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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ikyoonline.com/article/80817EE44236D42C42C48435DED8454B (2017年1月20日)
〈信仰体験 舞台は地球――輝くSGIの友〉
韓国 副男子部長 黃在億さん
今月のSGI研修で来日した黃在億さん。10年ぶり2回目の研修。「2007年9月に参加した際に池田先生は、『10年後にまた会おう』と言われました。今回、勝利の報告ができました!」
<신앙체험> 무대는 지구-빛나는 SGI의 벗
한국 부남자부장 황재억씨
‘LG전자’ 연구소에서 중책을
불가능을 가능으로, 격동의 시대에 도전한다
이달 SGI연수차 일본에 온 황재억씨. 10년 만에 두 번째 연수.
“2007년 9월, 연수회에 참가했을 때 이케다 선생님은 ‘10년 후에 다시 만납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10년 만에 연수에 참석해 스승께 승리보고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가전전시회 ‘CES’. 여기서 일본 전자업체가 ‘유기EL’텔레비전의 신제품을 발표했다.
“이 최신기종의 패널을 공급하는 것이 우리 LG전자입니다. ‘유기EL패널’은 발광재료가 스스로 빛나는 탓에 기존 액정패널에서 불가피했던 발광다이오드(LED)컬러필터가 불필요하고, 더 얇게, 더 자연스러운 색을 화면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LG전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는 황재억씨(38.부남자부장)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TV연구소 개발기획팀 소속으로, CEO(최고경영책임자)의 의견을 받아 기획하는 소위 참모부서입니다. 개발, 해외공장, 마케팅, 홍보 등 10개가 넘는 부서가 관련된 일에 집중하고 스케줄대로 제품을 개발하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100여 개국에 공급하는 이 회사 제품모델은 1400개를 넘는다.
“만약 우리가 없으면 각각의 부서가 무너지고 제품개발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서 기원하고 힘을 다하는 날들입니다. 제가 이런 위치에서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공덕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가난한 소년 시대
10대 시절을 돌이켜보며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제목을 하는 모습이다.
재억씨가 태어난 해인 1978년에 어머니는 KSGI회원이 되셨지만 경제 상황은 당장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용직으로 토목공사에 종사했던 아버지는 월급을 술값으로 대부분 탕진하시고 가계를 압박했다. 어머니는 주위에 돈을 빌리러 가곤 했다.
“당시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는 증오도 품고 있었습니다.”
자포자기에 빠진 황씨는 집을 나와 친구의 집을 전전했다. 그런 재억씨를 걱정하고 찾아 준 것이 미래부 담당자였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그 담당님은 항상 작업복에 손은 기름이 묻어있었습니다. 당시 반항적이었던 저는 항상 핑계를 대며 제대로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번이고 찾아온 담당자. 어느 날 건네준 메모 용지에 이렇게 적여 있었다.
<가장 고생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게 될 권리가 있다.>
“그 분은 항상 말했습니다. ‘나는 이케다 선생님이라는 스승이 있다. 그래서 지지 않는다’ 그 때의 열의와 눈빛에 점차 ‘이 사람 말대로 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제를 처음 실감한 것은 아버지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버지도 시달리고 있었기에, 술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케다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효도를 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 성장하자고 진심으로 결심했어요.”
재억씨는 장학금을 받고 국립공과대학에 진학,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LG전자에 입사한 것은 2003년이었다.
“대학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배치된 개발팀에는 우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배움의 나날을 시작했습니다.”
항상 가슴에 있던 것은 “승부는 꼭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승의 지침이었습니다.
“학창시절과는 달리 사회는 명확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묻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로 이어져야 사회가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엔트리 모델이라고 하는 제품의 개발을 맡은 것은 입사 1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개발한 상품의 화면에 노이즈가 발생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입사 후 쌓아온 노력을 살려 황씨가 제안한 해결방안이 채용되어 상품은 무사히 완성, 판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 8년간 개발팀에서 힘을 키우고 2011년부터 현재의 부서로 이동했습니다.”
어머니의 기원에 감사
사회의 제일선에서 승리의 실증을 나타내는 재억씨의 모습에 신심의 공덕을 확신한 아버지는 창제에 힘쓰셨다.
그리고 2년 전,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심의 대환희를 전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신심을 시작하신 것, 그리고 저의 성장-. 그것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바라시던 것이었습니다. ‘일생 중에 남는 것은 신심밖에 없단다. 이케다 선생님의 지도를 평생토록 실천하라’는 것이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내년 한국의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위한 텔레비전 업계에서는 치열한 개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드시 이기는 것이 연구소의 사명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앞으로도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실증을 보이겠습니다.”
