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이 야 기
2011-01
벽두(劈頭)에 찾아든 두 편의 시(詩)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모든 것은 벗겨지고 하얗게 눈으로 둘러 덮인, 이 겨울의 바람은 몹시 매섭다. 먼저 이야기에서 바람을 이겨내야 하기에 두르고 있던 잎을 벗어던진 쓸쓸하고 외로운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겨우살이를 보내기 위해서는 순조롭게 보내는 몸 고르기가 필요하다. 장석주 선생님이 “명자나무”라는 이름으로 써내려갔던 시가 무겁게 찾아든다.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만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른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 불행은 장엄열반이다. 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부는 바람에 움츠리지 말고, 흔들리는 몸을 곧게 세우면서 빗겨가는 바람결에 들떠가며 사는 것을 재미삼아 배워야겠다. 바람을 맡아 다스리는 신인 풍신(風神)내기의 살이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을 ‘바람의 아들’인 것처럼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聖靈)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8). 사람들은 그저 다 바람결이나, 물결이나, 잠결이나 혹은 꿈결 같은 그 속에서 제 잘난 멋에 살아가는 것이다. 고은 선생님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라는 시에서 다음 같이 이야기를 했다.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골몰이나 몰두를 하지 않고 그저 바람결을 따라서, 아침 맞을 차비도 차리지 않고, 가는 해를 잘 비껴가게 하고, 그러면서 나에게 마흔 여덟 개라는 나이의 테두리를 시작하기 위해서, 한해의 벽두(劈頭)라는 선을 넘어들었다. 낡은 부대를 터트리게 하는, 막 만들어져서 부풀어가게 될 새 술은 건실한 새 부대에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일진데, 그 “벽두(劈頭)”라는 말도 나의 생각에 첫머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고리타분한 ‘낡은 대가리를 쪼갠다’는 말로 들린다. 막말로 지금까지 재어왔던 ‘통박’을 순재나는 몸이 굽어지는 곳인 무릎, 허리, 어깨 등등, 여기저기가 통증과 함께 좋지가 않아서 편하게 해볼 요량으로, 작년 사월 초순경부터 시내에 계신, 긴 세월 속을 살아오신 교회 장로님으로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벌침을 삼사십 여대씩 맞아오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계속 해서 맞으려고 벌을 통째로 집에 가져다 놓고, 몸을 헐벗어 가며까지 벌에 쏘인 허물과 흉을 따라가며, 그 벌에 나의 몸을 내맞기고 있는 형편이다. 족히 몸에 일백 번 이상의 벌 치레를 했을 직함도 한데, 아직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것은 지금껏 성한 한쪽을 과시하듯 써온 과물의 덕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벌침을 맞이하는데 맨 처음 맞는 곳은 백가지나 모여 있다는 정수리인 백회(百會)에 맞고, 그 곳에서 한 치씩 양옆과 한 치 앞에 맞고, 이어서 목의 윗부분의 양쪽인 머리털 끝에 맞는 그런 벌들의 침이 나를 몹시 아프게 한다. 그 아픔은 마치 골이 통째로 쪼개지는 것과 흡사한 듯하다. 바로 그 머리통이 쪼개진다는 뜻의 말이 ‘벽두(劈頭)’라는 말이다. 성서에는 다음의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 아무쪼록 톡톡히 받는 그 벌 덕택에 뼈 마디마디와 관절 마디마디가 쪼개지는듯 한 아픔을 겪어내면서 고루해진 몸이 산뜻하게 치료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 꼴이 성서의 얘기대로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連絡)하고 상합(相合)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6). 그렇게 되어 올 한해는 나를 비롯해서 우리 공동체 사람들이 머리가 불편하면 벽두(劈頭)가 되고, 몸이 쳐져있는 사람들은 그 몸이 추켜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을 보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에서는 ‘쩐(錢)’을 밑천으로 삼고 굴러가듯 살아가는 사회라서 그러한가?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둥근 동전을 큰 테두리를 삼고 그 안에서 파닥거리며 살아들 간다. 1866년 경복궁을 짓고, 그러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군비 확충 등에 따른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이라는 화폐를 만들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을 하게 했다. 그 당백전이라는 명칭처럼 한 개를 가지고 일당백(一當百)의 가치를 부여해주어서, 그 가치는 평상시에 쓰여 지던 상평통보(常平通寶) 한 푼의 백배나 되었지만 실제 가치는 크게 이것에 미치지를 못하고, 결국에는 당백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쓰는 바람에 화폐 가치의 폭락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주 적은 돈을 이르는 말인 ‘땡전’ 이라는 말이 그 당백전에서 생겨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유안진 선생님이 지은 “다보탑을 줍다”라는 시 한편을 또 볼 수 있었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빠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시인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듯, 우리는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오늘도 대부분 땡잡으려고 우왕좌왕 몰려다니는 꼴로 살아들 가는데, 성서에서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라고 말을 한다(학개 2:8).성서는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예기를 한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 12:15). 불교에서도 집착을 버리라고 말을 한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동전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가는 디모데에게, 그의 선생인 바울은 생각해 두면서 지녀야 할 것을 ‘착념’하라는 말을 써서 다음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디모데전서 4:13). 나 역시 이런 일에 착념해야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 자신도, 지금도 스스로가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2-14).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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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대덕교회에서(이중삼 목사님) 공동체 식구들에게 겨울 방한복을 성탄절 선물로 전달하여 주셨습니다.
* 2010년 12월 25일 성탄절 오후에 경당교회에서(신동성 목사님) 함께 하셔서 초중고등부가 발표 행사를 새터공동체에서 가졌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오정교회9남선교회와9여전도회(11인).금산군모란회(9인).수영교회.김기홍.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이은주.최성재.예원교회(최동주).꿈이있는교회(허정무외6인).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1인).양오석.동춘교회221목장(김봉숙).주식회사EG(이광형).신평교회.채윤기(박현실).용원교회(임만재.어기선).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공주원로원교회.대한적십자사금산군추부봉사회(강정우.성삼순외1인).신영숙.신건태.새희망교회(차길선외3인).대덕교회.이원교회.진명구.금산군북초등학교(조기숙.전경원외14인).유성반석교회.추부농공단지협의회(4인).최영득.한국교회희망봉사단(김종생).영도교회(김영권).금산주부클럽(4인).충전교회.석현교회(전해견).오정교회10남선교회와10여전도회(18인).주식회사EG(1인).국민건강보험공단논산지사(3인).금산군모란회(5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