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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라 산
서 시
이 시는 1948년 5.10단선반대투쟁을 계기로 제주도에서 일어난 4.3봉기를 다룬 장편연작시 <한라산>의 일부이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1
지금으로부터 어언 120여년 전
동아시아의 해군기지로서 조선이 결정된 지
80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1945년 불볕 여름
한 손에 <빵>과 또 다른 한 손엔 《해방군》의 탈을 쓰고
발톱까지 무장한 채 당당하게 상륙한 그들은 마침내
순결한 조선의 하늘과 푸른 산하를 두 토막으로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다시 40여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렀건만 총독부가 대사관으로 바뀌였을 뿐,
《창살없는 감옥》 식민지 산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침략사 120여년,
다시 씌여져야 할 피어린 민족해방투쟁의 한국현대사
압제의 사슬을 잇발로 뚝, 뚝, 끊으며 붉은 피로 얼룩진
그 장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우리 어찌 잊을 것인가!
바람부는 대로 쓰러지는 풀잎이 아니라면
결코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
2
이 땅은 아메리카의 한 주(州) 한 줌 피묻은 뼈가루로 날아 갔다 3 30여년만에 걸어 보는 이 학살의 숲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붉은 저녁노을이 멀리 관덕정 인민광장위로 지고 있었다
4 돌려 주자 그리하여
이산하 -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본명 이상백)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이륭'이라는 필명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87년 제주 4. 3 사건을 다룬 <한라산>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절필, 11년 만인 1998년 '문학동네'에 <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처럼>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다시 문단에 복귀했다. 시집 <천둥같은 그리움으로>(문학동네)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이룸), 자전적 성장소설 <양철북>(시공사)을 냈으며 체 게바라 시집 <먼 저편>을 엮어냈다. 2003년 현재 도서출판 열림원의 기획위원이며 국제민주연대의 인권 월간지 <사람이 사람에게>편집위원장으로 있다. 감회려니와 불현 듯 떠오르는 내 청춘의 암약(暗躍)이 나를 걷잡을 수 없이 추억의 급물살 속으로 빨려들어 가게 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아득한 세월의 강물이요, 참으로 오랜만에 젖어보는 역류의 강물이 아닐 수 없다. 내 지금은 비록 가슴에 폭탄 같은 시를 장착하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분노와 그 노여움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천둥 같은 그리움만큼은 여전히 삼엄하고 또 여전히 장렬하다. - 이산하 1980년대는 우리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다. 그 80년대의 시대정신 속에서 태어난 장시 <한라산> 또한 잊혀져서는 안될 작품이다. 그 시대의 어둠은 시인 이산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감옥살이를 시켰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제 우리는 <한라산> 복원판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원본'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가 저지른 침묵의 죄를 용서받는 일이 될 것이다. - 조정래 (소설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항쟁이 있었던 뜨거운 1987년 내내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거리에서 이 훈(당시 이산하 시인의 가명)과 함께 보낸 나는, 제주 4.3에 대한 격문을 은밀히 준비한다는 그에게 여러 현대사 자료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수많은 원혼이 잠들지 못하고 있는 제주도, 그리고 지금도 100만의 육신이 차마 썩지 못하고 묻혀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학살의 진혼곡을 울리는 일은 다시 절망하지 않기 위한 모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픈 숙제이다.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가 '복원판' <한라산<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전율에 휩싸인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서시 제1장 정복자 제2장 폭풍 전야 제3장 포문을 열다 제4장 불타는 섬 저자 후기 한라산 ▶ 이산하 지음 ▶ ISBN : ISBN : 8986462621 제주 4. 3과 이산하의 <한라산> ‘제주4·3 사건’을 다뤄 이 사건의 비극을 최초로 공론화했다. <한라산>은 16년 전인 1987년 3월 사회과학 무크지인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온 국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을 때였다. 