◇
황재억 LG전자 주임연구원
LCD TV 특허 4건 출원·유럽향 모델로 큰 반향 일으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까지 조절할 수 있는 ‘핵심 엔지니어’ 되겠다”
얇고 단단한 유리로 돼 있는 TV와 휴대폰 화면을 LCD, 즉 액정 표시장치라고 일컫는다. 현재 세계의 주요 전자업체들이 저마다 얇고도 화질이 선명한 LCD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무한 경쟁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LCD 글로벌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장 증설과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더 큰 위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건 세계 거대시장인 중국의 LCD 생산라인 투자에 국내 두 전자기업만 승인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LCD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L전자 LCD TV 연구소 주임연구원 황재억씨.
그는 현재 연구소에서 유럽향 모델을 전담하고 있으며, LCD TV안에 들어가는 하드웨어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TV의 껍데기와 소프트웨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말한다.
그는 유럽향 모델 중 밀리언셀러2모델 설계를 담당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LCD TV 관련 특허 4건을 출원했다. 또 메인보드 내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전원설계 파트에서 ‘전문 설계자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현재 3D TV와 스마트 TV 연구의 주축 멤버로서 하드웨어 설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황씨는 “한국의 LCD TV가 주목 받는 이유는 바로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최고의 제품을 설계하겠다’고 어본존에게 더욱 강하게 기원합니다. 고된 업무 속에서 막히기도 하지만 신심(信心)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고 여는 힘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전자제어계측을 전공하고 2003년 L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대학4학년 때 반드시 광선유포를 할 수 있는 직장을 기원했고 전공을 살려 설계업무 연구원으로 지금까지 7년간 하드웨어 설계와 생산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입사 초년 시절, 항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업무 특성으로 빠르면 밤 11시, 때론 밤을 새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계속 되는 과도한 업무와 늦은 퇴근으로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그로 인해 신심을 잊은 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사정으로 신심을 멀리하는 지역의 회원들을 보며 환희와 행복의 성을 구축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약한 일념으로 일을 하기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입사하기 전 ‘반드시 스승의 제자로서 사회에서 활약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초신의 마음으로 창제에 도전했다. 쉬는 시간마다 멤버들과 통화하고 창제를 하며 이기자고 다짐했다.
한 달 후, 갑작스럽게 회사조직이 변경이 되면서 자연스레 퇴근시간이 빨라지는 환경으로 변했다. 또 평소 모범적인 생활과 성실함을 눈여겨보던 직장상사가 조직책임자로 되면서 업무의 능력과 신뢰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때 “기원에 이길 것은 없습니다. 기원이 없으면 무엇을 해도 헛바퀴입니다. 기원하고 기원하며 또 철저히 기원하여 그 위에 대화를 하면 반드시 바뀝니다”라는 이케다 SGI 회장 스피치를 가슴에 새겼다.
▲날마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달리는 LG전자 주임연구원 황재억씨. 최고의 제품을 설계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2009년 7월 구미에 있던 회사가 평택으로 이전을 했다. 이사 후, 수원에서 사명을 맡았다.
그리고 “허공을 동여매는 자는 있을 지라도 조수의 간만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쪽에서 돋을 지라도, 법화경 행자의 기원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어서 1351쪽)라는 성훈을 가슴에 품고 ‘어느 곳이든 반드시 기원으로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활동과 창제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수원권 남자부장으로서 좌담회 3배의 성장, 보성회 2배 확대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처럼 청년의 열정으로 신심과 사회에서 승리한 원천은 바로 ‘사제보은의 마음’이라고 황씨는 말한다.
“‘사제’라는 긍지와 책임감은 모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또 현장활동을 하면서 많은 벗과 대화한 경험은 동료들과 원활하게 일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됐습니다”고 말한다.
바쁜 회사업무와 학회활동에 쉴 틈이 없지만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황씨는 겸손의 미를 알고 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마음이 누굴 만나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가 지난해 직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우수사원 표창과 인센티브를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광포의 사명을 다한다! 회사에서도 반드시 승리한다! 학회 남자부다!’라는 결심으로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청춘의 길을 힘차게 열고 있다.
황씨는 “앞으로 하드웨어 분야는 계속해서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IC(CPU) 안에 모든 기능을 규합해 통폐합이 될 겁니다. 결국 하드웨어 엔지니어로서 설계를 뛰어넘어 소프트웨어까지 조절할 수 있는 핵심 엔지니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전체 플랜을 기획하고 제품을 다루는 기획부서의 일도 함께 배워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2011년 ‘인재·약진의 해’, ‘제2의 야마모토 신이치로 일어서자’는 남자부 슬로건을 테마로 무한좌담회, 대왕자반과 2015 행복드림의 주체자로 성장하겠습니다”고 굳게 다짐한다.
▶경기 제1방면 부남자부장
▶화광신문 : 11/01/14 908호
첫댓글 와~~
오산지역에 살고 계시는 부장님의 체험담을 다시보니 더 반갑네요.
우리 부인부장의 남편이고, 미래부의 소중한 아빠이십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