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서 2장
혼인제도 안에 담겨 있는 숭고하고 순결한 정신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는 혼인제도를 통하여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고 하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셨다. 이런 점에서 남녀의 혼인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사명을 수행하고 완수함에 있어 가장 유효한 제도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혼인제도를 통해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 안에서 남녀의 사랑 나눔에 대한 순수하고 고상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방의 세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성적 문란이나 혹은 종교적 주술 행위로써 성창과의 행음을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고대 근동지방의 문화들과는 본질적인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아가서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인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혼인제도와 그로 인해 세워진 가정이라고 하는 테두리 안에서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 나눔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사랑 나눔은 좀 더 넓게 확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원리로, 그리고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교감하게 되는 사랑의 원리로 보이고 있음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바울은 기꺼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고 하면서 혼인제도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랑스런 관계의 상징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아 1:2-4)는 주제부의 노래에서 각각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을 향하여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아 1:2),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아 1:4)’고 외치고 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사랑 나눔에 대한 찬사로 아가서가 진행될 것을 예견하게 한다.
술람미 여인이 왕궁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솔로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회상하고 있는 가운데 술람미 여인은 한때 포도원지기였던 자신이 왕궁의 주인이며 온 백성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솔로몬의 신부가 됨으로써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1장의 메시지는 신분의 격차를 뛰어 넘은 사랑의 숭고함을 충분히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때문에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이여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아 1:16-17)라고 노래하며 이후에 전개될 풍요롭고 벅찬 혼인 생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처럼 아가서 1장 말미에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의 사랑 나눔의 기쁨을 암시하는 가운데(1:16-2:1) 이에 대한 솔로몬의 화답(아 2:2)이 나오고 평화로운 사랑이 계속되기를 소망하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아 2:3-7)로 아가서의 서론격인 제1부가 끝나게 된다. 제2부에서는 사랑하는 두 연인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가운데 애타게 기다리던 만남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숨 가쁘게 달려와 청혼하는 솔로몬과, 솔로몬의 사랑 고백에 따른 청혼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던 술람미 여인이 청혼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장황하게 묘사된다(아 2:8-3:5). 이러한 맥락 속에서 2장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① 술람미 여인을 찾아 온 솔로몬에 대한 묘사(아 2:8-9) : 험준한 산맥을 단숨에 넘어 술람미 여인을 찾아오는 솔로몬의 극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②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청혼(아 2:10-14) : 술람미 여인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고백하는 솔로몬의 청혼 내용을 묘사한다.
③ 솔로몬의 청혼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응답(아 2:15-17) : 솔로몬의 청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술람미 여인이 이를 방해하는 세력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청혼을 받아들이는 심경을 묘사한다.
④ 이어 솔로몬의 청혼이 있기까지 술람미 여인이 겪었던 심적 갈등이 묘사되고 있다(아 3:1-5).
1. 신분의 격차를 뛰어 넘은 사랑의 숭고함(아 2:1-7)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이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2: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旗)로구나
2: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2:6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2: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필자역)
술람미 여인의 노래(독창)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들의 백합화로다.
솔로몬의 노래(독창)
가시덤불들 사이의 백합화로다.
여자들 중의 내 사랑은.
술람미 여인의 노래(독창)
숲의 나무들 가운데 사과나무로구나
남자들 중의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가 큰 기쁨으로 그 그늘에 앉았으니
그의 열매가 내 입에 달콤하구나.
그가 나를 잔칫집으로 인도하여 들어갔으니
내 위에 그의 깃발은 사랑이로구나.
너희는 건포도 과자로 나에게 힘을 돋우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으로 병이 났도다.
그의 왼(팔)은 내 머리 아래 있고
그의 오른(팔)은 나를 안고 있네.
암노루들과 들의 암사슴들을 두고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그가 원하기까지
너희는 그 사랑을 흔들지 말고 깨우지도 말아다오.
