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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따라 살았던 두 사람
성경본문 : 에스더 4: 13-17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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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나이가 든 임금님에게 아들은 없고, 딸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심한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궁궐 앞에 '누구든지 내 딸을 살리는 사람은 내 딸을 주어 사위로 맞이할 뿐 아니라, 왕의 자리까지 넘겨주겠다.'는 글을 써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3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3형제 중에
첫째는 산 너머 멀리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신비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사람들을 싣고 날아갈 수 있는 신비한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셋째는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신비한 약효가 있는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비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첫째가 궁궐 앞에 붙은 임금님의 글을 보고 다른 두 동생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세 형제들은 둘째가 가지고 있는 신기한 양탄자에 올라 탄 다음, 공주가 죽기 전에 궁궐까지 단숨에 날아갔습니다. 3형제가 궁궐에 도착해서 보니 공주가 곧 죽게 생겼습니다. 셋째 막내는 신비한 약효가 있는 사과를 공주에게 주었더니, 공주가 먹고 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3형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누가 공주의 남편이 되느냐?"는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신비한 망원경을 가진 첫째는 "아우들아, 내 이 신비한 망원경이 없었으면 그 글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둘째도 이에 질세라 ”형, 내 말을 들어요. 이 양탄자가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빨리 왕궁에 들어왔겠소? 그러니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두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셋째도 "내가 좋은 약을 줬기 때문에 살아났으니 내가 사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임금님이라면, 누구를 사위로 삼겠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임금님이 첫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그 신비한 망원경 때문에 이렇게 공로가 크다면 그 망원경, 지금 어디 있나?"
첫째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임금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군."
임금님의 말에 첫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임금님은 둘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때문에 3형제가 빨리 와서 내 딸을 살려줬지? 그런데 자네 양탄자, 지금 있나?"
둘째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갈 때에도 이 양탄자를 타고 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임금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자네도 손해 본 것 하나도 없군."
또 임금님이 셋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사과, 어디 있나?"
셋째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임금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나?"
그러자 셋째는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공주님이 다 드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임금님은 셋째에게 "자네만이 몽땅 다 손해 본 사람일세."라고 말하며 그를 자기의 사위로 삼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현대인의 특징을 묘사해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손해 보는 것’ 보다 ‘상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희생하는 것’ 보다 ‘축복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받으려고 하기보다, 먼저 주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거두려고 하기보다, 먼저 심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살려고 하기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살리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면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사(페르시아)제국의 4번째 왕인 아하수에로 왕(B.C 485-464) 때 일어난 한 사건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자기와 바사제국의 위대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모든 방백들과 각 도에 흩어져 있던 귀족과 장군들을 모은 후, 180일 간에 걸친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그 잔치의 마지막 날, 술에 취한 왕은 자신의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왕비를 불렀지만, 왕비는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잔치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를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비를 뽑도록 신하들에게 명했는데, 그 때 왕비로 뽑힌 여인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원래 에스더는 바벨론 포로 때 잡혀온 유대출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궐 문에서 문지기로 일하던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손에 의해 양육되어 바사제국의 왕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하만이 총리대신에 오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만은 총리대신인 자기에게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어 절을 하는데, 신앙을 이유로 문지기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 모르드개와 바사제국 내에 포로로 끌려와서 살고 있는 60만 이상의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하만은 왕을 찾아가서 은 일만 달란트,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은 340kg이나 되는 많은 뇌물을 주면서, 유대인을 멸하는 것이 왕의 통치에 유리하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왕비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도 알지 못하고, 12월 13일 하루 동안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 때가 아하수에로 통치 12년이 된 해의 정월 13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사제국에 있는 남녀노소의 모든 유대인들은 정확히 11개월이 지나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을 다 빼앗겨버리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입고 입던 옷을 찢어버리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재를 뒤집어 쓴 채 대성통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궐 안에 있는 에스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하닥이라는 내시를 통해 궁궐 안에 있는 에스더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하만의 꾀임에 넘어간 아하수에로 왕이 전국 각지에 내린 ‘모든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조서 초본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유대민족이 말살되지 않도록 왕에게 간절히 요청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 왕비는 내시 하닥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왕이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왕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왕 앞에 나아갔다가 왕이 금홀, 즉 금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임일 당할 뿐입니다. 왕비인 나도 왕을 만난지 30일이나 지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이 식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가 왕비이기는 하지만, 다른 후궁들처럼 왕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동족이 멸망당할 위험이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기도 왕이 부르기 전까지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메시지를 내시 하닥을 통해서 들은 모르드개는, 다시 내시 하닥을 에스더에게 보냈습니다.