출판사는 ‘초상집’으로 변했고 시인에게는 물론 <녹두서평>의 다른 필자들도 대부분 수배되었다. 결국 저자는 도피생활 끝에 1987년 11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발표 이후 한라산은 역사의 진실에 목마른 양심적인 지식인과 학생들의 필독시가 되었지만 공안정국을 위기 때마다 조성해온 군사정권의 폭압 아래 오랫동안 한 권의 책으로 엮이지 못했다. <한라산>의 발표 이후 4.3에 대한 민주세력과 국민들, 당사자인 제주도민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져갔고 최근에 국회 주도로 4.3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진상조사보고서의 발간에도 불구하고 4.3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산하 시인은 시집의 후기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보다 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벽이었다. 제주도는 40여년이나 입에 재갈을 물린 거대한 벽이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표정이 없었다. 그들에게 4·3은 마치 기억조차 하면 안 되는 너무나 끔찍한 악몽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탄압과 학살의 선봉에 선 서북청년단원들마저 그 누구 하나 양심선언을 하거나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군경이 갖고 있던 자료들은 거의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16년 동안이나 한권의 책으로 엮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미완성’이다. 16년 동안이나 출간도 ‘완성’도 미뤄졌던 것은 시인의 게으름 탓이 아니다. 복원판 <한라산>에는 한라산의 집필배경과 비화, 87년 대선을 앞두고 한건을 노리던 공안당국의 음모, 재판과정, ‘복원판’ <한라산>에 대해 밝힌 후기가 덧붙었다. 방문했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제주에 다녀온 이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마저 사라져버렸다. 또 그것이 다시 생기리라고 섣불리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한라산>의 완결이라는 숙제는 좀더 미뤄지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다. 판명되기는 했지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인쇄물이면 인쇄소에서 작업을 거부하던 공안정국의 서슬과 완화된 내용이라도 세상에 보여야 한다는 절박함의 타협이라고 시인은 밝히고 있다. 결국 한라산조차도 ‘자기검열’의 고개를 넘지 못했으며 시인은 “타협해서는 안 될 문제를 타협해서라도 풀겠다는 마음의 틈새를 스스로에게 들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은이 이산하 1982년 ‘이륭’이라는 필명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1987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절필, 11년만인 1998년 <문학동네>에 <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처럼>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복귀했다.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문학동네),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이룸>, 자전적 성장소설 <양철북>(시공사) 등이 있으며,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시집 <먼저편>(문화산책)을 엮어냈다. 현재 도서출판 열림원의 기획위원이며 국제민주연대의 인권 월간지 <사람이 사람에게> 편집위원장으로 있다. 인터뷰- 한라산 발간한 이산하 시인 칼날 물고 잠든 영혼 유채꽃으로 피어 무소유는 개인이기주의 극복할 사상 “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입니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습니다.” 당시 정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세상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온 국민의 분노가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김영호 사장한테 《한라산》 원고를 넘기며 ‘내 모가지를 걸고 쓴 거요’라는 말도 건넸을 만큼 당시 상황은 폭압적이었습니다.” 이어지는 혁명전사의 동맥을 제재로 ‘민족해방 서사시 4부작’을 쓰려고 했다”며 “우연히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김봉현·김민주 공저)〉를 읽은 게 《한라산》 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고 말했다. 만행은 나의 존재와 의식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시집 출간을 제의한 것은 김영호(현재 성신여대 교수) 사장이었습니다. 코뮤니스트가 쓴 원전을 시집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떠올리며 일을 수락했습니다.” 그 파급효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제주도민은 쉬지 않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며, 이에 국회주도로 최근에는 4.3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보다 더 말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탄압과 학살의 선봉에 선 서북청년단원들마저 그 누구 하나 양심선언를 하거나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군경이 갖고 있던 자료들은 거의 파기되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한라산》이 ‘복원판’인 까닭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인쇄물이면 인쇄소에서