<제1부. 끝을 알리는 피날레>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 2:1)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을 사론의 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선화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합화와 같이 자신의 신분은 평범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한 여자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확실히 술람미 여인은 위대한 왕 앞에서 보잘 것 없으며, 왕의 준수함 앞에서 자신은 초라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반면에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아 2:2)라고 함으로써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여자들 중에 여자, 즉 ‘최상의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겸손이 오히려 솔로몬에게는 순수하고 순진하며 순결함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술람미 여인이 가시덤불과 같은 곳에 있다 할지라도 솔로몬은 어디서든지 그녀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존재이다. 이러한 솔로몬의 심정은 마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창 2:23)라고 한 아담의 노래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자 술람미 여인은 이처럼 솔로몬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서 말해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이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아 2:3).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서로에 대한 감정은 영혼의 합일을 이룰 정도로 강렬하였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 2:4)라는 표현은 신분의 격차를 떠나 단단하게 결속된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관계를 충분히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본문에서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가 이제는 솔로몬에게 속한 특별한 존재임을 표현한 고대 근동지방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깃발’은 당시의 군대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깃발을 보면 그 군대가 누구에게 속하였는지, 그 군대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듯이 ‘그 남자의 사랑이 여자 위에 깃발이다’라는 표현은 술람미 여인이 누구에게 속한 신분인가를 표현해 주고 있다. 이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통하여 예전의 신분이 아닌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는 말씀의 본의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은 누군가에게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싶어 하는 행복한 마음을 드러내는데 조금도 어색할 이유가 없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아 2:5)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는 이처럼 벅찬 사랑의 열정을 도무지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자신이 열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표현을 가리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일종의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해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주관적 이해에 불과할 따름이다.
본문은 오히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관계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아 2:6)라고 하는 결정적인 묘사를 통해 술람미 여인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혼인제도의 완성을 강력하게 표시하고 있다. 나아가 그 어떤 것으로도 이 혼인제도가 깨어지거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들과 들의 암사슴들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2:7)는 선언을 통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남녀의 친밀한 관계는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혼인 이전의 성적인 활동으로 더렵혀져서는 안 된다. 아가서가 분명하게 강조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순결과 합일의 긴장은 전적으로 혼인을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한다. 이로써 온전한 사랑은 열정과 순결을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아가서의 주제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이론이 아니다.
혼인의 순결과 고상함을 제시한 아가서의 서론부(아 1:2-2:7)는 여기에서 막을 내리고 이어 이제 본격적으로 사랑의 노래가 전개된다. 아가서는 먼저 솔로몬의 청혼과 술람미 여인의 심적 갈등을 술람미 여인의 독백 형식으로 보여주고(아 2:8-3:5) 이어 제3부로 넘어가 혼인식에 대한 묘사(아 3:6-5:1), 제4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혼인생활에 대한 묘사(아 5:2-8:4)에 이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피날레(아 8:4-14)로 발전되고 있다.
2. 술람미 여인을 찾아 온 솔로몬(아 2:8-9)
2:8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2:9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필자역)
<제2부.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
술람미 여인의 노래(독창, 솔로몬의 입장에 대한 묘사)
나의 사랑하는 이의 소리로다!
보라! 그가 산 위를 넘으며 언덕 위를 뛰어 오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와 어린 사슴과도 같구나.
보라, 우리 벽 뒤에 서서
창문(들)을 통하여 들여다보며
창살(들) 틈으로 엿보는구나.
아가서의 주제가 혼인의 신성함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면 서론부에서는 혼인의 신학적인 원리가 강조되고 있다. 이어 아가서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혼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조심스럽게 펼쳐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성애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남녀의 순결한 합일을 통해 나타나는 인격적인 나눔과 그 고상함에 초점을 모으기 위함이다.
흔히 아가서를 성애에 대한 구상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으로 처녀성의 상실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타락상으로부터 나온 유치한 해석일 뿐이다. 아가서는 그보다 훨씬 수준 높은 차원에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음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아가서는 이 고상한 품격을 가지고 있는 남녀의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가는 신랑의 발 빠른 발걸음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술람미 여인의 목소리로 묘사되고 있는 솔로몬의 등장 모습은 참으로 극적으로 전개된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아 2:8).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가지고 오는 기쁜 소식을 이미 듣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기대감이 조금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때 솔로몬은 마치 좋은 소식을 갖고 크고 작은 산들을 뛰어 넘어서 달려오는 노루와 새끼 사슴과 같다.
