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제68회
이헌 조미경
연우는 아들들이 자라자 캐나다에 이민 간 누나 희주에게 연락했다. 희주는 동생 연우의 아들들에게 애정이 많았다. 비록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동생 아들을 돌봐 주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방학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아들들을 케어해 달라는 부탁을 할 때 만 해도 누나에게 넉넉한 생활비를 줄 수 있다 자신했다. 그즈음 강남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방학이면 단기 어학연수를 비교적 비용이 저렴한 필리핀으로 보내는 학부모가 많았지만 연우는 친누나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자유롭게 어학을 핑계로 집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연우는, 일찍 퇴직을 하고 자신의 사업장을 가지고 편안하게 즐기는 친구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상속받은 친구들은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비싼 술집에서 고급 양주와 아가씨들에 둘러 쌓여 지나간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우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상속하지도 않았으며, 현역에서 활동하면서 아들인 연우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아버지에게 기대고 있지는 않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이 가슴을 채우고 있던 연우는 어느 날 계획도 없이 회사에 사표를 쓰고 말았다. 그가 다니던 건설 회사는 수주를 해야 하고, 관급 공사를 하게 되면 자연히 업계 순위도 올라가는 구조였다. 그러나 그는 편안한 직장 생활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처럼 평일에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푸른 그린을 누비며 공을 치고 싶었고. 어느 때는 낚싯대를 메고 무작정 교외로 떠나고 싶은 방랑자 병이 도지면서, 큰 고민도 없이 사표를 썼다. 그때 주위에서는 사표 수리 하기 전에 다시 한번 고민을 하라 했지만 호기롭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연우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회사를 자주 옮기는 철새 기질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10년 다니던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쓰고 나서 며칠 동안은 홀가분하게 늦잠을 자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당구를 치기 위해 당구장 하는 친구에게 놀러 가서 저녁 동안 당구를 쳤다. 그런 그를 한심하게 여기는 아내는 아무리 연우를 말렸지만 끝내 듣지 않고 집에서 빈등거리며 놀고 있었다. 퇴직금은 생활비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텔레비전과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속이 터지려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할 자신이 없는 연우는 시간을 죽이고 세월을 죽이는데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허비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던 연우는,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적은 연봉으로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다. 경력직으로 복귀한 연우는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살려 이번에는 열심히 일을 하려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업무 평가를 하고 수익성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부동산을 대해 알아보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이제 나이도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이 되니, 새삼 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동안 아내 눈치를 살피다 일찍 직장에 출근하게 되니 집안에서 가장의 위치를 바로 잡은 것 같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캐나다에 있는 아들들에게 생활비와 학비등을 송금할 날짜가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시 직장에 복귀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의지 하던 것도 사라지니, 슬슬 다른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중학교 1학년에 떠난 아들은 훌쩍 자라서 어른이 되어 가는데, 반대로 본인은 성장하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며칠째 우진 회사는 술렁거렸다.
현장에서 인부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나서는 현장 책임을 맡은 간부들은 작은 일에도 버럭 소리를 지르며 책임론을 꺼냈다. 유족들과의 보상 문제로 시끄러웠던 일도 해결되고 다시 새벽부터 레미콘이 분주하게 오가면서, 현장은 종일 시끄러운 소음에 묻혀 작업자들의 농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진은 회의 석상에서 안전을 강조했다. 먼저 작업자들의 근무복과 근무 시간에 잡담과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사와 함께 먹는 반주도 과하면 안 된다는 것을 현장 소장에게 당부했다. 작업은 2인 일조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건물은 콘크리트가 쌓이고 철근이 올라가면서 아파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우진의 고민은 분양가에 있었다. 건설사는 선분양 후 입주를 하기 때문에, 먼저 분양을 하고 나서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가 되면서, 입주를 서두르기 때문에 분양가는 무척 예민한 문제였다. 그동안 회사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데, 한번 삐그덕 거리면,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또한 금융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단 0.1 포인트라도 올리는 경우에는 당장 회사에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항상 사람들을 만나 정보 교환을 하고 공사 수급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우진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어린 시절 꿈꾸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도 달리고 있었다. 요즘 그는 유통에도 관심을 쏟으며 관계자들을 만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유통에 능한 경력자와 그 계통 관계자의 이야기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앞으로의 비전에도 관심을 쏟으면서 회사를 상장하기 위해 고심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