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을 부탁해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나는 장인어른이 없지만 장인어른은 분명히 돌아가셨다. 장인어른은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신 것인가.
그길은 차마 겨울의 사막이라고 일기에 쓴다. 없는 아내와 없는 자식을 불러와 장인어른의 49제를 지낸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한
도 본 적 없는 장인어른의 제를 지낸다.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입니까! 세상의 모든 장인어른은 인자하고 쓸쓸하다고 다시 일기에
쓴다. 호박단추처럼 작지만 단단하고 야무졌던 장인어른이 꿈에 나타나 내 딸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당신 딸이 누군지 모른
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나도 내 딸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 앞에서 절을 한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세상의 모
든 장인어른이 없는 사위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때문이다. 딸도 없는 장인어른이 없는 사위를 찾아 새벽 골목을 쏘다니고 있다. 이
거리가 춥고 을씨년스러운 것은 다 장인어른 탓이다. 좃빠지게 일만 하다가 딸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새벽 거리에 쓰러져 뒤져버
린 불쌍한 당신 탓이다.
공룡은 살아있다
자정 지나,
6층 오피스텔 문을 열면 8차선 도로 위에서
공룡의 포효가 들린다.
전방에서 두 시 방면에는 24시간 짬뽕집이 있고
그 옆으로 동암종합동물병원
그 위로 서광주유소가 있다.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지르며 아스팔트를 질주할 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티라노 티라노 마찰음을 내며 전속력으로 달린다.
그러니까 석유란 공룡의 썩은 사체의 엑기스
토막 난 공룡들을 싣고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자동차들이 방방곡곡 도로를 질주한다.
살인자들이 하도 많아서 경찰도 단속할 엄두가 나지 않을 뿐.
그런데도 짬뽕집의 불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동암종합동물병원은 공룡을 치료하지 못하고
서광주유소에서는 매일같이 공룡 썩은 물이 거래된다.
공룡을 타고 유원지로 놀러가는 한때의 단란한 가족이
엉금엉금 오피스텔로 돌진하고 있다.
공룡은 말이 없고
자동차는 후미등을 켜고 공룡숲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