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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농암종택 모년에 이순우가 지은 백태적(白兌迪)의 행장(行狀)[13389]
신암백공행장(愼庵白公行狀)」이다. 그의 성명은 백태적(白兌迪)이며,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서두에 선대 가계에 대해 상세히 정리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였으며, 문예적 성취가 돋보였고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는 효성 또한 특출하여 부친이 중병을 앓자, 갖은 효성을 다해 극진히 섬겼다. 이와 함께 그가 평소에 실행한 업적과 덕행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했다. 심성 공부를 돕는 유교 경전 공부에 침잠했다. 수신과 덕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남겼던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퇴계를 존숭하여, 도산서원을 방문하여 이에 대한 공부의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집안에 많은 도서를 비치하고, 독서와 강학 및 연구 활동에 주력했다.
愼庵白公行狀淳愚旣銘寓軒公墓碣重珪氏復(忄+貇)曰。吾曾王父愼庵公。亦宜有狀。而回顧宗族。耆德凋謝。今無可謁之人(矣)。惟執事其以傳誦所聞。能道吾祖事。雖煩幸惠焉。淳愚辭曰。一之已匪堪。惡收再乎。旣而念平日所誦慕者。有異他族。先今因慈孫之請。以仲俛仰之感。亦一道也。謹據其家傳而略㸃掇焉。公諱兌迪。一諱兌見。字允迪。我白氏。本貫水原。中移大興。新羅火田徒松溸。公諱宇經。實肇祖也。高麗退隱文正公思柔。浦洲水原君揮七松。文簡公良臣。皆遠祖也。至淚庵先生忠簡公諱文實。遯居于嶺外之寧海。後享靈山祠。自是官不顯。而以儒業相傳。嘉靖聞有諱光國訓導。與凡足聞堂仁國。同學干李舍人天啓。再傳至源。進文宜教郞金泉察訪。卽寓軒公也。曾祖諱龍样。祖諱奎華。考諱起文。妣寧海申氏光岳女。宜城李氏濟身女。以健陵丁巳某月日生公。李氏出也。㓜穎悟異凡兒。及知讀書。句讀註辭。多能自辭。章句誦習之外。務修子弟之職。大爲先公所奇愛。而期勉尢至。成童從儕友做功。令文詞藻燦。然時邑宰●聚。鄕{士}秀才聚于那校。試以講製。公以羈貫往赴。往往居鬼。主倅歎之。貧加勸弊。自是華聞藉蔚。十七歲先公寢疾。公憂遑焦煎。不解衣帶。湯爐調燖。不委諸人。旣遭䘮。水漿不入口。哭(泣)不絶聲。居䘮一遵禮制。制關以母夫人命。一再應擧。旣不售於有司。則遂掇不爲。惟以經籍以自娛。甲午丁內艱。成易兩至。而尢致愼於送終之節。庶乎其勿之有悔也。卒喪分異而居。凡先人資產。無分寸私妻子。常有飢色晏如也。常以家貧地僻。不得見退陶文集爲恨。嘗一人陶院地。覽光明室所藏。復借得族家所藏。抄出妻覽幾篇。潛心玩索。殆忘寢食。壁上書貧桃其所不取窮視其所不爲十二字。又書九思九審等。諸日各有歲銘。以賢警省。嘗署其室曰。愼庵。詔子弟曰。愼者。爲學之始終節次也。始自中庸之成愼。大學之愼獨。以至愼言愼行。愼酒愼色。皆是物。有請業者。泯泯提敎。舋舋不倦。使之優遊自解。以是願從者多。而及公之喪。亦有布巾素帶者。可見其仁恩之人人深也。先是壬辰。伯兄無嗣續而歿。甲辰始以仲兄子鎬東承祀事。當伯氏喪餘日。公俱酒饌以祭。大傷痛不已。旣而遇痕。沉吟一旬。然猶恬定自力。不廢觀。書竟以十一月二十三日。終于寢。得年僅四十八。訃出。師當咸嗟悼曰。善士亡矣。用翌年某月某日。並十赤巖鞍峴負丙之原。配順天金氏處士世龜之女。先公十朔卒。墓子黃此子坐原。有一男一女。男曰尙束女適金洪然。尙束四男二女。男。長升遠。次照遠。出系鎬束。次赫遠。次㯏遠。出。女適中品錫申晩錫。金洪烈。男奎善。升遠男。重繒。女適金某。照遠男。重珏。重璟。重煥。女適李烋。赫遠男。重珏。重浩。女適申珽休。柳炳燦。南朝哲。南建模。樂遠男。重澤。重珙。重烋。女適李來台。尹敬一。金璂華。申晶錫男泰珏。泰㻋。申晩錫男。泰潤。公大性孝友。知能風箸。其事親也。洞屬之心。不忘於趾步。叱咜之聲。不作於親側。(其於)養生送死。致情無憾。遇親忌。乃曰支子之祭。禮難不許情交。可行日供祭品以伸其情。長於幹事。東魯先齊之重葺也。門族屬公監任。公所居梢間。獨爲{逐}日往來(監役)以底訖功。事二兄。友敬篤至。未甞有失色違言。椎之家族而篤於恩睦。處之鄕黨而周於信義。待人接物。壹以和敬。平居莊重自持。鄙俚之談。不出於口。暴慢之眞。不設於容。盖其資質本美。而讀書誦養之力。尢不可誣也。公儀貌豊粹。風采暎人。賢最貴賤。無不仰慕。有京居李性人。謫來居近。送其子受學。常語人曰。吾閱觀京鄕人物甚衆。來見有如公者。盖書。時之人望其表者。皆知爲端人莊士。至於文學。天性也。生長貧乏。(拾螢而讀。摘葉而書)。{雖不能顯於世。而}聲名已著於場屋之日。(而)中年後。每日對書冊。益襟危坐。硏竆其義。夜則誦數以貫之。常(日)從事於持循檢押之工。而勉勉易伎之。假以年歲。以亢其晩暮之業。則必有做措之遠到。而未到不殀之年。而寥寥以歿。便其一生躬修而心得者。無以藉見於世。天道之爲人所憾。因如是耶。且其文字著述。以程叔子七十著書之訓揆之。則勢有所未及矣。後來撥拾。又甚零星。豈还重可恨也(哉)。然其存而來逸者。皆按本可據。謹撰次一通。而梢以前聞。繼以所感如此。非敢爲屬辭垂信之地。聊以塞慈孫之(忄+貇)云爾。謹狀族後孫淳愚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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