작업을 거부하던 당시 공안정국의 서슬에 자기검열을 통해 첫 출간본을 간행했기 때문이다. 자기검열과 관련 시인은 “타협해서는 안 될 문제를 타협해서라도 풀겠다는 마음의 틈새를 스스로에게 들켜 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하며, 1장 ‘정복자’ 2장 ‘폭풍전야’ 3장 포문을 열다‘ 4장 ’불타는 섬‘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최근 불교를 소재로 한 《양철북》 을 출간해 불교계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양철북》 에 대해 작가는 “소설의 내용 중 85%는 사실”이라며 “비구니였던 외할머니와 보낸 유년기 체험을 토대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참다운 구도행을 모색하는 성장소설이다. 법운스님이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작가는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요 작가가 아니겠느냐”고 역설하고 있다. 관심이 지극하다. 이상주의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의 무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며 “무소유나 진공을 통해 완전히 버리는 것을 강조하는 불교사상은 향후 인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 골조가 프로이트가 역설한 남녀의 삼각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욕망의 역학관계가 계속 문학의 화두로 살아남을 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용맹정진하는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면서 독자들은 그가 다음에 발표할 역작에 대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들의 병영에서 짐승처럼 사육되어 왔던 수많은 날들
그 수많은 신음의 밤들을
누가 잊을 것인가
누가 잊으라고 하는가
l948년 4월 3일
《제2의 모스크바》
밤마다 먼저 간 동지들의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한라산
그 눈덮인 산하, 붉은 피를 흘리며 끝내 숨져 간
이름없는 해방전사들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내 이어지는 저 붉은 핏자국을
누가 잊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가
동상으로 썩어 문드러진 발가락을 자르며
뼈를 깎는 모진 고문에 여성전사들의 생리마저 얼어 붙는 밤
그들은 기어이 갔다
총알 박힌 다리를 절룩거리며 동지의 어깨에 매달려
진지로 돌아 가다
진지로 돌아 가다
끝내 쓰러져 버린 그들은 갔다
기어이 갈 곳으로 가고야 마는 것인가
분노없이는 갈 수 없는 땅
통곡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의 혁명전사들은 그렇게 갔다
尾帝의 각을 뜨다
적의 가슴팍에 불을 지르다
끝내 다 뜨지 못한 채
끝내 다 지르지 못한 채
적과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인공의 깃발을 그 밑에 죽기를 맹세한 깃발
………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산등성이마다 뼈가루로 쌓여 있는 흰 눈이며
나무가지마다 암호를 주고 받는 새들의 울음소리며
멀리 사람 실은 배 한척, 돌 실은 배 한척, 떠나는 바다며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허겁지겁 땅을 파헤쳐
씹고 또 씹었던 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며
마지막 남은 잎파리마저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불탔던
이 학살의 숲은
아직도 총소리로 가득하다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 날
빨갱이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 데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안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 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일곱도 안 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 날,바로 그 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허수아비의 졸개들이
이미 죽은 시체들을 대검으로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저 건 이덕구,저 건 김운민,저 건 김병남,남진,박남해……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주간에 걸린 짐승일 뿐이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었다
해안에서 불어 오는 모랫바람이 한라산을 미친듯이
뒤흔들고 있었다
이승만매국도당을 타도하자!
조국통일 만세!
제주빨치산 만세!
