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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신학공부 제 4계명의 토요일이 어떻게 일요일로 대치될 수 있는가?
코람데오 추천 3 조회 331 25.02.10 07:59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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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2.10 08:14

    첫댓글 좋은 포스팅입니다. 특히 안식교나 안증회에 미혹된 분들이 잘 읽고 정신을 차리면 좋을 내용입니다. 일반 성도들도 주일 예배에 대한 개념을 잘 정리하게 하는 글입니다.

  • 25.02.10 11:02

    네, 공감합니다. 이단들이 주일 예배를 태양신 운운하며 공격을 많이 하지요.

  • 25.02.10 08:22

    마12:8
    <호크마 주석>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 <눅 6:1-5 주제 강해 '안식일과 예수님과의 관계' 참조>. 막 2:27에는 안식일 제정(制定)의 근본 목적을 정의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마태와 누가는 이를 생략하고 있다. 마태는 1-7절의 말씀의 요점을 제사와 자비의 대조적 비교나 안식일의 기원은 사람의 안식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에 두지 않고 오히려 기독론(Chriistology)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였다. 랑케(Lange)에 의하면 주님은 그 자신이 신령한 안식이 되시므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안식일 준수(observance)가 되며 그를 떠나는 것은 바로 안식일의 파괴가 된다고 하였다. 특히 '주인'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대한 주체적 운용자(運用者)라는 측면에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는 안식일을 소유하고 주관하며 안식일 규례를 해석하며, 지금까지 가려워졌던 안식일이 지닌 참 자유함과 참 평안을 들추어내 모든 이들에게 그것들을 향유(enjoyment)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 25.02.10 08:22

    이런 관점에서 칼빈(Calvin)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씀은 바로 안식일에 얽매여야 하는 의무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권세를 예수께서 받으셨다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율법을 멍에에서 벗어나서, 멍에를 대신 져 주시는 주님에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다. 실로 인간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종말론적 메시야이신 인자, 곧 예수는 그 인간들을 위해 안식일을 개방하고 계신다.

  • 25.02.10 11:06

    @장코뱅 호크마는 칼빈의 설명을 종종 인용하더군요. 좋은 내용 같습니다.

  • 25.02.10 08:24

    막2:28
    <호크마 주석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먼저 '이러므로'란 안식일 논쟁의 비약적 결론구를 제시하기 위한 접속어라 할 수 있다. 실로 예수는 당신이 가르치시는 진리에 대해 단정적이고 선언적으로 선포하심으로써 당신의 초월적인 권위를 나타내 보이신다. 유대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에 인간의 전 생활 영역을 안식일 규정으로 얽매어 놓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져들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심으로써 안식일 관행은 이제 당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새롭게 규명(糾明)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특히 이 같은 선언은 예수께서 안식일 규정을 마음대로 뜯어 고치시겠다는 자기 고집에서가 아니라 그 규정을 새롭고도 온전하게 주석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는 당신의 자격과 신분을 선언하신 것이다(Donald W. Burdick). 한편 본문의 '인자' 선언은 마가가 관심을 가진 바 '인자 기독론'에 조화를 이룬다 즉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10절 주석 참조) 드러난 바 영광스런 하늘의 인자는 지금 바로 이곳에 나타나셔서 죄 사함의 권세를 행사하실 뿐 아니라 특히 안식일 논쟁의 결론을 내리시는 권위를

  • 25.02.10 08:26

    가지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Grant, Taylor).

  • 25.02.10 11:15

    @장코뱅 인자 기독론? 또 하나 듣고 배웁니다.

  • 25.02.10 08:28

    눅6:5
    <호크마 주석>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로서 그리고 인자로서 안식을 어떤 정신과 방법으로 준수하셨는가를 분명히 밝혀준다.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입법자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26) 제 7일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며(창 2:1-3),첫 사람 아담의 타락 후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을 다시금 회복시키고 인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실 자이기 때문이다(히 4:1-11).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같은 안식일 제도를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규례로 주신데(출 20:8-11;신 5:12-15)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다. (1) 하나님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이다.(2)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 중에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성별시켜 주신데 대한 표징으로 삼기 위해서이다(출 31:13). (3)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신5:15). (4)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이다(출 20:10). 이상에서 우리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 25.02.10 08:29

