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여행 규제 기간에 나는 백일몽을 꾸는 경지를 넘어 몸은 방에 있되 생각만은 시 공간을 넘나드는 유체 이탈의 상황에 있었던 적이 가끔 있었다. 차를 몰고 도시를 벗어나 인적 드문 바닷가를 상상하거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데인트리 열대우림 (Daintree Rainforest) 계곡을 달리거나, 낭떠러지와 연결된 경사진 도로, 또는 울룰루가 있는 호주 한가운데 광활한 붉은 사막을 질주했던 기억을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자가 격리의 무료함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운전하는 차는 호주에서 4번째 바꾼 차다. 첫 차는 Lada라는 소련제 차였다. 1990년대 초 구 소련이 붕괴하고 고르바초프에서 옐친으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ANU에서 유학생이었던 나는 주말이면 캔버라의 널찍한 공터에서 열리던 중고차 시장을 재미 삼아 다녔는데, 그곳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시기에 수입된 중고 자동차들의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저렴한 Lada를 사면서 나는 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있으나 마나 한 라디오는 잡음이 심했고, 운전할 때 안락하거나 편안함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차량의 거의 모든 너트 볼트를 조이거나 푸는데 공구 하나로 충분했고, 놀랍게도 차 열쇠가 없이도 ㄱ과 ㄴ을 연결해 놓은 형태의 쇠막대를 차 앞에 있는 구멍에 끼우고 돌리면 몇 번 덜컹대다가 시동이 걸리는 신통한 차였다. 군용 자동차를 껍질만 바꾸어 자본주의 시장에 내다 판 셈이다. 나중에 이 차의 원래 가격이 동급 일본이나 미국 차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그랬던가 “남자는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사고, 여자는 필요 없는 물건을 싸게 산다”라고.
지도를 보고 거기에 표시된 잡다한 표시와 선의 의미를 알아야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던 시절, 우리의 여행은 단순히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도와 주변을 확인하고 시시각각 상의하는 노력과 수고가 동반되는 경험이었다.
GPS 내비게이션에 의존하기 전, 호주의 모든 차 안에는 UBD Australia에서 만든 지도책이 거의 한두 권쯤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지도를 펴고 아내와 말다툼을 벌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로 목적지를 지나쳤거나 반대로 가고 있는 경우인데, 조수석에 앉아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를 반복하던 아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지도를 직접 읽어주기 시작하고 늦가을 석양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야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달하곤 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돌아보면, 90년대에 비교해 지금 세상은 너무나 달라졌고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편해진, 그래서 생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점점 덜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요즘 내비게이션은 음성으로 최단 거리, 교통 상황, 도착 예정 시간까지 알려줘 지도를 외우거나 방향을 판단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여정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설렘도, 지도를 잘못 읽어 계획에 없던 장소에서 보냈던 하룻밤도, 먼지 속 붉은 흙길을 헤쳐 나가던 흥분도,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수히 나누었던 대화도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주말 운전해서 딸 집에 갔다 오는데 옆이 조용해서 보니 아내가 졸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 우린 제대로 가고 있는가?
양지연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독일 괴테대 생물정보학 박사·카톨릭의대 연구전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