이사야서에서도 좋은 소식을 갖고 오는 장면을 묘사할 때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강을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라고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가 마치 노루와 새끼 사슴처럼 산을 뛰어 넘어 자기에게 기쁜 소식, 이미 자신이 예견하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그 말을 전하려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 남자는 그 기쁨의 내용을 함께 할 대상을 찾고 있다. 그는 벽을 넘어서 보고 창을 통해서 관찰한다. 이 부분에서 술람미 여인은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아 2:9)라고 하면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솔로몬이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기쁜 소식을 전하며 함께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간절히 찾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솔로몬이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보기 위하여 노루나 어린 사슴처럼 힘을 다하여 창틈으로 엿보고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함으로 무언가 급박한 사태가 발생할 것 같은 긴장감을 일으키기 위함이다. 동시에 이러한 장면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장감을 묘사함으로써 술람미 여인이 기대하고 있는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주어야 한다는 긴박감을 더해주고 있다.
3. 솔로몬의 청혼(아 2:10-14)
2:10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필자역)
술람미 여인의 노래(독창, 솔로몬의 청혼 내용에 대한 묘사)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하기를 :
일어나라,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나오너라.
보라. 이제 겨울도 지났고 비도 그쳤구나.
지면에는 꽃들이 보이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으니
산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설익은 열매를 내고
포도나무들은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일어나라, 나의 아름다운 사랑아 나오너라.
절벽 은밀한 곳 바위틈 사이에 있는 내 비둘기야.
나로 네 모습을 보게 하라.
나로 네 소리를 듣게 하라.
참으로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모습은 아름답구나.
청혼을 위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찾아오는 모습을 긴장감 있게 묘사한 후(아 2:8-9) 아가서는 술람미 여인의 노래를 통해 솔로몬의 청혼 내용을 간접화법의 기술 형식을 통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아 2:10-14).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가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은 여자를 위하는 자상하고 진실한 남자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솔로몬이 들 사슴처럼 늠름하고 힘 있게 달려오는 모습에서 이미 예견된 그대로이다.
솔로몬은 마치 봄꽃의 향내를 머금고 술람미 여인을 찾아왔으며, 술람미 여인은 창틈으로 보이는 솔로몬의 모습만을 보고서도 이미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라고 하면서 ‘술람미 여인을 위하여’(, 10b; 10c) 준비된 곳으로 일어나 함께 가자고 요청한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번역은 ‘(너는) 이리로 나오라’는 원어의 직설법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 달리 새로운 세계로 나올 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솔로몬은 이 새로운 세계로의 초청에 대해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을 누리며 행복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과 ‘최상의 때’가 되었음을 덧붙임으로써 이제부터 술람미 여인이 누리게 될 혼인의 생활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때 솔로몬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것으로 이 사실을 강조한다. “보라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아 2:11-13).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청혼은 마치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장마도 그치게 되었으며 이제 그들이 머물 땅에는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며 무화과나무와 푸른 열매들이 싱싱하게 무르익고, 향기로운 포도나무 꽃향기가 넘실대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스라엘 땅에서 겨울철은 잦은 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반면에 봄은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날씨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이스라엘에서 대부분의 꽃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비둘기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4월에 피어난다. 그리고 5월은 무화과와 포도나무의 꽃이 피는 시기이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은 그들이 서로 만나기 이전까지의 삶을 마치 겨울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만남은 오랜 겨울비가 끝나고 꽃이 피는 봄철을 맞이한 것과 같다고 노래한다. 이것은 마치 봄을 맞이해 온 세상이 기쁨과 즐거움의 기운으로 충만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것처럼 솔로몬은 새로운 생명의 정교함과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기대감으로 가득한 가운데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청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솔로몬의 청혼을 중심으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원어를 직역하면 ‘일어나라, 아름다운 내 사랑아, 이리로 나오라’)는 요청은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간곡한 심정이 녹여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청혼을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반어법적인 강조, 즉 자신이 솔로몬의 입장이 되어 말함으로써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것으로 극중 효과를 높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솔로몬이 그러한 것처럼 술람미 여인 역시 그 청혼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솔로몬의 청혼 내용은 이제 솔로몬의 직접화법을 통하여 솔로몬의 청혼이 법적인 효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인증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솔로몬의 목소리로 선포되는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 2:14)라는 표현은 앞서 술람미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간접화법으로 솔로몬의 청혼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직접 솔로몬의 목소리로 인증하는 절차를 밟음으로써 그 청혼의 효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비둘기’라는 단어는 (아가서 1장 15절에도 등장하며 5장 2절과 6장 9절에서도 나오는데, 남자가 여자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부르는 애칭으로 표현된다. 