다같이 13절을 보겠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 당신이 왕궁에 있다고 죽음을 당하지 않을 줄로 생각하지 마시오. 유대인인 당신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르드개로부터 한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모르드개에게는 용기가 었었다
우리는 모르드개의 용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더는 과거에 자기 손으로 키운 조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에스더는 조카가 아니라, 세계를 호령하는 바사제국의 왕비가 아닙니까? 그리고 왕비가 한 번 거절했는데, 협박하다시피 왕비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그에게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14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의 요청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겠지만, 당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질문할까요?
지금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문지기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보면 꼭 조폭이 누군가를 협박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통 용기 아니면 왕비에게 이런 말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모르드개에게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잘못되면 어려움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용기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어떤 대부호가 딸을 위하여 큰 파티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갑부는 수만 에이커에 이르는 땅과 수없이 많은 가축들과, 수백개에 이르는 유전과, 방이 29개나 되고 풀장이 딸린 대저택 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파티에 초청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딸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파티가 한참 진행된 후 그는 젊은이들을 모두 야외에 있는 풀장 곁으로 불러 모아 일렬로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풀장에는 온갖 뱀과 악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소. 누구든지 이 물속에 뛰어들어 반대편 끝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100만 달러나 1,000에이커의 땅이나 나의 딸 아이와 결혼할 수 있는 행운 중에 원하는 것 하나를 주겠소." 그러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첨벙!’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쏜살같이 물을 가르며 헤엄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물 밖으로 올라왔는데 그가 얼마나 정신없이 헤엄을 쳤는지, 반대편 끝에 이른 시간은 거의 올림픽 기록에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부자가 그 젊은이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100만 달러를 갖기 원하시오?"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부자는 "그러면 당신은 1,000에이커의 땅을 원하시오?"라고 묻자, 청년은 역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게로구먼."라고 말하자, 청년은 여전히 "그것도 원치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해진 부자가 "그러면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라고 묻자,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누가 나를 물속으로 밀어 빠뜨렸는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에게 용기가 있어 그가 물 속에 뛰어 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밀었기 때문에 그가 물 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용기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는 모르드개와 같은 용기 있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의 위기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편안 길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와 같은 용기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해 보는 것’ 보다 ‘상 받는 것’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 의를 위하여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희생하는 것’ 보다 ‘축복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궁궐에 있던 에스더는 하닥이 전해주는 모르드개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왕에게 나아갈 수 없다고 하던 에스더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다같이 15절과 16절을 보겠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왕의 규례를 어겼다는 죄목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왕에게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정을 낱낱이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나도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할 텐데, 모든 유대 사람들도 3일 동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스더로부터 한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에스더는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우리는 에스더의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심만 하면 일이 되는 줄 압니다. 목숨 걸면 모든 일이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로다”는 결단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로다”라고 한 에스더의 결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에스더가 목숨을 건 결단을 한 후 어떻게 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3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이 한 눈에 반하여 왕비로 삼을 정도로 외형적으로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고, 뒤늦게 결정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용기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에스더의 특징은 기도입니다.
