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다시피, 모르핀(morphine)은 마취나 진통제로 많이 사용되는 일종의 마약이다. 모르핀은 단기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한 처방으로 사용되지만, 그 효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단기적인, 또는 일과성의 효능·효과를 빗대어 ‘모르핀 효과’라는 용어도 생겼다.
예컨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을 때, 전문가들이 단기적인 효과에 불과할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경우 ‘모르핀 효과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모르핀은 마취제의 일종으로 진통·진해(鎭咳)·진정·최면에 효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용(連用), 즉 자주 사용하면 만성중독을 일으켜 점차 증량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어지게 되고, 사용을 중단하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모르핀 중독이 심해질 경우 심신을 황폐하게 만들어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정부에서 모르핀의 제조나 판매를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연등축제에서 화려한 축제의 밤을 보내고 있는 사부대중들. 사진의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이 없음.
언젠가부터 나는 연등축제를 지켜볼 때마다 ‘불경스럽게도’ 모르핀을 떠올리곤 한다. 특히 화려한 상징물과 아름다운 연등들, 종로거리를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부처님의 탄신을 찬탄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불자들을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스님들과 나이 지긋한 불자들을 볼 때면 예외 없이 모르핀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혹시라도 저분들이 이 화려한 축제를 보면서 지금 불교가 처해있는 경각의 위기상황을 망각하면 어쩌나, 정말 불교가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저 축제의 몸짓처럼 역동적이고, 젊고, 화려하고, 거침이 없다고 착각하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근심이 슬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쓸 데 없는 기우, 또는 망상이라고 면박을 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혹시라도 저 연등축제가 적잖은 사부대중들에게 불교의 어려운 현실을 잠시라도 망각하게 하는 모르핀의 역할을 한다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불교의 교세는 이웃종교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어린이, 청소년, 청년 대학생 계층의 열세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불교의 미래가 있겠나, 싶을 정도다.
어린이 법회에 참여하는 전국의 불자어린이 숫자를 다 합쳐도 기독교 대형교회 한 곳의 어린이예배 참가 숫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거리에서 연등을 들고 깜찍하고 앙증맞은 몸짓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이 불자들을 보면서 혹시라도 망각했다면 끔직한 일이다. 매주 5만,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교회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범불교적 노력’에 힘입어 종로거리를 메운 수만 불자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혹시라도 잊어버렸다면 참으로 암담하다.
부처님오신날을 진정으로 봉축하는 방법에는 화려한 축제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온 뜻을 깊이 되새겨보는 것이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해서 무지에서 벗어나야 하고, 신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외도들의 허구를 날카로운 지혜의 눈으로 밝혀냄으로써 마침내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 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온갖 차별과 불평등을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생명존중의 사상으로써 근원적으로 깨뜨려버린 깊고 깊은 가르침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그토록 행하지 말라고 금했던 제사나 주술행위를 대놓고 했는데도, 그토록 간곡하게 전했던 전도의 당부를 외면했는데도, 오직 진리에만 의지하라는 가르침을 짐짓 외면했는데도 저렇게 많은 불자들이 올해에도 변함없이 서울 도심에 모여서 감동적인 축제를 벌이고 있지 않느냐며 안도감을 갖는다면, 만에 하나라도 봉축을 위한 축제가 불교를 망치게 하는 일체의 빗나간 비불교적 행태의 심각성을 망각하게 하는 모르핀으로써 작용한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연등축제가 모르핀 효과로 작용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연등축제는 화려한 몸짓에 앞서 지금 우리가 부처님께서 오신 뜻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발로참회의 내용을 담은 행사여야 한다는 생각을 냈다면 불경한 일인가. 연등축제와 모르핀을 함께 떠올리면서 참회진언을 자꾸만 되 뇌이게 되는 것은 부질없는 망상이 만들어낸 작용인가.
불기 2555년, 성도 2600주년을 맞는 해의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마친 분위기가 혹여 ‘정법 선양과 전법 의지의 충만함’이 아닌 ‘연극이 끝난 뒤의 허전함’에 더 가깝다면 부처님오신날을 잘못 봉축한 것이 된다는 점을 한국불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