남자는 자기에게 있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더 이상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 같아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고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 즉 그녀의 아리따움과 고매한 인격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온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을 가리키는 ‘나의 비둘기’는 일종의 산비둘기로서 높은 암벽의 바위틈이나 깊은 계속의 틈 속에 숨어 있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솔로몬은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사는 술람미 여인을 산비둘기로 비유함으로써 오로지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유일한 신부로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비록 술람미 여인이 깊은 계속에 숨어사는 존재와 같이 감추어진 존재일지라도 이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있어 최상의 신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는 숨어있는 복선이 깔려 있다. 술람미 여인의 신분이 비록 포도원지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솔로몬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암벽에 있다는 것은 아무리 솔로몬이 일방적으로 구애를 한다 할지라도 술람미 여인의 인격적인 응답 없이는 결코 자신의 신부로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솔로몬은 권력이나 힘을 앞세운 우격다짐으로 술람미 여인을 신부로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처럼 간곡한 표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사실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이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과정(아 3:1-5)이 숨겨져 있음을 예견하게 한다.
4. 술람미 여인의 응답(아 2:15-17)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2:16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2:17 나의 사랑하는 이여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필자역)
술람미 여인의 답가(독창, 솔로몬의 청혼에 대한 응답)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을 잡아주소서.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들을 망치고 있어요.
우리의 포도원들은 꽃이 피어 있어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들 사이에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날이 숨 쉴 때까지,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내 사랑이여! 돌아오서소.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솔로몬의 강렬한 청혼과 비교할 때 술람미 여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열망으로 솔로몬의 청혼을 고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 자신 사이에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음을 결코 모른 체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솔로몬의 구애에서도 이미 밝혀졌지만 모든 여건을 물리치고서라도 술람미 여인을 신부로 맞이하겠다는 솔로몬의 열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혼을 받아들여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술람미 여인 자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때문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청혼에 대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고 하며 솔로몬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재적인 불안 요소가 그들 사이에 남아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청혼에 대하여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인격적인 판단과 결단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또한 상대방의 신분 여하를 떠나서라도 청혼에 대한 응답을 함에 있어, 특히 그처럼 갈망하는 청혼을 받은 상태에서 아무런 심적 두려움이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만큼 혼인은 중요하기 때문이며 상호간에 순결과 고상함과 신실함이 약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혼인에 앞서 누구나 고심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앞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포도원지기임을 밝힌바 있다(아 1:6). 그때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 지키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햇빛에 검게 그을어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이 멸시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도와줄 존재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적인 갈등을 이겨내고 기꺼이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는 그 여부에 대해서 오직 자신만이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이러한 술람미 여인의 조심스런 반응은 자신과 솔로몬 사이의 사랑이 혹시라도 단절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자신과 솔로몬의 사랑이 변치 않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우’를 가리켜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요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심지어 이스라엘 처녀들의 처녀성을 노리는 남자들을 상징한다고 하는 해석 등은 본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아가 포도원을 마치 교회를 상징하는 용어로 보고 이를 근거로 성도들이 악한 세력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것처럼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이러한 모티프는 포도원에 꽃이 필 즈음에 소년들이 여우를 쫓는 놀이를 하는 당시 이스라엘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놀이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우 놀이라고 하는 일종의 긴장감을 통해 솔로몬의 청혼을 받은 상태에 있는 술람미 여인의 심적 긴장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때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는 표현은 여우 놀이 철이 되었다는 시기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지금 술람미 여인이 느끼고 있는 이러한 긴장감이 자신뿐 아니라 솔로몬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에 대한 묘사는 