그녀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왕의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면 왕의 진노를 사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왕의 마음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말합니다만, 용기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만 가지고 무작정 뛰어든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인간적인 용기로 망할 수밖에 없는 유대민족을 구원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주신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무슨 무기입니까?
기도의 무기입니다.
이 기도의 무기는 세상에 있는 어떤 무기보다도 뛰어난 무기인 줄로 믿습니다.
이 기도의 무기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과 3절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역사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작년 12월 바누아투에 선교 갔을 때 물이 없어 며칠 동안 고생하고 나서보니, 저는 샤워를 할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고 편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수원지에서 물을 생산하여 파이프를 통해 물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이프가 연결되었다 할지라도, 수도꼭지를 틀지 않으면 우리는 물을 단 한 방울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물을 얻기 위해서는 수도꼭지를 틀어야 합니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기의 스위치를 켜면 밝은 불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발전소에서 이미 만들어진 전기가 전선을 타고 우리 집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내를 밝게 하기 위해서는 전기 스위치를 켜야 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고, 우리가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트는 일인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전기 스위치를 켜는 일인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어제 어떤 청년으로부터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힘으로 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청년과 같이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닌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14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이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부분입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여기 ‘왕후‘라는 단어에 여러분들의 직업이나 형편을 집어넣어도 무방합니다.
만약 모르드개가 어떤 Shop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분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가 매니저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또 가정주부에게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가 가정주부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또 영주권을 어렵게 취득한 분에게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가 뉴질랜드 영주권을 얻게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또 사업하는 분에게는 이렇게 말할지라도 모릅니다. “네가 사업을 하게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건강을 주셨고, 물질도 주셨고, 재능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지금 무엇인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어떤 분들은 “정말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직장이 있고 사업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고 교회에서 직분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그냥 가지고 있다가 썩히라고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직업이나 기술이나 신분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재능 등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또 우리 중에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필요하셨기 때문에 뉴질랜드까지 오게 하시고, 크라이스트처치순복음교회 공동체로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래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유머입니다만, 다시 한 번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닭과 개와 돼지를 불러서 “너희들은 이제부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사람들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봉사하다가 올라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년 후에 닭과 개와 돼지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닭이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기는 하는데 시간을 몰라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꼬끼오!‘하며 새벽을 알려 주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기쁘셔서 닭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 후부터 닭은 상으로 받게 된 벼슬을 항상 자랑하며 흔들고 다녔습니다. 두 번째 개가 와서 하나님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도적이 많아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만 이상한 사람이 보여도 ‘멍멍!’하며 힘껏 짖음으로 집을 지켜 주었습니다.” 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3개의 다리를 가진 개에게 다리 하나를 더 주었습니다. 다리 하나를 선물로 받은 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네 번째 다리가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용변을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하사받은 다리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꼭 다리 하나를 들고 용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돼지가 와서 하나님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먹고 자고 놀다가 왔습니다.” 돼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저 돼지의 주둥이를 단칼에 치라” 그리하여 한 천사가 하나님의 명대로 돼지주둥이를 칼로 잘라버려, 돼지의 주둥이가 없어지고, 코와 입이 붙어 있어 먹을 때마다 숨이 막혀 곤란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는 자신의 코와 입이 붙어 있어 어려움을 겪다가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돼지 머리를 놓으면 복 받는다고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리석은 인간들이 너나없이 복을 받겠다고 돼지 목을 잘라놓고 제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웃으라고 만든 유머이지만, 이 유머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닭이나 개와 돼지 같은 동물들에게도 각각의 목적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살았습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 모습을 보시고 유대인을 구출해주시고, 오히려 하만의 추종자 75,000명을 하루아침에 죽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원받은 12월 14일을 부림절로 지금도 철저히 지킵니다. 오늘 이 시간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여러분들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깨닫는 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모르드개를 통해서 말씀하신 “네가 그 자리를 얻은 것이, 네가 그 것을 얻은 것이, 네가 그것을 하게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으시는 영적인 귀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