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수북하게 내린 함박눈이 오후의 태양빛을 비스듬하게 받으며 반짝일 때, 한 무리의 중년들이 낙동강 상류 내성천의 모래밭을 찾았다. 떠들썩한 수달도 자제했는지, 어떤 발자국도 없는 내성천은 푹신했고, 50을 훌쩍 넘긴 일행은 모처럼 소년이 되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되돌아가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에 조심스레 발자국을 남기더니, 누가 먼저랄 게 없이 드러누워 몸을 굴렸다. 상기되어 물가로 굴러간 일행은 맑디맑은 내성천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마셨고, 얇고 투명한 살얼음을 나눴다. 한없이 청량했던 그날, 살얼음 아래 소리 없이 흐르던 내성천의 모래바닥에 작은 물고기가 인적에 놀랐는지, 어디론가 달아났다. 흰 수염을 가진 마자. 흰수마자였다.
참마자, 돌마자, 여울마자처럼 ‘마자’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우리나라 담수어류들은 대개 맑은 물이 멈추지 않는 모래강에 산다. 낙동강과 금강, 그리고 임진강의 모래 바닥에 드물게 분포하는 한국특산종 흰수마자도 그렇다. 아가미 뒤에서 옆구리를 따라 꼬리까지 예닐곱 개의 모래 색 무늬를 가지런히 잇는 5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몸은 연갈색의 둥근 등과 은백색의 납작한 배로 모래 바닥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눈과 코앞의 작은 한 쌍의 수염과 입 주변의 3쌍의 커다란 수염으로 먹이를 감지한다.
자갈이 거의 없이 얕은 모래 여울에서 조그마하게 무리 짓는 흰수마자는 작은 곤충을 노리는데, 저 역시 몸집이 작으니 천적을 조심해야 한다. 자잘한 자갈이 깔렸다면 몸을 잠시 숨길 수 있지만 물살이 조금만 늘어도 자갈은 흘러갈 터. 흰수마자는 자갈 하나 없어도 천적의 공격을 용케 피한다. 흐르는 방향으로 몸을 맞춰 먹이를 찾던 흰수마자는 천적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수면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하얀 몸을 반짝이며 달아난다. 모래 틈으로 맑은 물이 샘솟듯 올라오는 여울에 반짝이는 흰수마자는 현재 멸종 위기다. 낙동강과 금강의 모래 여울에 천적이 늘어난 건 아니다.
땅 속에서 천천히 굳어 형성된 화강암이 모래로 풍화돼 물에 휩쓸리며 흐르는 강은 우리에게 특별할 게 없지만 세계적으로 그리 흔한 건 아니다. 백두대간의 단단한 화강암 바위의 틈에 비집고 들어가는 물은 수 억 년 동안 얼다 녹기를 반복했고, 빗물을 타고 모래와 자갈로 강에 흘러드는 건, 우리에게 상식이지만 화강암이 드문 나라의 강은 달랐다. 그냥 마시면 수인성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토의 60퍼센트가 경사 급한 산악이고 내리는 비의 절반 이상이 여름에 집중되지만,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지구에서 영겁의 세월동안 굽이치던 우리 강은 언제나 모래를 품었고, 덕분에 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기슭에 쌓였다 하류로 떠밀리기를 반복하는 모래는 물을 정화하며 머금기 때문이다.
화강암이므로 석영과 장석과 운모로 형성된 금모래와 은모래는 부딪히며 흐르다 운모가 먼저 닳아 작은 틈을 만드는데, 거기에 미생물이 깃들며 물속의 유기물을 정화한다. 빙하가 휩쓸지 않아 유기물이 풍부한 백두대간의 고생대 지층에서 타고 흐르는 유기물을 취하는 모래 속의 미생물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플랑크톤은 강에 사는 곤충의 먹이가 될 터. 수많은 물고기와 새들을 끌어들이는 강도래, 민도래, 다슬기들이 그들인데, 내성천의 흰수마자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낙동강에 사람들이 기대기 한참 전부터일 게다.
내성천의 밤을 지배하는 수달은 동사리나 갈겨니처럼 커다란 물고기를 잡지 자그마한 흰수마자에 관심이 낮다. 갯버들 가지의 눈 밝은 물총새를 조심하면 그만인 낙동강의 흰수마자는 주역이 아니더라도 위기는 아니었는데, 왜 요사이 멸종 위기로 몰린 걸까. 짐작하다시피 모래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크기를 한도 없이 늘리는 사람의 욕심은 쌓이는 족족 강가의 모래를 퍼갔고. 밀려드는 모래보다 퍼내는 양이 훨씬 늘어나면서 먹이와 맑은 물을 잃는 흰수마자들은 다른 마자들과 더불어 오랜 터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부랴부랴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건만 모래 채취는 결코 진정되지 않았다.
모래 채취가 아무리 극성이어도 내성천의 흰수마자는 터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상류 지역의 농공단지와 축산단지에서 오염된 물이 들어와도 흘러내리는 모래가 정화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깨끗한 물이 굽이치기 때문인데, 이제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낙동강을 타고 바다로 흘렀던 모래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던 내성천의 상류가 다목적을 과시하는 영주댐에 가로막힐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영주댐이 물길을 막대하게 차단한다면 모래 흐름도 예전 같지 않을 게 분명하다. 모래가 차단될 경우, 눈밭을 뒹굴며 살얼음을 뜯어 나누고 물을 떠 마시는 이는 수인성질병으로 톡톡히 고생할지 모른다.
아니! 흰수마자의 멸종위기 등급을 낮추겠다고? 모래가 사라진 낙동강에서 버림받아 내성천에서 명맥을 가녀리게 유지하는 흰수마잔데, 멸종위기 정도를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낮출 예정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느닷없이 나왔다. 흰수마자의 등급을 낮추려는 건, 4대강애서 벌이는 토목 사업을 거리낌 없이 진행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받기 충분했는데, 황당하게도 멸종 위기가 아니라고 정정하기까지 했다. 공사 중에는 상류로 피난간 뒤, 돌아올 거라고 흰수마자에게 의견을 묻지 않은 정부는 장담했지만, 어떨까. 4억 톤이 넘는 모래를 퍼올린 토목공사로 낙동강 본류의 물살이 빨라지면서 상류와 지천의 모래까지 마구 휩쓸리는데, 피난 떠난 흰수마자는 온전할 겐가.
어라, 방생할 테니 걱정 말란다. 금강의 어름치처럼 몇 마리를 포획해 인공수정으로 개체를 늘린 뒤, 공사 종료 후 풀어주겠다는 건데, 마음 놓아도 되나. 물려받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대부분 잃을 흰수마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맑은 물이 샘솟듯 올라오는 얕은 모래 여울에서 살아가는 흰수마자는 모래를 잃은 낙동강과 금강의 본류는 물론이고, 대형 보에 흐름이 멈춰 썩어가는 모래에서도 살 수 없다. 흘러드는 모래가 대폭 줄어들 내성천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낙동강의 흰수마자는 이제 싫든 좋든, 광산 갱도의 카나리아가 되고 말았다. 훗날 결국 복원될 낙동강 본류에 돌아오게 할 내성천의 흰수마자마저 사라진다면, 자연에 기대야 건강한 사람도 온존할 수 없다. (전원생활, 201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