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이재연
파란시선 0136
2023년 12월 15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35쪽
ISBN 979-11-91897-70-8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당신이 혼자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는 이재연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천사의 얼굴」, 「조용한 식사」, 「단순한 미래」 등 54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재연 시인은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제1회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를 썼다.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유의 조건으로서 ‘시간’에 대한 이재연 시인만의 감각입니다. 이 시집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시적 상황들은 대체적으로 일상적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어 가는 독자들에게는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이유 역시 시인만의 시간 위에서 그 사건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재연 시인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일이나 기억 속의 개인적 사건들, 또는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응축되어 있는 다층적 시간의 결들을 읽어 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시 하나의 시간 안에서 펼쳐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연 시인의 작품을 읽는 경험은 마치 평행우주의 세계를 만나는 것과 유사합니다. 누군가의 미래가 나의 현재와, 또는 나의 미래가 누군가의 과거와 겹쳐져 있는 것처럼 낯설고도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이상 남승원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새의 심장으로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그는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들을 통찰하는 시인이다. 광장만 남은 광장에서 하늘의 체온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손에는 흰빛이 있다. 흰빛은 시인의 삶을 견인하는 마음의 근력이요 순결한 에너지다. 이곳에 부재하는 이와의 통화를 기다리며 혼자 있는 낮달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은 거친 질감의 세계를 호흡하면서 “수식어를 하나씩 버리고 있는 겨울나무”를 만나기도 하고(「평범한 나의 신」), 말없이 귀가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천사의 얼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햇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귀 밝은 시인으로 기원과 현실의 충돌이 연속되는 눈앞의 “외딴 강”을 건너는 중이다(「신과 아이」). 이방인처럼 격절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강 건너 다른 풍경을 따듯하게 보듬어 안는 시인은 익숙한 감각의 흔적을 지우고, 정신의 열도와 사유의 깊이를 확보한 특별한 시의 자리에 있다. 그의 고유한 발성과 감각이 심화, 확장된 이번 시집에 여러 날 몸을 의탁하여 시의 온기를 느끼는 호사를 누려도 좋겠다. 몸에 별을 그려 넣으며 살고 있는 이재연표 시의 집에는 “색이 다 바래지고 난 후의 빛”과(「눈이 내리는 구간」) “어두워질수록 점점 밝아져 가는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내가 아주 어린 떡갈나무였을 때」).
―홍일표(시인)
•― 시인의 말
이곳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 둘
가슴에 불을 밝히면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손에 닿지 않으면
이국적인 나무의 이름을 다 잊어버리는
외곽의 여름이었다
침묵이 가능한 세계에 눈이 쌓이고
따뜻해지기를 바랐다
•― 저자 소개
이재연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제1회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를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진화 – 11
순례자 – 12
보라에서 보라까지 – 14
눈의 나라에서 – 16
사라진 문명 – 18
멈출 수 없는 일 – 21
너무 많은 여름 – 22
자연으로부터 – 24
내가 아주 어린 떡갈나무였을 때 – 26
아무도 없습니다 – 28
기린이 잎사귀를 먹는 저녁 – 31
신과 아이 – 32
제2부
너는 없다 – 35
허공에 검은 선을 그으며 – 36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 – 38
아름다운 미래 – 40
모르는 마음 – 42
오래가지 않는 것을 여름이라고 했다 – 44
에덴의 기원 – 47
거울 – 50
달의 은둔 – 52
평범한 나의 신 – 54
사랑의 책 – 56
그것이 더 편했다 – 58
이후에는 – 59
제3부
신과 아이 – 65
휴일 – 66
슬픔과 상관없이 – 68
당신은 잘 가고 나는 잘 왔습니다 – 70
철로에 도착한 햇살 – 72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 74
여름밤 – 75
어쩔 수 없는 것은 오늘의 기후가 되었다 – 78
오늘의 날씨 – 80
리스본 – 82
천사의 얼굴 – 84
분명한 저녁 – 86
사랑의 후기 – 88
이방인 – 89
제4부
하염없이 겨울 – 93
장미의 경우 – 94
자책 – 96
세속 여름 – 98
밤하늘에 너를 놓고 지나간다 – 100
범람 – 102
눈이 내리는 구간 – 104
조용한 식사 – 106
아이들이 지나간다 – 108
낮달 – 110
셀 수 없는 바다 – 112
이 지역은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 114
낙화 – 116
단순한 미래 – 118
대지의 춤 – 121
해설 남승원 시간의 윤리 – 122
•― 시집 속의 시 세 편
천사의 얼굴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고
겨울을 반기는 사람도 없다
광장엔 광장만 남아 있다
그런 광장에 필요한 의자가 남아 있고
의자는 얼어 있다
광장의 크기만큼 함성이 필요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그림자 하나씩 앞세우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패딩점퍼에 붙은 깊은 모자와 마스크 속으로
흰 얼굴을 감추고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포개 보다
당신이 혼자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겨울밤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왜 까닭 없이 밤의 천사가 되는지
밤의 천사가 되려고 하는지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야 했을까
천사는 조금 취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
조용한 식사
결국 영혼의 일이었지만
그 영혼의 일을 더 알아보려고
병상에서도 열심히 성경을 옮겨 적고 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를 받았다
흔들리는 찻물을 마시고
식탁에 앉아 사과와 당근과 양배추를 썰어 놓고
옆 사람에게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옆 사람도 나에게 중얼거린다
자꾸 사람들이 가네
그렇지만 아침에는 꼭 사과를 먹어야 한다
당근도 먹어야 한다
양배추는 날것으로 먹는 게 더 좋아
완전한 건 없지만 먹으면 대답해 주는 것은 먹어야 한다
아무 일 없는 듯 또 먹고 중얼거린다
이제 강물이 풀렸나 봐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만나게 된다
나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 흐르는 강물 때문이다 ■
단순한 미래
누가 합해지거나
나누어지거나
사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해하려고 하던 노력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아보카도 씨앗에 주는 물을 끈질기게 갈아 줍니다
안에서도 밖이 환히 보여
자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 밑에 의자가 버려져 있습니다
의자 옆에 창문도 버려져 있습니다
간혹 버려진 노년도 있어
좀 더 많이 걷고 있습니다
많이 웃어 주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미래처럼 다가왔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아보카도 씨앗에 주는 물을 끈질기게 갈아 주고 있습니다
나무를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를 두고 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밖에 무엇을 두고 보자는 심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물로 끝을 보자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모두들 앞으로 가고 있지만
얼굴을 가렸습니다
세계가 가렵습니다
이제 그만
무엇이 태어날지 모르는
아보카도 씨앗을 흙에 묻어 줍니다
당분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이 노선으로 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