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4:16~25
제목: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라
● 기독교는 신약교회의 구성원일지라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신약교회의 성도들이고 혈통 상으로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마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돌맹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신데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구약교회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믿는 신앙이고 신약교회는 이미 오신 메시아를 믿는 신앙입니다. 구약교회가 믿고 기다리며 학수고대 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입니다.
요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야)로 믿고 신앙고백한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구약교회 때로부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신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선조로서 보여준 믿음, 상황과 조건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등은 이방인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말씀을 보면, 이방인인 백부장이 이스라엘 사람들 중 아무도 소유하지 못하는 놀라운(astonished, marveled) 믿음을 소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8: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astonished, marveled)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예수님께서 놀랍게 여겨 진실로 이르시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을 하셨던 대상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인 백부장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인데요. 이에 비해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오히려 천국에 앉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기독교는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는 신앙입니다. 신약교회 기독교 신자의 이신칭의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은 칭의를 연속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독교 신자들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롬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23.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아브라함의 이신칭의는 율법에 속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신칭의의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도 연결되며, 혈통은 아니지만,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이 우리 신약교회 성도들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신칭의를 빙자하여 입으로만 머리로만 믿는다고 위선을 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참 믿음이 없는 자들을 겨냥하여 성경은 (이신)칭의의 결과인 행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은 칭의의 결과가 성화라고 봅니다.
약2: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구원은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선택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칭의를 받습니다(以信稱義).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가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칭의의 결과인 성화입니다. 위 야고보서 말씀은 칭의의 결과와 열매인 성화,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최근에 애완동물이 죽은 것 때문에 좌절하고 낙망하여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그런 분들은 부모님이 죽으시면 그 정신적 충격은 어떻게 감당을 하려는 지? 궁금하고 의아합니다. 부모님이 죽은 슬픔이 100이라면 자식이 먼저 죽은 슬픔은 10000은 될 겁니다. 강아지가 죽은 것도 슬퍼하며 통곡을 하는 멘탈이 혹시라도 자식이 먼저 죽으면 어찌 견뎌낼 것입니까? 자식이 먼저 죽은 정도의 절망을 견뎌내는 정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아끼는 독자를 제물로 바치고자 한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히11:8; 약2:21).
창22: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처럼 독자까지도 하나님께 아끼지 아니하고 드리는 큰 믿음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하나님께서도 연약한 우리에게 그런 큰 시험을 주실 확률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최소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고자 하시는 마음은 가지고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연약함 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연약한 자녀로 인정하며 도우시고 여전히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수시로 묵상합니다(시1:2). 그리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이유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6:6). 우리가 지금 당장에 아브라함처럼 독자를 바치는 특별한 믿음을 갖기는 어려워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승계한 믿음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서 성화의 삶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즐거운 주말과 행복한 가정의 날을 기원합니다.
아멘!
아멘22
아멘33
주일이 되기 전 주말에 좋은 묵상을 읽고 미리 은혜를 받고 주일을. 준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격려의 댓글에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루터가 야고보서를 처음에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지만 두번째 책에서 부터는 그 말을 뺐다고 하더군요. 야고보서가 없었다면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이 정상적인 믿음이라고 크게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기는 신자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다니고 성경도 읽고 하는데도 전혀 변화되지 못하고 지식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을 봅니다. 껍데기만 추구하다가 마지막 때 크게 후회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드네요. 마음이 겸손하지 않고선 믿음 갇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반차를 따라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살아가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말씀으로 정리를 해주셔서 유익하며 은혜가 됩니다.
네, 깊이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공감합니다33
깊고 풍성한 댓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쉬운 듯한 전개이지만 복음의 핵심이 잘 드러나서 저에게 유익이 됩니다.
좋게 평가해 주신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