한쪽 구석으로 버려진 닭 내장에서는 온기의 김이 피어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순간인데 어떤 아저씨가 그 곳 가까이 다가선다. 카메라는 들고서는 전쟁터의 종군 기자처럼 쌋다를 눌러덴다. 잘려진 닭대가리들이며 닭발들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는 것이기에 여쭈어 보았다,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하였다. 사진 작가라며 버려진 생명체 아니 이제는 낱개 물건에 불과하지만 예술로 다시 탄생하면 영원히 사는 것이라며 웃는 것이다. 그래도 가게마다 즐비하게 널부러진 나체 생닭들을 보고 있노라면 닭고기 먹고 싶은 생각이 십리도 더 도망가는 것 같다.
누님께서 우리 조카 놈이 키만 크지 말라가지고, 입시 공부로 힘들어 해서 개소주나 해줄까해서 시장 구경시켜 줄겸 데리고 온 것이라며 다음 가게로 가게 되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사람이나 호칭이 남녀 노소 구분없이 "이모, 이모"뿐이다. 이 시장판은 왜 이리 족보가 완전 개 족보인가? 고모, 숙모, 시동생, 시누이, 처제, 처형, 처남, 삼촌 등 그 많은 호칭이 엄연히 있는 동방예의지국인 사회인데, 완전 콩가루 마을 집단인가? 무슨 사이비 종교 집단도 이러지는 않을덴데 충격 그자체인 것이다.
참으로 우물안 개구리임을 자각하는 시장학 공부의 시작이다. 한 모퉁이를 돌자 멍멍이 소리가 요란하다. 사모님 어서 오세요, 개고기 사러 오셨어요, 아니면 개 소주 내리려 오셨어요 묻는다. 저 놈은 토종 똥개로 근수도 제법 나가고 나이도 많치않아 육질이 끝내주어요한다. 제가 이바닥에서 20년째인데 시내 왠만한 개 고기집 여기서 거의 사간다고 자랑이 끝날줄을 모른다. 철망 속에 갖쳐있는 개들의 눈 빛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서로 경계하며 뒷자리 구석으로 더 들어가려고 안달인 것이다. 그 중에 한 마리를 지적하면 쇠올가미를 철재틀에 넣어 안나올려고 힘쓰는 개 한 마리를 끄집어낸다. 그리고는 몽둥이로 개 머리통을 서너차례 후려친다. 개 외마디 비명 소리가 나더니 곧 꼬구라져 널브러진다. 잔인하다는 표현 이외에 달리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동료 개가 눈 앞에서 무참히 처형 당하는 것을 보는 다른 개들은 반쯤 실성한 상태로 울부짓기 바쁘다. 다음 과정은 토치 불도 몸통 전체를 불살라가며 털을 제거하는 것이다. 장사군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렇게 해야 개도 고생 안하고 사람도 덜 피곤하다고 하는 말을 옆에서 듣자니 소름이 온몸에 나는 것 같았다. 허가난 살상 현장이 꼭 이래야만 하는가?
베트남 전쟁 영화에서 본 장면이 겹쳐진다. 포로들을 물 웅덩이에 가두어 놓고 그 중 한명씩 골라가며 올려 보낸다. 권총을 찬 병사가 지폐를 내보이며 도박판을 벌린다. 옛 러시아에서 유래한 룰렛 게임이 진행 되는 것이다. 공포가 상상력을 만들어내고 이를 현실 세계로 적용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저주의 끝판인 것이다.
닭 파는 가게에서 보았던 사진 작가라는 분도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 조각난 개 조각 부위를 사진에 담기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그래도 장사가 제법 잘 되는 날이라 작품 소재 찍기가 좋았다고한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 작가에게는 작품의 소재가 중요하다는게 아이러니한 모순의 발상인 것이다. 전쟁터에서 종군 기자들도 이런 감정을 느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곳 모란 오리장 시장에서도 몸보신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합법적 영업이 이루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 보호 단체의 성화에 몽둥이로 개를 패 죽이는 과정에서 전기 충격방식으로 바뀌어 견권을 보호했다지만 개들이 반길까? 오랜 관습으로 개는 패서 죽여야 육질 감이 오래간다는 속설이 빈번히 자행 되기도한다. 옛날 못된 남정네들은 걸핏하면 마누라나 여자분들한테 손찌검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혹은 자랑까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여자가 고분고분 해진다며 위세를 떨곤했다. 지금 같으면 쇠고랑차고 빨간 벽돌집 행이지만.
먹고 살기위한 장사 수단 중의 한 방편이라 주장하지만 인간의 잔혹성이 내재된 것 같아 씁쓸하다. 이곳 장사하시는 분은 별다른 생각 없이 저 두 마리는 형제이고, 저 놈들은 부부라고 하네요라며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 즐기는듯한 표정에 그 집 것을 팔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에서 돌아서고자 하자 한켠에 쭈구리고 앉아 있는 개를 가리키며 저놈은 독일산 세퍼트로 족보가 확실히 있는 놈이라한다. 공장 주인이 부도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이곳까지 흘러오게된 사연까지 들려준다. 이 마당에 족보까지 들먹이며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처 죽이냐고 묻고 싶지만 자리를 떠났다.
한참을 둘러 보시던 누님은 다시 닭이 즐비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그래 닭백숙 감으로 사다가 폭 고아 먹여도, 올 여름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하신다. 다행인지 개 소주가 물 건너가고, 내 손에는 두 마리 나체 닭이 선물로 쥐어졌다. 그 후로는 나체 닭과 같은 것을 보아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게 된 것인가? 그 여름날 닭 백숙 두 마리 먹은 힘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성인된 후에 소주 한잔에 정갈하게(?) 차려진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2024. 08.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