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폰다 (Henry Fonda,1905~1982)
미국 영화배우 겸 제작자 '헨리 폰다'는 미국 네브라스카 주 Grand Island
태생으로 'Omaha Community Playhouse'에서 'Dorothy Brando'가 연출
하는 지역 아마추어 극단의 단원으로 일하며 데뷔했다.
이후 그는 'Cape Cod University'에 입학했고, 그 다음엔 '브로드웨이'로
향하게 됐다. 그런 그는 1926년에서 1934년까지 뉴욕에서 연기경력을 쌓는데
집중했다.
'헨리 폰다'가 배우로서 처음 중요한 역을 맡은 것은 브로드웨이의 <New Faces
of America>와 <The Farmer Takes a Wife>에서였다.
1935년 <The Farmer Takes a Wife>는 영화로 옮겨졌고, 이를 통해 처음으로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Henry Hathaway' 감독의 <The Trail of the Lonesome Pine, 1936>과
명감독 'Fritz Lang'이 연출한 <You Only Live Once, 1937), 그리고 역시 명감독인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연출하고 'Bette Davis'가 타이틀-롤(title-role)을 맡은
<Jezebel, 1938)에 출연하는 등 데뷔 초반부터 주연을 꿰차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
했다.
그 와중에 '헨리 폰다'는 1936년 'Frances Seymour Fonda'와 결혼했고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딸 '제인 폰다(Jane Fonda)'와 아들 '피터 폰다(Peter Fonda)'는
아버지 '헨리 폰다'를 따라 영화배우가 됐다.
'헨리 폰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사병으로 지원했는데, 그곳에서 3년간
USS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이러한 군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Otto Preminger' 감독의 <In Harm’s Way, 1965>에서 사령관 역할을
노련하게 해냈고, 이어 1967년 키티호크 항공모함을 방문해 밤을 지새우며
<Yours, Mine and Ours, 1968>에서 그가 맡은 배역을 준비하기도 했다.
'헨리 폰다'는 1930년대 후반부터 '존 포드' 감독의 <Drums Along the Mohawk>와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같은 서부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헨리 폰다'는 생애 통산 1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헨리 폰다'는 개인적으로
<청년 링컨>에서 맡은 '링컨 역'과 <분노의 포도>에서 맡은 '톰 조드 역'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사 적으로 이 두 작품은 걸작의
목록에 올라있기도 하다.
특히 <청년 링컨>은 개봉 당시 비평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고, 흥행적
으로도 겨우 실패를 면한 수준이었는데, 후에 'Tag Gallagher' 같은 '존 포드'
전문가들이 이 작품에 주목하면서 전후 '포드'의 걸작중 하나로 자리매김 됐다.
'헨리 폰다'는 또한 <The Lady Eve>와 <Rings on Her Fingers> 등의 코미디 영화
에서도 친화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12 Angry Men>에서는 정의를 추구
하는 의협심 넘치는 시민 배심원을 맡아 열연을 했다. 그는 <Mister Roberts>와
<Battle of the Bulge> 등의 전쟁영화들에서 인간미 넘치는 군인 역을 맡기도 했다.
'헨리 폰다'는 1997년 영국『엠파이어』(Empire) 잡지에서 ‘최고의 영화배우 100명’의
리스트에 올랐고, 그가 76세일 때에 오스카 최고 연기상을 받은 최고령 배우가 되기도
했다.
'헨리 폰다'는 1960년 명예의 전당(Walk of Fame)에 입성했고, 1978년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평생공로상(Lif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미국 영화사에 있어 다양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1982년 8월 12일 L.A
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