다음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청혼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사랑 고백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아 2:16)와 비슷한 표현은 6장 3절과 7장 10절에서도 나타나는데, 세 곳 모두 둘이 한 몸이 되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자에게 있어서 남자는 자기 자신이며, 남자 또한 여자가 자기 자신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것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이라는 말씀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라는 내용과 같은 선상에 있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청혼에 담겨 있는 흥분과 감흥은 자칫 현실을 왜곡시키거나 아니면 필요 이상의 욕망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불안 요소는 오로지 혼인제도를 내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안에서만 해소될 수 있다. 혼인은 두 사람의 존재 의미를 최상급으로 승화시켜 나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였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의미에서 비로소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혼인제도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제공해준다. 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온전하게 세워나가는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제도라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친히 공감하고 체득할 수 있는 사랑 나눔은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4)와 같이 전적으로 혼인의 순결과 신성함에 의해서만이 그 능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
참된 사랑은 일부일처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헌신을 함축하면서 또한 상대방에게서 정절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한다. 이처럼 혼인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을 때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떼를) 먹이는구나”(아 2:16)라는 확신에 찬 응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양떼를 먹인다”라는 말은 전후 문맥을 벗어나는 의역이다. 본문의 ‘르오’(הער)는 ‘가축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목자가 이끈다’는 말이 아니라 가축을 놓아먹이는 상태를 지시하는데 이것은 가축이 스스로 풀을 뜯어먹고 있는 그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따라서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떼를) 먹이는구나”는 구절은 마치 솔로몬을 가축으로 (다음 구절에서는 노루, 어린 사슴으로 나타난다) 묘사하고,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백합화로 묘사함으로써 마치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품안에서 마음껏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묘사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한 쪽만이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왜곡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기쁨을 누리는 관계임을 말하고 있는 앞의 구절과 같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관계가 서로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으며, 나아가 솔로몬을 떠나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는 아담의 노래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고백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동일한 사랑의 고백과 같다.
따라서 술람미 여인은 기꺼이 솔로몬을 향해 그동안 신실하게 지켜왔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해 손을 힘차게 내밀고 있다. 이것은 솔로몬의 청혼에 대하여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인격적인 판단과 결단을 요한다는 요청에 대한(아 2:15)에 술람미 여인의 자발적인 응답이다. 때문에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향해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아 2:17)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본문은 “날이 숨 쉴 때까지,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내 사랑이여! 돌아오서소.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으로 직역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날이 숨 쉴 때까지,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즉 ‘온 밤 내내’ 또는 ‘밤을 지세다’는 상황을 묘사한다. 또한 ‘돌아오소서’(בס)라는 말은 ‘돌아오다, 돌이키다’(turn, return)로 번역되지만 이 동사의 주체가 솔로몬인지 혹은 밤이 되면 가축들이 어미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칭하는지 분명치 않다. 의미상으로 볼 때는 이 둘을 모두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베데르 산’은 ‘하레 바텔’(רתב ירה)의 음역을 따른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베델의 산’이지만 구체적인 지명을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바텔’(רתב)이라는 단어가 ‘나누다’ 또는 ‘쪼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가 희생 동물을 절반으로 나누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언약 체결식을 묘사하기도 하지만(창 15:10; 렘 34:18-19) 여기에서는 나누어진 두 개의 산봉우리로 묘사되는 여인의 가슴을 상징하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16절과 연관지어 볼 때 본문은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비유된 솔로몬에게 밤이 되어서 아침이 될 때까지 자신의 품안에서 평안을 누리라는 술람미 여인의 초청으로 이해되어진다. 따라서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기다리는 위치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솔로몬을 쪼개진 산 또는 갈라진 산의 어린 수사슴과 노루로 비유하면서, 날이 저물었으므로 돌아와서 자신의 가슴 사이에서 즐겁게 뛰노는 노루와 사슴같이 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에게 있어서 솔로몬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존귀한 존재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진실한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사랑의 대상으로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솔로몬의 사랑을 홀로 받고 있는 술람미 여인의 존귀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솔로몬에 대한 인내의 관용과, 솔로몬을 사랑하는 기쁨 속에서 한껏 승화된 사랑의 즐거움을 서로 나누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