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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칼빈, 하나님의 예언
장코뱅 추천 2 조회 232 24.11.22 08:23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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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11.22 08:36

    첫댓글 칼빈은 신학, 교리는 물론이고 경건을 겸비한 훌륭한 성경교사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언이라는 짧은 묵상을 읽기만 해도 성경의 핵심을 알게 해줍니다.

  • 24.11.22 16:17

    네,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11.22 08:38

    <호크마 주석>
    말4:5,6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 이라는 말은,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1절 해석 참조."선지 엘리야" - 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는 이유는, 양자의 사역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눅 1:17).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 함은, 그 때에 유대 사회가 타락하여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그런 도덕적 타락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 도덕적 개혁이 진정한 종교를 발생시킬 수는 없으나, 진정한 종교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영접할 만한 준비는 될 수있다.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도덕적 개혁을 힘쓴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에 오시는 메시야를 영접하게 하려는 것이다(눅 3:4 - 6).

  • 작성자 24.11.22 08:39

    <매튜 헨리 주석>, 엘리야 약속 (말라기 4:4-6)

    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한다(4절).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것을 지켜 행하라. 또 "내가 호렙 산에서 그에게 명한 법," 곧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율례와 법도" 로 준 불 같은 법을 지키라. 10계명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법, 의식법, 형법 등 그때 거기서 준 모든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을 살펴보자.

    1. 구약 성서의 첫 기자 "모세" 에 대해서, 마지막 기자 "말라기" 가 언급하고 있는 영예로운 말을 보자.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그를 "내 종, 모세" 라고 불렀다.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성서 기자들이 비록 서로 엄청난 시대적 차이를 두고 살고 있지만(모세에서 말라기까지는 근 1000년이다), 그들은 모두 일치하고 있고, 서로 지원하고 있으며, 동일한 성령의 작용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모세의 율법" 에 대한 영예로운 말을 보자.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명하신" 바이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법이라고 시인하셨고 그것을 "모든 이스라엘을 위해," 그 나라의 국법으로 명했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 작성자 24.11.22 08:40

    "그의 율법을 존귀케 할 것이요 영예롭게 하리라."
    율법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바로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혜택을 우리가 기대한다면(히 8:10),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그 명령 중 어떤 것은 영구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율법과 관련해서, 우리의 의무를 요약해 보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율법을 망각하는 것이 그것을 범하는 모든 사례의 밑바탕이다. 그것을 올바로 기억한다면,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율법은 필요할 때마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즉 명령 자체를 기억할 뿐 아니라 그 효력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율법을 기억하라" 고 명령하는 것이 양심의 직능이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당부가 왜 여기에 나와 있는가?

    (1) 이 예언자는 많은 타락상을 책망했으며, 예배와 생활의 불법성을 많이 지적했었다. 이제는 잘못된 바를 개선하기 위해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고 당부할 뿐이다. "그 법칙을 지키라.

  • 작성자 24.11.22 08:41

    그렇게 해야만 모든 것을 하게 되리라." 그는 저들이 "이미 받은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라" (계 2:24, 25).

    (2) 교회는 오랫동안 예언자들을 향유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상한 사자들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책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세의 율법이 폐기되었다" 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때가 지난 달력이 아니다. 새로운,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못쓰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억하자. 예언자들이란 율법을 확인해 주고 해설해 주고, 그 의무를 강화해 줄 뿐이다. 따라서 계속 "율법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지식의 상당한 진보를 이룩한 지금이지만, 그 진보된 지식으로 처음의 신앙 원리를 더 잘 지키도록 해야 하는 법이다. 예언서를 연구하는 자들, 또 묵시록을 연구하는 자들은 여전히 모세의 율법과 네 복음서를 기억해야 한다.

