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등골에서 우러난 소리... 아라리"
입력 2024.08.23.
'아라리'는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태백산맥의 중턱에서 부르던 일노래이다.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인 평창, 정선, 강릉이 모두 아라리의 원산지이다. 이 고원에서 비탈을 일구는 일노래가 물아래로 흘러내려 가 '아리랑'이 되었다. 물아래 사람들이 고마웠는지 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라고 아리랑을 아라리가 낳았다고 출처를 확실히 밝힌다.
'아라리'는 세계적인 히트곡 '아리랑'을 낳고도 쉬지 않는다. 정선에서는 더욱 번성해 강원도 무형유산 제1호가 되는데, 명칭은 익숙해진 '아리랑'을 붙여 ‘정선 아리랑’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우직한 정선 사람들은 아직도 '아라리'라 말하며, 옛 소리의 맛을 잇는다. '정선 아라리'는 비탈에서 만들어진 소리라 맛으로 쳐도 메밀 맛이다. 담백하면서 삶의 찰기가 끈끈하게 묻은 소리이다. 듣노라면 높지도 낮지도 않고 끊일 듯 이어지며 쉼 없이 흐르는 노래, 분명 이 땅의 등골에서 우러난 소리이다.
정선은 해발 600미터 준령에 올라앉은 땅이다,
첩첩산중이라 “땅이 천평이면 하늘이 천평”이다. 그 비좁은 땅에서 사람들은 “앞산 뒷산에 빨랫줄을 걸고 산다”라고 한다.
이 꽉 막힌 고을에 저녁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게 '아라리'다. 물 한 잔만 들어가도 밀려 나오는 '아라리'에 인생사 오욕칠정을 다 담는다.
이 '아라리'가 아우라지 나루터에 들어서면 '아리랑'이 된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송천과 중봉산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합류되어 아우러지기에 ‘아우라지’라 한다.
'아라리'는 아우라지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떼’라고 부르는 뗏목은 정선의 소나무를 한양으로 나르던 옛 운송법이다. 아우라지에서 떼를 엮어 조양강으로 흘러 동강을 지난다. 떼꾼들은 “아침밥이 사잣밥”이란 말처럼 무시무시한 여울에서 목숨 건 래프팅을 하였다. 살아남아 마포나루에서 나무를 넘기면 어마어마한 거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떼돈 번다”는 말이 바로 예서 유래가 되었다.
1865년에 시작된 경복궁 중건 때, 이 뗏목에 강원도의 일노래 '아라리'가 따라가 공사 현장에서 대유행했다.
이를 한양풍으로 바꿔 부른 ‘아리랑타령(구 아리랑)’이 나왔고,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한 '호머 알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이라 했다. 이 아리랑의 영향으로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본조 아리랑)’이 나왔다. '아리랑'은 식민지 백성의 숨소리가 되었고, 해방 공간에서는 메아리가 되어 산하에 가득 찼다. 마침내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공기가 된 것이다.
진옥섭 |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