산은 다시 한 번 알몸이 되고
그 빈 숲에
그들은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았다
살아 흘러 가고 죽어 흘러 가고
마침내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흘러 갔다
몸 가릴 곳 하나 없는 이 참혹한 겨울숲
마지막 몇사람이 기적치럼 살아 걷는 이 학살의 숲
누가 그 날을 기억하지 않는가
오늘도 노란 유채꽃이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는
아! 피의 섬 제주도 그4.3이여,
우리의 심장에서 흐드러지게 피여나는 이 진달래꽃을
그 누가 꺾을 수 있으랴
돌려 주자
기름진 지주와 자본가의 살을 죽창에 꽂아
그들에게 돌려 주자
공장의 프레스에 싹둑싹둑 잘려 나간 노동자들의 손가락을
포크레인에 찍힌 철거민의 팔과 다리를
얼어 붙은 배추포기 같은 삶을 살다 농약 속으로 사라져 간
농민들의 그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그리고
푸르른 5월의 금남로를 승냥이처럼 할퀴고 간
저 피묻은 손을
찢어,
갈갈이, 찢어서,
《조국 아메리카》의 후예들에게 돌려 주자
똑똑히 들어라
우체통이 빨간 것은 빨갱이사상에 물든 탓이 아님을
바로 너희들 때문임을
한반도 인민들의 피가 붉은 것도 바로 너희들 때문임을
그리고 침묵하라,피로 맺어진 《혈맹 우방》이여
그대들이 두 눈 뜨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잠들 수가 없다
너희들의 칼날 위에서 우리는
잠들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잠들 수 없는 이 해방의 산하에
싹둑 잘려 나간 손가락이 아직도 팔팔 살아 뛰는
붉은 피가 있어
농약 먹은 가슴으로 타오르는 시붉은 피가 있어
탄환의 불꽃으로
탄환의 불꽃으로
저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 농민들의 여윈 손들이
숲을 이룰 때까지
마침내 해방의 숲을 이룰 때까지
적들의 심장에 불벼락을 안겨 주자!!
적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동지의 시체를 되돌려
받자,받자!!!
<한라산>이 세상에 나온 지 16년 만에 '공식적인 시집'으로 내는 감회도
1. 움직이는 세계
2. 진주해 온 미군
3. 침몰해 가는 남한
4. 두 개의 길
5. 대참화극
1. 꽃샘추위
2. 한 소년의 죽음
3. 총파업
4. '제2의 모스크바' 그 마지막 밤
5. 진군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하여
1. 어둠을 찢은 한 발의 총성
2. 불이여, 불길이여
3.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4. 빨갱이 사냥
1. 로울러 작전
2. 장밋빛 피의 거리
3. 죽음의 정글에서
4. 항쟁의 불꽃
5. 그리움
6. 비밀회담
7. 산으로, 산으로
8. 토벌대장 암살
9. 바비큐 작전
10. 날개 달린 게릴라
11. 수색에서 지다
▶ 시학사
▶ 2003-06-20
▶ 150쪽 6,500원
시인 이산하는 1987년 장시 <한라산>을 통해 당시까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던
<녹두서평>의 맨 앞에 실린 <한라산>은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다.
최근 정부가 민간인 학살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 인정했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원판’ <한라산>
한라산은 1987년에 녹두서평 창간호의 지면을 빌어 세상에 나온 후
시인은 이 후기에서 미완성의 이유를 1990년 석방 이후에 처음으로 제주도를
한라산의 출간본이 ‘복원판’인 까닭은 나중에 “이데올로기의 마지노선”을 넘은 작품이었다고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본명 이상백)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역사 폭로한 핏빛 절규 민주화 견인
16년만에 복원판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출간한 이산하 시인은 한라산을 집필하던
“《한라산》은 1987년 3월 사회과학 무크지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돼
시인은 《한라산》 집필 경위에 대해 “1986년 여름부터 백두산 ·한라산·지리산·무등산으로
“미군의 지휘와 통제 아래 이뤄진 군경토벌대와 서북청년단의 잔혹한 양민학살과
한라사 필화사건으로 저자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987년 11월 구속됐지만,
아직 진상규명이 밝혀지지 않은 4.3항쟁과 관련 시인은
장시 《한라산》은
《양철북》 은 젊은 수좌 법운스님과 문학소년 철북이 함께 여행을 떠나며
작가는 《양철북》 출간 전에 산문집 《적멸보궁 가는 길》 을 펴냈을 만큼 불교에 대한
불교에 애정을 갖게 된 경위에 대해 저자는 “개인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불교사상과 문학의 연관관계에 대해 작가는 “인류사에 길이 남는 고전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진화심리학을 통해 불교를 규명하려 노력하고, ‘정신적인 무소유’라는 공안을 들고
유응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