    (3) 이제는 교회 안에 잠시 동안 예언이 그치게 되었고, 예언의 영이 "복음의 사자" 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될 터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 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 법칙에 따라 살게 하며,

  • 작성자 24.11.22 08:41

    그 약속을 믿고 살게 하라.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이 있는 이상 환상과 계시를 못본다하여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우리의 안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가장 "확실한 예언의 말씀" 이요, 우리가 "영들을 시험할" 시금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예언자들은 없어도 성경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그의 뜻을 준행할 수 있다.

    (4) 저들을 메시야의 임재와 그의 복음의 전파, 그리고 그의 나라의 건립을 기대해야 한다. 바로 그 대망에서 저들이 "율법을 기억해야" 하며, 거기에 준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메시야가 "기꺼이 복종한 자들" 에게 가져다 줄 위로를 기대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고, 그 율법이 주는 빛에 따라 살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혜택을 누리게 되리라. "가진 자," 그리고 그 가진 것을 잘 이용하는 자에게 "더 주고, 풍성히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산 소망을 간직해야 하며, 엘리야 예언자의 출현에서 그 시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5,6절). "보라, 내가 엘리야 예언자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예언의 영은 잠시간 그쳤고, 단지 율법에만 의지해야 하지만,

  • 작성자 24.11.22 08:42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각자에게서 그것이 소생하리라" (눅 1:17). "율법과 예언자는 요한까지니라" (눅 16:16). 저 새벽별이 등장하기까지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교회의 동일한 빛으로 존속했다.

    하나님의 증인이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아니하듯이, 증인이 없는 교회도 하나님은 허락지 아니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의 광명은 점점 높이 떠 올라 대낮에 이른다. 저들이 지금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실 것이다. 곧 엘리야를 보내시리라.

    다음을 관찰하자.

    1. 여기서 보내겠다고 한 이 예언자는 누구인가? 그는 "엘리야" 라고 했다. 유대 학자들은 아합 시대,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엘리야라고 이름하는 그 예언자를 뜻한다고 보려 한다. 그러나 또 어떤 자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같은 영(정신)을 가진자를 예언자라고 본다.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물었을 때, 바로 그 같은 여러 감정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당신은 엘리야입니까? 곧 그의 이름을 지닐 그 예언자입니까?" (요 1:19-21)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세례 요한이 오리라 했던 엘리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마 17:10-13).

  • 작성자 24.11.22 08:43

    또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이는 오리라 했던 엘리야니라" (마 11:14). 또 "보라. 내가 내 사사를 보내노라" 고 했다(마 3:1; 11:10).

    엘리야는 대단히 내핍적이고, 고행을 하며, 하나님께 대한 열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 죄를 견책하기에 대담했고, 변절자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의무의 자세로 향하게 하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세례 요한도 바로 그 영과 권능을 힘입었으며, 엘리야처럼 회개와 개혁을 전파했다. 엘리야시에 엘리야에 대해 그랬듯, 모든 사람이 요한을 예언자로 보았고, 그의 세례는 "하늘로부터" 유래한 것이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나님은 이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하려 할 때, 이전에 그가 쓰셨던 그런 사람을 다시 나게 할 수 있으며,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엘리야라는 사람의 영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2. 그는 언제 올 것인가-메시야 출현 전이다. 메시야 출현은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요, 유대 교회와 민족의 파멸의 서곡이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의 도래" 라고 일컬었다. 세례 요한은 "다가올 진노" 를 말해 줌으로써 이 사실에 대한 정당한 경고를 주었다.

  • 작성자 24.11.22 08:44

    그리고 도피의 길을 가리켜 준 것이다. 또 "그리스도의 손에 키" 가 있어서, 그것으로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케 할 것을 알려 주었을 때, 바로 그 일을 한 것이다(마 3:7, 10, 12 참조).
    그리스도가 처음 오셨던 그날은 그가 다시 오실 그 날과 같았다-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큰 기쁨의 날이요, 그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의 날" 이다. 이 날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파견되었다. 이 사실을 충고하여, 사람들로 준비하고 맞이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3. 파견된 사명은 무엇인가-" 그가 아비의 마음을 그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그 아비에게로 돌리리라." 즉 그가 이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런 시도를 할 것이다. 그의 교훈과 세례가 직접 그 같은 역량을 발휘할 것이요, 많은 사람에게서 성공을 거두리라.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하나님의 일의 도구가 될 것이다. 즉 여호와 저들의 하나님에게로 돌아서게 하리라. 그래서 그들로 그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리라" (눅 1:16, 17).
    영혼을 하나님과 그 의무에로 향하게 함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한 최상의 준비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요한에 대해서 이 같은 약속이 있다

