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35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頌)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을
올려놓으니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오도송(悟道頌)
오조법연(五祖法演)
山前一片閑田地
산전일편한전지
叉手叮嚀問祖翁
차수정녕문조옹
幾度賣來還自買
기도매래환자매
爲憐松竹引淸風
위련송죽인청풍
산비탈에 한 마지기
한가하게 노는 밭이여 !
두손 공손하게 모아 먼 친척
어르신(祖翁)께 여쭙나이다.
이 밭은 몇 번이나 팔았다가
다시 샀는지 혹시 아시는지요 ?
이웃 같은 솔바람 댓잎소리
청풍명월 못내 그리웠습니다.
"
* 한전(閑田) :
우리의 본성(본래면목, 自性)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를
지은 사람(作者)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선사 스님으로
11세기
송(宋) 나라 시대의
승려(僧侶)이다.
중국 선불교(禪佛敎)의
제 20대 조사(20代 祖師)이며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如來佛 世尊) 이래
제 47대 조사
(弟 47代 祖師)
스님(僧, 大沙門)이다.
제21대 조사
(弟 21代 祖師)
원오 극근(圜悟 1063–1135)
선사(禪師) 스님에게
법(정통 법맥(法脈))을
전해 주었다.
선불교(禪佛敎)에서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정식으로
참구(參究)하게 하여
참선공부(參禪功夫)로 전환한
선사(禪師)가
바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이다.
오조법연(五祖法演)은
사천 사람으로
속성은 등(鄧)씨다.
임제종 문하
양기파의 3대법손으로
35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심출가했다
오조법연(五祖法演)
선사의 전기에 대해서는
《오등회원》제19
《속고승전》 제20 《불조역대통재》 제29
등에 전하고 있다.
이 기록들에 의하면
법연(五祖法演)은
임제종 문하로 들어오기까지는
숱한 인연을 거치게 된다.
그는
처음 교학을 연구하다
의문점을 풀지 못한 채
여러 곳을 참알하다가
혜림원의 원조종본 선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문하에서 역시
종본은 법연이 임제하의
인연이라 여겨
그를 서주부산의
법원(法遠)에게 청익토록
했다
법연(五祖法演)은
스승 법원(法遠)이
“
세존에게는 밀어가 있으나
가섭은 감추어 숨기지 않는다
”
는 요체를 들려주자
품고 있던 의문이 돌연 얼음녹듯
하였다고 한다.
더욱 큰 깨침을 얻기 위해
법연은
문하에서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법원이 연로하자
백운수단(白雲守端)을 찾아가
시봉할 것을 권하게 된다.
백운은
양기방회의 법을 전수받은
법제자로써
법연은
임제종문으로 들어와
결국
양기파의 제 3대 법손이 되는
인연을 짓게 된다.
어느날 수단은
회하로 옮겨온 법연에게
말한다.
“
수명의 선객이
노산으로부터 왔는데
이들은
모두 오입처(悟入處)가 있어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 법(佛法)을
설하게 하면 설할 수 있고(說得)
인연(因緣)을 들어
그들에게 물으면
밝힐 수 있으며(明得)
하어(下語)토록 하면
하어(下語)할 수 있다.
그러나 다만
이들은 철저하지 못하다(未在)
”
이 말을 들은 법연은
다시 대의단에 봉착했다.
"
이미 깨달았고
설(說法)할 수 있고
밝힐 수 있는 자들인데
어째서
아직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일까 ?
"
그는 의심을 품고
다시 공부에 들어갔다.
그런 수일 뒤에
대오철저(大悟徹底)했다고
전한다
법연에게는
불과극근(佛果克勤)
불감혜근(佛鑑慧勤)
불안청원(佛眼淸遠)이라는
제자가 있어
이들을
법연문하의 3불이라
했는데
하루는 법연이
정자에서
밤늦게 주선하고 있는
이들에게
요즘의 소식을
일러보라고 했다.
“
채풍(彩風)이
단제(丹霽)에서 춤을
춥니다.”
(혜근)
“
철사(鐵蛇)가
고로(古路)를 앞지릅니다.
”
(청원)
“
각하(脚下 )를
보아라(조고각하)
”
(극근)
이렇게
셋이 각기 답하지
법연은
“
내종(吾宗)을 이을 사람은
극근뿐이다.
”
칭찬했다.
마침 등불이 꺼져
어둠(무명, 무지) 속에서
발을 헛딛지 않고
조심해서
정자를 내려가야 한다는
상황을 일깨워 주고 있는
극근의 답은
무심(無心) 속의 명언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언어장구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에 직면한 것을
실천을 통해 보이려는
법담(法談)은
법연에게도 있었다.
그가
백운수단 선사
회하에 있을 때
어떤 스님이
바위가
급히 굴러내려 오는 것을 보고
법연에게 묻되
“
이 것이 신통인가
법이(法爾)인가
”
물으니
법연은
그가 입고 있던 옷을
얼른 벗어 굴러내려오는 돌을
둘러 싸 멈추게 했다
하루는
또 스승 수단선사가
대중에게 이르기를
“
옛사람이
도를 닦는 것이
마치 거울에 비친 상과 같은데
상이 형성된 뒤에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
”
설하니
대중이 답하였으나
모두 뜻에 계합하지 못했다.
물음에 속히 말하기를
"
또한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곳에
있습니다.
”
법연이 답하자
스승은
“
이 도인은 비로소 득도했다.
”
하고
분좌래학(分座來學)케 했다.
이렇게
수단에게 법을 받은
법연은
훗날
자신의 심지(心旨)와
선안(禪眼)을 잘 꿰뚫어
공부하던
원오 극근(圜悟
1063–1135)에게
법(정통 법맥(法脈))을
전수했다.
※
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있을 것이다.
언제든
글 내용 가운데
잘못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