    것이고 아울러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이같은 안식일 제도의 근본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제 7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는 금기조항에만 연연한 나머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주신 선한 규례를 오히려 인간의 행동을 제어(制御)하는 악법으로 변형시키고 말았으니 그 어리석음과 잘못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예수의 선언에 비추어 볼 때 안식일 준수가 신자들의 신앙 성장에 장애가 되는 외적인 형식주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주일 성수는 바리새적인 형식주의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답게 자발적인 순종과 섬김의 자세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25.02.10 11:27

    @장코뱅 안식일 제도의 근본 목적을 깨달으면 기독교 주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 25.02.10 09:30

    요20:1
    <호크마 주석>
    안식 후 첫날 - 이는 일주일의 각 요일에 해당하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올 중심으로 요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안식 후 첫날'은, 하루의 해가지는 시간부터 다음날 해지는 시간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유대인의 방식에 따른다면 토요일일몰 후부터 일요일 일몰 때까지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첫날'(* ,미아)은'하나'를 뜻하는 기수인데, 당시에 '첫째'(* ,프로토스)를 뜻하는 서수로 표현했던 일반 용법과는 다른 표현이다. 혹자는 이것이 셈어 (Sem 語)적 표현법의 영향이라고 보는데(Barrett),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히브리어나 셈어에 그런 표현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근거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어두을때 - 마태의 '미명'과 마가의 '해 돋을 때'라는 표현에 비해 다소 이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흑자는 복음서들의 표현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집을 떠날 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때였고 무덤에 도착한 때는 여명이 밝아올 때였다고본 다(Lenski). 아무튼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가 매우 이른 시간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렇게 일찍 무덤을 방문한

  • 25.02.10 09:31

    것은 예수를 탄압한 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돌아가신 주님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본절의 '이른 아침'그러니까 아직 어둡기는 하지만 이제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시각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시점이다. 그것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주일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시작으로서의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이 완성으로서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대치(代置)되는 시점인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 - 이 여인은 한때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을 받다가 예수께 고침을 받은 이후 예수를 따르며 비사하였던 여제자격의 인물인데(막 16:9; 눅8:2),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를 따르며 수종들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끝까지 남아 이를 지켜보았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19:25). 혹 독자들 중예는 이 여인을 마르다의 동생이자 나사로의 누이인 베다니의 마리아와 혼동할 수도 있으나 양자는 전혀 별개의 인물이다(11장).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a)라는 이름은 가리키며 막달라라는 성읍은 디베랴(Tiberias) 북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무덤을 최초로

  • 25.02.10 09:31

    방문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인 것처럼 되어 있으나, 공관복음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여러 명의 제자들이 함께 동행하였다(마 28:1; 눅 23:55;24:1). 이런 차이는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인들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모른데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2절의 '우리'라는 표현은 복수의 인물들이 무덤을 방문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아마 요한은 첫 방문자들 가운데 핵심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에만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을 것이다.
    돌이...옮겨간 것을 보고 - 막달라 마리아 일행이 무덤을 방문한 것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막 16:1) 향유를 바르는 것은 곧 시신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유대인들은 시신이 썩기 전까지는 고인(故人)의혼이 시신 곁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장사 지낸 후 사흘 동안 시신을 돌보았던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왔을 때 무덤입구를 막았던 돌문이 옮겨져 있었다는 것은 예수의 무덤에서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왜냐하면 무덤을 막았던 돌문은 장정 다섯 명이 힘을 합해야 겨우 옮길 수

  • 25.02.10 09:32

    있을 정도로 무거웠으며 입구에 움푹 패인 홈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인 몇몇이 옮기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마가는 여인들이 돌문을 여는 것에 대해 염려하며 길을 떠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막 16:3).

  • 25.02.10 11:37

    @장코뱅 안식 후 첫날과 용감한 믿음의 여인들이 연관되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주석의 설명이 참 좋네요.

  • 작성자 25.02.10 14:50

    @장코뱅 역시 주석의 내용이 좋습니다. 주석은 한 구절이나 한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줘서 성경 지식의 결정판이네요.

  • 25.02.12 16:02

    @코람데오 공감합니다.

  • 25.02.10 11:40

    글의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신약교회가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차근차근 상세한 설명이 좋은 포스팅 같습니다.

  • 작성자 25.02.10 14:53

    네. 확실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어서 좋습니다. 조목조목 어떤 딴지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내용이 치밀하고 은혜롭습니다.

  • 25.02.10 17:26

    @코람데오 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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