  • 작성자 24.11.22 08:44

    (1) 그가 사물의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즉 자기 백성의 자녀들에게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죄와 불경건의 강력한 위세에 대담하게 맞서게 할 것이요,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파멸하리라. 이것을 가리켜 "만물을 회복하려는 그의 도래" 라고 했다(마 17:11). 즉 그것들을 바로 잡아, 바른 길로 흘러가게 하기 위한 도래라는 것이다.

    (2) 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교훈을 전하리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요, 변화를 초래하리라. 그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빠르고, 권능있으며,"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분별" 한다. 아직도 철저히 개혁되지 아니했던 많은 심령들이 그의 사역으로 인해서 양심이 일깨워지리라. 그의 사역에는 바로 그러한 영과 권능이 있다.

    (3) 그가 자녀들과 더불어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고, 아버지와 더불어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켜(혹자는 그렇게 읽는다), 하나님과 그 의무의 길로 인도하리라. 그는 노소를 막론하고 회개를 촉구할 것이요, 그의 수고는 헛되지 않으리라. 늙어가는 많은 아버지들, 자라나는 많은 자녀들이 그의 사역에 의해 개혁되리라.

    (4) 그리해서 그는 인척들 사이에 사랑과 일치감을 소생케 하고 확신케 해 줄 것이며,

  • 작성자 24.11.22 08:45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결속되게 함으로써 서로 간의 유대가 더욱 확실하게 할 것이다. 그는 "한 마음" 과 "한 영혼" 의 신실한 모든 신하들이 될(행 4:32) 하늘 나라를 위해서 길을 마련할 것이다.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가 될 것이요, 모든 원수를 멸절하리라.

    4. 어떤 견해로, 이 사명을 띠고 올 것인가?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으려" 함이다. 즉 이스라엘 땅, 유대 나라를 멸할까 함이다. 저들은 저들의 불경건과 불인내에 의해서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는 모든 악을 구별해낸다.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로 칠 준비를 하셨다. 그들을 완전히 파멸하며, 집안을 치며, 죽은 자를 저주로 칠 각오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저들이 회개할는지를 다시 한 번 시험하려 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저들에게 회개를 선포케 하려고 세례 요한을 보내신다.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의 회심이 저들의 멸망을 막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자도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또한 그의 분노를 어느 때고 기꺼이 돌이키려 하신다. 저들이 하나같이 회개했다면, 저들의 회개가 하나님이 바라는 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 작성자 24.11.22 08:45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요한의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거절했고, 그래서 결국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되고 말았다(눅 7:30). 또한 저들의 땅 역시 저주를 받아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있다(메튜 헨리는 이스라엘 독립 이전의 사람임-역주).
    징계, 곧 십자가로 "그들을 치는 자에게로 돌아서지 않는" 자들은 저주로 공격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사 9:13). 이제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주로" 칠 때, 파멸할 때가 다가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어떤 사람은 구약 성서의 마지막 말이 저주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저주가 지상을 위협하고 있다(슥 5:3). 우리는 그것이 우리 탓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그리스도를 우리로 환영케 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신약 성서는 복 중의 복으로 끝났다. 그 복이 이 저주를 물리치고 우리를 포옹하도록,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포옹하도록 하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24.11.22 12:1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신약 시대를 의미하군요. 곧 예수님의 초림으로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열림을 의미하겠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칼빈이 이미 잘 해석해줘서 감사하네요.

  • 24.11.22 15:09

    공감합니다.

  • 24.11.22 16:53

    공감합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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