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탄소에 대한 저주, 도 넘었다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탄소에 대한 저주, 도 넘었다.
2022.12.07 동아사이언스 (요약)
지구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는 ‘탄소’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심각하다. 지구촌의 산업현장과 일상생활에서 탄소를 퇴출시켜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탄소를 줄이자는 ‘저탄소’(low carbon)와 탄소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탈탄소’(carbon free)가 그런 요구였다. 이제는 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배출하는 탄소도 다시 회수해야 한다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또는 net zero)'이 대세다.
물론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탄소’는 화학에서 사용하는 원자번호 6번의 ‘탄소’가 아니다.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말한다. 그들은 ‘탄소’와 ‘이산화탄소’의 구분은 화학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의 대기를 뜨겁게 만드는 온실가스인 수증기‧메탄(천연가스)‧암모니아‧오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애써 외면해버린다. 반면에 이산화탄소가 녹색 식물을 살아 숨 쉬도록 해준다는 사실도 무시한다.
우리의 맹목적인 저주와 달리 탄소는 생명의 원소다. 탄소가 없으면 생명 현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명체의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고, 복잡하고 정교한 생리 현상을 가능하게 해주고, 후손에게 유전 정보를 전달해주는 모든 일이 탄소의 화합물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탄소는 세상에서 6번째로 가볍고 작은 원소이다. 그런 탄소의 화학적 다양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지금까지 화학적으로 확인되어 미국화학회의 CAS에 등록되어 있는 화합물의 70% 이상이 탄소의 화합물이다. 대부분의 탄소 화합물은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생명 현상과 직접 관련된 단백질과 DNA의 종류만 해도 6000만 종이 넘는다. 모두가 탄소의 독특한 양자역학적 성질 덕분이다.
탄소는 인류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흔히 청동이나 철과 같은 소재를 근거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적 구분도 탄소로 구성된 식량‧섬유‧염료‧의약품‧목재‧종이의 생산이 전제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장작과 같은 임산연료를 가공한 탄소 덩어리인 ‘숯’(charcoal)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졌다. 인류 문명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화석 연료도 모두 탄소의 화합물이다. 정보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전기도 대부분 석탄을 비롯한 화석 연료로 생산했다. 탄소를 이용해서 생산하는 에너지가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우리의 과도한 화석 연료 소비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제‧사회‧정치‧문화‧보건의 문제가 탄소 때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억지일 수밖에 없다. 탄소가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와 낭비를 부추긴 것도 아니다. 화석 연료의 소비를 줄이고,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면 반드시 지구 온난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구의 대기는 화학적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복잡계이고, 그런 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비가역적(irreversible)일 수밖에 없다. 결국 화석 연료의 사용을 포기한다고 지구가 다시 식어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일 뿐이다.
탄소는 우리가 거부해야할 악(惡)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선(善)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탄소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 문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 과학이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인문‧사회‧문화‧예술과의 적극적인 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탄소문화’(carbon culture)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막중한 시대적 당위다. 특히 현대 과학기술의 가치와 성과를 분명하게 평가해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친(親)탄소적이고, 친(親)과학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소가 인간의 존재와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과학적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